기자명 김수정
  • 입력 2016.11.30 10:23

얼마 전 모 식품회사의 사장님이 로또복권 2등에 당첨되었다는 뉴스를 듣고 부러워서 탄성을 질렀다. 나에게는 매주 수요일마다 소식을 보내오는 카카오톡 플러스친구가 있다. 이름하야 ‘나눔**’ 매주 구입한 복권의 결과물을 알려주는 알림이다. 그러나 당첨이란 어려운 법, 좋은 소식은 웬만해서 찾아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주 복권을 사는 것은 '혹시나' 행운을 비는 마음 때문이다. 꼭 많은 금액의 당첨을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좋은 일이 내일 찾아올지도 모르기에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 본다. 그런 기대만으로 투자하는 복권 한 장은 일주일의 윤활유가 된다.

매주 성실하게 구입하는 한 장의 복권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그림이 있다. 존 싱어 사전트의 ‘낚시하는 소녀’다.

John Singer Sargent <Girl Fishing> 1913

소녀는 네모진 낚시망을 물 안쪽으로 담그고 있다. 튼튼한 낚시망과 손잡이는 여린 손목으로 버티기에는 조금 무거운 듯 꽉 쥔 손의 긴장이 두드러진다. 비교적 얕고 깨끗한 물인가 보다. 물 안쪽으로 자갈의 누런 색채가 비친다. 맑고 투명한 사전트의 붓질은 빛을 반사하는 물빛 표현에 효과적이다. 인상주의색이 드러나는 사전트의 붓 터치가 야외 표현에 효과적이다. 소녀는 조심스레 수평을 맞춰 낚시망을 내려놓는다. 낚시망은 수면을 적시고 물 안으로 내려가고 있는 것 같다. 그림은 낚시망을 올리는지 내리는지 확실히 알 수 없이 애매하지만, 내가 망을 내리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망 안쪽이 비어있기 때문이다.

19세기의 가장 인기 있는 초상화가 존 싱어 사전트(John Singer Sargent, 1856~1925)는 지적이고 엘리트적인 면모와 매력적인 댄디의 면모를 모두 갖춘 작가였다. 부유한 부모의 지원 아래 생애의 대부분을 크고 작은 성공의 바운더리에서 보냈다. 그는 지치지 않고 그림을 그렸다. 평생 900점 이상의 유화와 2000점 가량의 수채화를 남겼다. 물론 다양한 재료로 남긴 드로잉은 셀 수 없을 정도이다.

사전트는 인물화로 그림을 시작했다. 1874년 가족과 함께 이주한 파리에서 유명한 초상화가 카롤린 뒤랑을 만나 그림을 배웠으며, 자연스럽게 프랑스의 엘리트 예술인과 교제를 나누게 되었다. 드가, 휘슬러 등의 인상주의 화가들과 친분을 나눴으며, 그중에서도 클로드 모네와 가까이 교류하였다.

그러나 프랑스에서 시작한 예술 생활은 오래가지 못 했다. 야심차게 그린 ‘마담 X(피에르 고트로 부인)(1883~1884)’가 포르노 취급을 받은 것. 이로 인해 그는 도망치듯 파리를 떠났다. 부유한 그가 굳이 한 곳에 정착해야 할 필요는 없었다. 런던에 정착하는 듯했으나, 그는 끝없이 주문자들을 찾아 유럽을 여행했다.

사전트의 인물화는 생기 있는 터치와 색채를 가지고 있었다. 미국의 대통령, 영국의 귀족 등 신분이 높고 부유한 인물들에게서 주문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관심은 부유층에게만 머물지 않았다. 인물에 대한 관심은 낮은 신분의 사람들에게도 옮아갔다. 사전트는 시시때때로 하층 계급민과 노동자들의 모습에 관심을 가졌으며 생의 후반기에 다가갈수록 풍속화에 접근하기 시작했다. 이 작품도 굳이 분류하자면 사람들의 삶을 그려낸 풍속화에 가깝다.

주변에 낚시를 좋아하는 남자들이 몇 계신다. 그분들이 이야기하는 낚시의 매력은 '기대해도 되는 기다림'이다. 낚싯대를 던진 후에 할 수 있는 것은 기다림뿐이다. 그러나 그 시간들은 충분히 기다릴만 하다. 오늘 밤까지라는 기약이 있고, 월척을 낚을 수도 있다는 확실한 그림이 있다. 그리고 그 기다림이 멋진 이유는 기다림의 순간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아무것도 못 낚고 돌아올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시간은 꽤 괜찮은 시간들이다.

나는 매주 작은 금액의 복권을 성실하게 산다. 습관적으로 구입하는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한다. 인생의 소망에 투입과 산출이 정확히 들고나는 것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낚싯대를 던졌다면 낚싯대를 들어 올리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렇게 들어올린 낚시대는 비어 있을 때도 있고, 작은 물고기가 낚여올 때도 있다. 그러다가 인생에 한번쯤은 엄청난 크기의 월척이 낚이기도 하는 것을 본다. 인생은 원래 그렇게 예상불가이다. 매주 성실하게 복권을 사듯이 매주 성실하게 무언가를 하는 일이 그래서  괜찮은 일인 것 같다. 허무맹랑하지 않은, 약간의 기대를 가지고 싶어 우리는 순간순간 성실하게 낚싯대를 던진다. 고맙게도 항상 빈 낚싯대는 아닌 것이 인생의 확률이다. 내 이야기를 잠깐 하자면 고맙게도... 방금 복권 '천 원' 당첨의 행운이 왔다. 작은 물고기이지만 기쁘다. 작은 행운에 인생이 짜릿하다. 

글쓴이☞ 선화예고와 홍익대 미대를 졸업한 뒤 예술고등학교에서 디자인과 소묘를 강의했고, 지금은 중학교 미술교사로 재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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