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
  • 입력 2016.12.05 12:40

이 말 자주 쓴다. “분탕질을 한다”면서 말이다. 매우 나쁘게 들리는 말이다. 구성은 이렇다. 불을 질러 없애는 일을 焚(분)이라고 적었다. 물로 깨끗이 씻어 없애는 일은 蕩(탕)으로 적었다. 따라서 焚蕩(분탕)이라고 하면 불을 지르거나, 물로 아예 대상을 없애는 행위다.

사실은 난리에서나 가능한 말이다. 전쟁이나, 고통이 매우 깊은 재난이 벌어진 뒤 모두 없어져 사라지는 경우를 일컫는 단어다. 따라서 남에게 “분탕질을 하다”라고 하면 매우 고약한 행위를 비판적으로 지칭하는 경우다. 함부로 타인에게 안길 수 있는 말은 아니다.

쓸어서 없애는 일은 소탕(掃蕩)이다. 빗질을 하는 행위인 掃(소)라는 글자가 앞에 있으나 먼지나 땅바닥에 남아 있는 잡동사니를 쓸어 없애는 일이다. 그에 덧붙여 다시 蕩(탕)이 들어 있다. 빗질을 한 뒤에 물로 다시 없애면 아주 깨끗해진다. 그런 상태를 빚게끔 만든 행위가 결국 소탕이다.

蕩(탕)이라는 글자는 제법 쓰임새가 많다. ‘씻어내다’, ‘없애다’라는 새김이 우선이지만 흔들리는 물의 형태를 표현할 때도 등장한다. 방탕(放蕩)이라고 하면 구속을 받는 일 없이 자유분방하게 물처럼 나돌아 다니는 행위다. 쓸 데 없는 물길에 휩쓸리는 경우라면 허랑방탕(虛浪放蕩)이라고 적는다.

그런 일에 몰두해서 결국 몸이 망가지고, 주변의 가족에게도 피해를 끼치는 남성을 일컬을 때는 탕아(蕩兒)라고 적는다. 탕자(蕩子)라고 해도 같은 맥락이다. 결혼한 여성이 그런 행실을 일삼는다면 탕부(蕩婦)라고 불렀다. 음란함을 덧대면 음탕(淫蕩)이다.

사람의 행위가 낳은 결과를 일컬을 때 붙는 말이다. 그러나 원래 새김은 물로 씻어내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만드는 일이다. 분탕질을 하고, 소탕을 해대서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을 때의 표현은 탕연(蕩然)이다. 물로 씻은 듯이 깨끗하게 사라진 모습이다.

우리가 이룬 것이 다 망가져서 흩어지고 깨지다가 결국 사라질 지경이다. 이 사회가 믿고 의지했던 틀이 그 모양이다. 대통령은 정실(情實)에 이끌려 이상한 사람들에게 국정을 농단(壟斷)하게 만들다가 결국 나라의 기틀인 국기(國基)마저 흔들리게 만들었다.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로 번진 작금의 사태다.

크고 깊은 물, 뜨거운 불길은 예로부터 재앙(災殃)의 상징이었다. 보통은 水深火熱(수심화열)이라는 성어 형태로 적는다. 깊은 물에 잠기고, 뜨거운 불길에 휩싸이는 일이 어디 보통의 현상일까. 바로 전란과 재난이 일으킨 앙화(殃禍)가 민생의 영역으로 옮아 붙은 상황을 일컫는 말이다.

국정 최고 정점에 있는 청와대에서 일어난 불길과 물길의 분탕질이 사회의 재앙으로 번진 모습이다. 그 분탕의 행위가 더 번지고 퍼져 사회의 안정적인 운영, 민생의 영역으로까지 닿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대의(代議)라는 틀을 잘 살려야 하고, 행정의 체계에 서있는 사람들 또한 제가 할 일을 최선의 노력으로 수행하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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