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
  • 입력 2016.12.01 17:15
경복궁 뒤편에 있는 향원정과 주변 풍경이다. 구중궁궐의 가장 깊은 곳이다. 한자에서 九(구)는 아홉이라는 숫자적 의미 외에 '아주 많은 것'을 가리키기도 한다.

예전에는 사대문四大門 안이 진짜 서울이었다. 동대문과 남대문, 서대문과 북대문 안의 지역 말이다. 그곳 말고는 지금 서울의 다른 지역은 대개가 경기도에 속했었다. 지금 우리가 닿는 역, 구의九宜 역시 마찬가지다. 우물이 아홉 있었다고 해서 붙여졌을 구정동九井洞, 그 옆의 산의동山宜洞 등을 행정적으로 합치면서 두 명칭 중 각 한 글자씩을 따서 만든 이름이 구의九宜다.

모두 조선시대 경기도 양주군에 속했다가 서울의 권역에 들어온 동네다. 역시 일제 강점기 초반인 1914년 행정구역 조정 및 개편 작업에 따라 지금의 이름을 얻었다는 설명이 나온다. 북쪽으로는 아차산의 자락에 닿았고, 남녘으로는 고운 한강의 언저리를 바라볼 수 있는 곳이다. 그 때문에 예전에는 풍광風光이 아주 빼어난 곳이었을 테다.

역명의 앞에 등장하는 글자는 숫자 九(구)다. 이 글자는 1호선을 지날 때, 숫자만으로 이뤄진 구일九一이라는 역에서 제법 자세하게 풀었다. 그 모두를 되풀이하는 일은 의미 없는 반복이다. 그래서 조금만 이곳에 덧붙이기로 하자.

숫자 九(구)는 실제 횟수를 가리키기도 하지만, 추상적인 의미에서는 ‘한없이’ ‘끝없이’의 뜻이다. 중국에서 숫자 九(구)는 가장 큰 숫자를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우선 구중궁궐九重宮闕이다. 아홉(九) 차례 거듭(重) 이어지는 궁궐宮闕이라는 뜻이다. 겹겹이 쌓인 담을 우선 연상케 하는데, 왜 하필이면 아홉일까. 실제 담이나 건축물 등이 아홉 번 거듭 늘어서 있다는 표현은 아니다. 실제 ‘구중九重’의 풀이는 ‘끝없이 거듭 이어지는’의 뜻이다.

구우일모九牛一毛라는 성어도 있다. ‘아주 많은 것 중에서 극히 작은 하나’의 뜻이다. 소의 털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 소가 아홉 마리 있다고 가정해 보시라. 그 털은 또 얼마나 많은가. 그 중의 털 하나라는 뜻이다. 불교에서 흔히 말하는 ‘갠지스 강의 모래 알 하나’의 의미와 같다.

구천九天은 가장 높은 하늘이다. 역시 불교의 가르침에서 나오는데, 하늘을 여러 층으로 나누고 가장 높은 하늘을 九天(구천)이라고 표현했다. 같은 발음으로서 구천九泉이라는 말도 있다. 九天(구천)이 하늘 가운데 가장 높은 하늘이라면, 九泉(구천)은 땅 밑의 세계를 일컫는 황천黃泉 중에서도 가장 아래의 저승 세계를 일컫는 말이다.

구사일생九死一生도 여러 번, 그것도 매우 빈번하게 죽음 앞에 놓였다가 겨우 살아난 일을 일컫는 말이다. 구곡양장九曲羊腸이라는 성어도 있다. 꼬불꼬불한 길을 가리킬 때 사용하는 말이다. 아주 많이 접힌 길이 주름 많은 양(羊)의 창자(腸)처럼 생겼다는 표현이다.

뭐 이런 식이다. 숫자에서 가장 큰 숫자, 그래서 끝이 없는 경우, 거듭 이어지며 무수하게 드러나는 물체나 형상 등을 표현할 때 이 숫자가 등장한다. 따라서 九(구)는 단순한 숫자나 횟수 등을 표현하기에 앞서, ‘아주 많은’ ‘셀 수 없이 많은’의 형용이 필요할 때 등장하는 글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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