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16.12.12 14:07

북한사회에서 수령제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자주 ▲혁명과 건설을 ‘우리식대로’라는 두 주제의 정치사상 교육이다.

여기서 자주는 ‘자립’과 ‘주체’라는 말로 해석되지만 자주라는 용어를 다른 식으로 설명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자립은 다른 나라의 도움없이 독자적으로 살아간다는 의미로 수령제를 가능하게 하는 원동력이다. 수령제를 실행함에 있어 대부분의 국가가 수용하고 있는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는 북한에서 설 자리가 없다. 자주와 자립의 정치문화는 모든 인민이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며 사람이 살아가는 일상에서 오직 수령과 당이라는 존재만을 생각하게 만들었다.

‘우리식대로’라는 정치문화가 가져온 가장 큰 폐단은 경제, 사회, 문화 분야 전반에서 다른 나라와의 교류, 이방세계의 문명과 역사, 자본주의 이데올로기 등은 필요치 않다는 것이다. 또한 수령일가가 마음대로 주장하는 경제, 사회, 문화 등에 관한 이론만이 올바른 길이므로 수령의 지시와 교시에 복종하고 살아야 함을 강조한다.

그러므로 외부세계와의 단절은 정당한 것이며 동구권의 사회주의가 무너진 것은 우리식대로 살지 못했기 때문이며 자주와 자립의 원칙을 망각했기 때문이라는 것으로 정당화 된다.

또한 수령제는 ‘무오류성’으로 수령일가를 보호하면서 국가의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카리스마 리더십을 논할 수 없는 상태가 돼있다.

북한에서 수령의 카리스마는 구체적인 정책과 노선, 이를 실천하기 위한 비전과 단계설정, 인민의지지 등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인민이 느끼는 수령의 카리스마는 ‘조선노동당 역사연구실’과 ‘김일성동지혁명사상연구실’, 혁명전적지와 혁명사적지 등의 거대 건축물을 통해나타난다. 경제정책과 노선, 인민생활은 하급간부들의 몫으로서 인민들의 생활의 피폐는 고스란히 하급 간부들이 잘못에서부터 기인되고 있다.

북한의 수령제는 냉전기 사회주의 종주국이었던 소련과 중국에서도 그 유례를 찾을 수 없을 만큼 지극히 북한적 현상이다. 물론 마르크스, 레닌주의와 구별되게 스탈린의 철학이나 가치관, 국가운영노선이 ‘스탈린주의’로 평가받기도 했다.

하지만 스탈린주의는 스탈린 개인의 입을 통해 나온 통치노선보다는 소련의 독특성을 강조하기 위한 용어로 사용됐을 뿐이다. 모택동이 이끄는 중국에서도 문화대혁명과 같은 급진사회주의 운동이 있었지만 그 과정에서의 모택동에 대한 우상화는 북한의 그것과는 다른 것이었다. 1980년 9월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신문 논설을 통해 공식적으로 북한의 수령제와 당중앙위원회를 비판한다. 내용은 수령제는 봉건사회에서나 있을 수 있는 논리라는 것과 인민과 수령의 관계는 평등관계로 종속관계의 잘못을 비판한다. 또한 인민이 수령을 선택하는 것이지 수령일가가 자신들을 조작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계속해서 신문은 북한에서의 개인숭배와 수령의 신격화는 반마르크스주의적 유물사관이라는 것과 개인숭배는 일종의 미신으로서 인민을 비천하게 여기는 것이며 당 중앙이란 말 그대로 정치적 집단이 모여있는 기관이며 수령에게 당의 중심이라는 용어는 적절치 않다고 지적했다.

중국은 이처럼 북한의 정치 시스템을 비판하면서도 혈맹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북한은 중국의 개방과 인민의 사유재산 인정을 비판적 시각으로 접근하지만, 중국과 교역을 통해 경제적 부흥을 꾀하고 있다. 즉 중국은 북한을 통해 동북아지역 패권을 유지하려하고, 북한은 중국을 등에 업고 경제적 이득을 얻으려고 한다.

이같은 맥락으로 볼 때 북한의 ‘자주’와 ‘우리식대로’는 안으로는 수령제를 견고하게다지면서 밖으로는 중국을 제외한 서방국가에 대항하기위한 정치 사상인 셈이다. 북한이 변하려면 중국의 역할이 절대적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따라서 남북한 대화역시 중국을 빼고 진행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한‧중 관계가 예전에 비해 냉각되고 있는 작금의 현실을보면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북한의 주체사상 교육 포스터.<사진제공=동국대북한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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