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박명수기자
  • 입력 2016.12.05 14:54

개헌 국민투표 부결로 伊은행들 도산 위기·‘EU 탈퇴’ 우려 높아져

[뉴스웍스=박명수기자] 이탈리아의 개헌 국민투표가 부결되면서 이탈리아발(發) 금융위기 가능성이 급부상하고 있다.

마테오 렌치 이탈리아 총리가 주도한 개헌안이 4일(현지시간) 국민투표에서 부결되면서 렌치 총리의 사퇴 및 그에 따른 정치적 후폭풍은 물론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경제규모 3위인 이탈리아의 은행들이 줄도산에 내몰려 글로벌 금융위기를 촉발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어서다.

이번 이탈리아의 개헌투표 부결은 국민들이 기득권 정치체제에 대한 염증을 표출한 것인 만큼 최근 제1야당으로 급부상한 ‘오성운동’ 등 포퓰리즘 세력의 목소리가 커질 전망이다. 이들은 이탈리아의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탈퇴 여부를 놓고 국민투표를 실시하는 것을 목표로 내걸고 있어 유로존 탈퇴, 리라화 복귀, 이탈리아의 유럽연합(EU) 탈퇴라는 ‘이탈렉시트 (Italexit)’까지 현실화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이미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가 결정된 데다 이탈렉시트까지 현실화할 경우 EU는 근간 자체가 흔들리는 엄청난 위협에 빠지게 된다.

마테오 렌치 총리가 사퇴를 선언하면서 내년 상반기 조기총선까지 과도정부가 통치하게 되면 막대한 부실채권으로 도산위기에 몰린 이탈리아 은행들은 증자와 부실채권 재조정이 어려워져 직격탄을 맞게 된다.

가장 취약한 고리로 지목되는 이탈리아 3위 은행이자 부실이 가장 심한 은행인 몬테 데이 파스키 데 시에나(BMPS)는 연말까지 도산을 피하기 위해 당장 50억 유로(6조2000억원)의 유상증자를 해야 하는 상황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날 “이번 개헌안 국민투표 결과는 ‘몬테 데이 파스키 데 시에나’ 은행의 존립에 의문을 던지고 있다”며 “렌치 총리의 사임으로 유상증자 계획이 무산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우려했다.

이탈리아 국민들은 1700억 유로(약 211조원) 규모의 은행채권을 갖고 있다. 만일 한 은행이라도 도산하게 될 경우 다른 은행들에 연쇄 타격을 입을 수 있다.

앞서 FT는 BMPS는 물론 중소은행인 포폴라레 디 빈첸자, 베네토 방카, 카리게, 방카 에르투리아, 카리키에티, 방카 델레 마르케, 카리페라라 등 모두 8개 은행이 도산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이탈리아는 은행권 부실은 물론 경제 사정이 이미 심각하다. 유럽은행감독청(EBA)에 따르면 이탈리아 은행권의 부실대출 비율은 17%로 EU 은행 평균인 5.6%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미국 은행의 5%를 훨씬 웃돈다. 이탈리아 은행 부실여신은 3600억 유로(약 461조5200억원)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보다 4배나 폭증해 국내총생산(GDP)의 17%에 이른다.

이탈리아 청년 실업률은 35%를 넘어서고 있고 지난해 1인당 국민소득은 20여년 전인 1997년과 비슷한 3만3000달러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이탈리아 은행들이 무더기 도산할 경우 충격파는 유럽을 거쳐 글로벌 금융시스템 전반으로 번질 수 있다는 점에서 글로벌 금융시장 투자자들의 우려를 고조시키고 있다.

유로화는 5일 오전(이하 한국시간) 이탈리아 개헌 투표 출구조사 발표가 나온 뒤 한때 전거래일보다 1.5%까지 하락해 지난해 3월 16일 이후 20여 개월 만에 가장 낮은 유로당 1.0506달러를 기록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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