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
  • 입력 2016.11.30 16:11

내다 버리는 일이 유기(遺棄)다. 요즘은 자신이 키우던 애완동물을 먼 곳에 버리는 행위 등을 일컬을 때 자주 쓴다. 이른바 ‘유기견(遺棄犬)’의 사례가 그렇다. 이 말은 법률 용어로도 자주 쓰인다. 직무를 태만히 하는 정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경우다.

두 글자는 모두 그런 의미를 간직하고 있다. 차이가 있다면 앞의 遺(유)는 남에게 주는 행위, 뒤의 글자 棄(기)는 ‘버리다’의 새김이 강하다. 처음 글자꼴을 보면 그 점이 뚜렷하다. 앞의 遺(유)는 ‘움직이다’ ‘가다’라는 의미의 辶(착)에 두 손으로 뭔가를 쥔 손의 움직임, 귀중품을 의미하는 貝(패)로 짜여 있다.

따라서 귀중한 물건이나 금전에 해당하는 물품을 쥐고 어디론가 걸음걸이를 하는 동작, 더 나아가 남에게 무엇인가를 주는 행위라는 뜻으로 발전했다. 뒤의 棄(기)는 조그만 상자, 그 안에 담긴 어린 아이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생명력이 강하지 못한 어린아이를 버리기도 했던 옛 사회의 습속이 엿보이는 글자다. 그런 ‘유기’와 같은 맥락의 단어는 방기(放棄), 포기(抛棄), 파기(破棄), 침까지 뱉는 타기(唾棄) 등이다.

‘유기’는 특히 법률 조항으로 다루는 일이 많다. 우선의 뜻은 자신의 친족 중에서 스스로 살아갈 여력이 없는 대상을 돌보지 않고 버리는 행위다. 제법 무겁게 그 죄를 다루는 항목이다. 특히 자신의 나이 든 부모나 어린 자식을 제대로 돌보지 않고 방치해 몸을 상하게 하거나 죽게 만드는 일이다.

직무(職務)는 제가 있는 자리에서 힘을 기울여 처리해야 하는 일을 가리킨다. 이런 직무는 구체적인 규정에 따를 수 있지만, 그를 넘어서는 추상적인 측면도 있다. 그런 직무 자체를 게을리 하는 행위는 법률적으로 다룰 수 있다. ‘직무유기’라는 죄명으로 말이다.

직무가 지닌 권한을 넘어서는 일도 마찬가지다. 보통은 그런 권한 자체를 직권(職權)이라고 불러 정해진 범주 이상으로 힘을 행사했을 때 직권남용(職權濫用)의 죄를 적용한다. 직무를 유기해서도, 직권을 남용해서도 문제를 남긴다. 서 있는 자리가 높을 때 그 폐해는 매우 심각해질 수 있다.

청와대에서 대통령을 보필했던 김기춘 전 비서실장, 우병우 전 민정수석이 지금 그렇다. 이들은 직권남용과 직무유기의 혐의에 따라 곧 검찰의 조사를 받을 예정이라고 한다. 자신들은 떳떳하다고 여길지 모르지만 청와대 주변에서 번진 ‘최순실 게이트’가 국기(國基)까지 뒤흔든 사태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다.

다 법을 전공한 사람들이다. 정해진 직무규정을 들어 자신을 강변할지 모르지만, 법률이 규정하지 못하는 추상적이며 때로는 더 엄중한 도의적 책임을 피해갈 수 없다. 도의적으로 이들은 자신의 책임을 유기하고, 방기했으며, 심지어는 파기한 혐의가 크다.

유기와 같은 맥락의 단어지만 뜻이 사뭇 다른 말 하나를 덧붙인다. 양기(揚棄)라는 낱말이다. 좋은 요소를 발양(發揚)하고 나쁜 것은 폐기(廢棄)하라는 말이다. 철학의 용어라서 낯설지 모르지만 꽤 의미를 담을 수 있는 단어다. 그러나 이들은 거꾸로 일을 벌였다.

나쁜 것을 한 없이 키우거나, 적어도 그들이 자랄 수 있도록 방조했다. 그로써 대통령이 물러나야 할 처지에 이르렀고, 나라의 꼴은 형편없이 망가지고 말았다. 법률을 양심(良心)으로 배우지 못하고 공학(工學)의 입장에서 다룬 탓이 크다. 이제 이들은 법의 칼날을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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