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
  • 입력 2016.12.02 16:50

한국에서 번진 이른바 ‘최순실 사태’를 두고 중국인들이 쓴 단어다.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의 관계를 일컬으면서다. 閨蜜(규밀)이라는 이 단어는 아주 가까운 여성과 여성의 친구사이를 가리킨다. 중국 언론들은 연일 이 단어와 함께 한국의 대통령 주변에서 벌어진 스캔들을 다루고 있다.

앞의 글자 閨(규)는 낯설 수 있지만, 쓰임새를 따져보면 결코 우리와 거리가 먼 글자는 아니다. 바로 규수(閨秀)다. 예전에 ‘남의 집 처녀’를 일컬을 때 심심찮게 쓴 단어다. 규방(閨房)도 마찬가지다. 남의 집 부녀자 거처하는 방을 가리키는 말이다. 규중(閨中) 또한 여인들이 머무는 공간이다. 앞의 글자 閨(규)는 원래 집안에 있는 문을 가리켰다. 대개 집 중간에 놓인 문이었다.

집 가운데에 있어 안과 밖을 가르는 경계에 있었던 문으로 생각하면 좋다. 사전의 설명에 따르면 이는 집에서 안팎을 나누는 문이다. 따라서 이 문의 안쪽은 집의 내원(內院)에 해당한다. 집의 여성 구성원들이 사는 곳이라는 얘기다. 남녀와 반상(班常)의 차별을 엄격하게 다뤘던 옛 사회의 습속에 따라 생긴 개념이다.

이 문의 모습이 궁금해진다. 설명에는 ‘위가 둥글고 아래는 네모진 문’이라고 나와 있다. 門(문)이라는 글자 안에 들어있는 圭(규)라는 글자는 옛 왕조시절 임금과 대신들이 주요 행사 때 손에 들었던 옥기(玉器)의 일종이다. 그 모습이 위가 둥글고 아래가 네모진 형태였다고 한다. 따라서 그 옥기의 모습을 모방한 문을 閨(규)라고 했으리라는 추정이다.

안과 밖을 가르는 시설은 늘 주목을 받았다. 궁궐도 마찬가지다. 임금이 정사를 보는 곳은 보통 외조(外朝)라고 했다. 그러나 임금이 가족 구성원이나 내부 일을 처리하는 인원들과 함께 일상을 보내는 곳은 내정(內廷)이라고 불렀다. 바깥에서 정사를 돌보는 외조와 안에서 일상을 보내는 내정을 합쳐 간략하게 부르는 말이 바로 조정(朝廷)이다.

그럴 듯하게 지은 옛 동양의 보통 거주 공간도 마찬가지다. 바깥을 대표하는 건축이 바로 당(堂)이다. 이 당에서는 바깥을 상대해야 하는 일이 치러진다. 외부에서 온 손님 등을 맞이해 식사를 베푸는 일은 물론이고, 제사와 혼례 등 집 밖으로부터 온 손님들이 함께 참여하는 의례 등이 펼쳐진다.

그 반대의 개념이 실(室)이다. 이는 집안에서 가장 내밀한 공간을 일컫는 글자다. 잠을 자는 침실(寢室) 등이 있어 웬만해서는 가족이 바깥을 향해 공개하지 않는 영역이다. 따라서 당실(堂室)이라고 하면 집안 전체를 일컫는 말이다.

“사람이 당당해야 좋다”고 할 때의 ‘당당’이라는 말이 바로 ‘堂堂’이다. 외부를 향해 공개하는 건축이라 그 모습이 의젓한 ‘당(堂)’의 자태를 빗대 만든 말이다. 실(室)은 그와 달리 내밀하며 조용한 공간이라 전체적으로는 아담하며 깊은 곳이다.

중국인들이 ‘최순실 사태’를 일컬으면서 박근혜 대통령과 최 여인 사이를 閨蜜(규밀)이라고 적은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 집의 가장 은밀한 곳에서 서로 사귀며 깊은 우정을 쌓은 여성 친구를 가리키는 말이다.

사람이 사람과 가까이 지내는 일이야 나무랄 수 없다. 그러나 차고 넘칠 때가 문제다. 건축에서 은밀한 영역을 지칭했던 실(室)은 매우 개인적인 공간이다. 그런 으슥하고 내밀한 공간에서의 관계가 밖으로 번질 경우에는 탈이 난다. 개인적인 요소가 공적인 영역을 침범해 일을 그르치는 경우다. 그럴 때는 겉의 건축인 당(堂)의 모습처럼 명분과 태도 등이 당당할 수 없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정의 최고 정점에 있는 사람이다. 대한민국 행정과 정치, 국가와 사회, 민족의 장래를 생각하며 최고의 공인답게 떳떳하고 밝음, 곧고 바름으로 당당해야 할 책무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시선과 생각이 너무 안쪽으로 기울고 말았다.

두 사람 사이의 관계를 탓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안팎을 가리지 못하고, 분별없이 안쪽의 요소가 바깥으로 흐르게 만든 행위는 국정의 총수로서 결코 할 일이 아니었다. 그로써 넘친 위기가 대한민국 전체를 계속 흔들고 있으니 정말 큰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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