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
  • 입력 2016.12.06 09:21

한자는 쉽지 않으나, 이 도탄(塗炭)이라는 낱말은 자주 쓴다. 특히 우리말에서는 일반 사람들의 살림 형편을 표현할 때 자주 등장한다. “민생(民生)이 도탄에 빠졌다”고 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아주 어려운 삶의 상황을 일컫는 말이다.

도탄은 곧장 풀면 진흙탕과 재 구덩이다. 진흙탕은 아주 고단한 길을 가리키는 말이다. 단어를 이루는 첫 글자인 塗(도)의 초기 꼴을 보면 사람이 걷고 있는 물기 많이 깔린 땅의 모습이다. 그로써 아주 지나가기 어려운 길, 또는 그런 길을 가는 행위로 풀 수 있는 글자다.

다음 글자 炭(탄)은 원래 석탄 등 땔 연료를 가리킨다. 여기서는 그런 탄이 타면서 남긴 재, 또는 불이 이글거리는 구덩이를 일컫는다. 뜨거워서 함부로 몸을 들이밀 수 없는 곳이다. 따라서 매우 힘든 경우, 또는 아주 고단한 상황을 가리키는 글자다.

앞의 글에서도 소개를 했지만 예전 한자 세계에서는 뭇 사람들의 생활 형편이 매우 어려운 상황을 물과 불로 설명할 때가 많았다. 깊은 물, 뜨거운 불의 개념으로서 말이다. 그에 해당하는 한자 성어가 水深火熱(수심화열)이다. <맹자(孟子)>에 나오는 말로서 백성의 삶이 아주 힘든 상황을 표현했다.

물이 깊어지고 불구덩이의 열기는 매우 뜨겁다. 전란(戰亂)이나 재난(災難) 등이 닥쳐 곤궁함은 물론 삶 자체가 위협에 몸을 드러낸 가혹한 경우를 일컫는 말이다. 도탄이라는 낱말 또한 그에 견줘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물이 질퍽거리는 진흙탕, 뜨거운 불구덩이가 등장한다는 점에서 도탄과 앞의 성어는 같은 맥락이다.

전란과 재난을 불러들이는 것은 어쩌면 사람이다. 사람 중에서도 뭇사람의 삶을 직간접적으로 책임지는 지도자의 잘못이 결정적인 이유로 작용할 때가 많을 것이다. 이 도탄이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할 때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왕조의 임금이 엉터리 짓을 함으로써 불러들인 백성의 재난을 ‘民墜塗炭(민추도탄)’이라고 형용했다. 백성(民)이 도탄에 떨어지다(墜)의 엮음이다.

그로부터 이 도탄은 각종 고전에 등장했다. 대개는 민생도탄(民生塗炭), 창생도탄(蒼生塗炭), 생령도탄(生靈塗炭) 등의 형태다. 민생이나 창생, 생령 등의 단어는 모두 일반 사람 또는 백성을 가리키는 단어다. 진창이나 불구덩이에 빠져드는 아주 혹심하게 고단한 삶을 가리킨다.

도지(塗地)라는 말은 더 혹심하다. 땅(地)을 칠할(塗) 정도의 상황을 일컫는 단어다. 무엇으로 땅을 칠한다는 말인가? 바로 오장육부의 하나인 간(肝)과 머리의 속을 지칭하는 뇌(腦)다. 그래서 성어로는 간뇌도지(肝腦塗地)로 적는다. 싸움터에서 참패를 당해 사람의 시신이 땅에 널려 있는 모습이다.

우리의 쓰임에서는 일패도지(一敗塗地)가 자주 쓰인다. 한 번 참혹하게 패배해 더 이상 일어설 수 없을 정도에 이른 상황을 지칭한다. 민생이 도탄에 빠져들어 ‘도지(塗地)’의 상황에까지 이른다면 아주 큰일이다. 그러나 이제 남의 땅, 먼 곳의 이야기가 아닐지 모른다.

국정은 혼란 그 자체로 수습이 쉽지 않은 국면으로 흐르고, 경기는 하강 추세를 비켜가기 힘든 때다. 그럴수록 가장 큰 타격을 입는 이는 사회의 약자 계층이다. 경기의 어둠이 가시지 않고 점점 힘든 경우에 빠지면서 우리사회의 서민 삶이 빨간 풀을 켠 지 오래다. 상황은 더 혹심해져 위기를 알리는 경고등이 꺼지지 않는다.

아주 추운 겨울을 맞을 전망이다. 민생은 어려움이 겹치고 또 겹쳐 도탄에 빠져들어 이제는 더 이상 회복하기 힘든 도지의 상황으로까지 번질 기세다. 뾰족한 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위기를 타개할 리더십의 혼돈 또한 점입가경이다. 이러다 큰일 맞이할 수도 있는데, 위기를 위기로 옳게 살피는 이 많지 않아 참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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