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16.12.31 13:00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가 화제다. 1997년 황장엽 선생 탈북 이후 가장 고위직의 탈북자가 다시 대한민국 땅을 밟았다. 선굵은 눈썹에 정확한 발음의 또렷한 말씨, 상대방을 똑바로 응시하며 대화하는 모습에서 왠지 든든함을 느낀다. 그가 발언들을 정리하는 것으로 북한의 오늘을 진단해 보려고 한다.

태 전 공사는 자신의 두 아들들에게 ‘노예의 사슬을 끊어주기 위해’ 탈북을 강행했다고 한다. 북한은 외교관들을 해외에 파견했다가 어느 시점에 가족모두를 평양으로 불러들인다. 어려서 부모를 따라 해외로 갔으며 그것도 현대자본주의의 시원이 되었던 영국 땅에서 두 아들이 겪은 진정한 자유와 민주주의의 세계는 평양의 그것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으리라.

태 전 공사도 언젠가는 북한으로 돌아가야 할 자신과 가족들을 돌아보면서 많은 고민과 번뇌를 안고 있었다고 한다. 두 아들들에게 수령 우상화와 충성을 강요하는 폐쇄사회를 주느냐, 아니면 서방세계나 대한민국으로 탈출하여 영원한 자유를 누리느냐에 대한 생각으로 말이다. 그리고 결단한 것은 대한민국이었다. 그의 말대로 민족이며 말이 통하고 피와 살이 있는 이 땅으로 발걸음을 돌린 것이다. 그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통일부 기자회견장에서 외교관 월급이 얼마인지에 대한 질문에 차마 말할 수 없어 하던 그의 모습에서 북한의 외교관들이 겪는 고초와 수모를 느낄 수 있었다. 대사관 가족의 여자들이 콩나물을 직접 길러 런던 한인가와 중국인들이 밀집해 사는 지역 마트에 팔고 그것으로 생활비를 충당했다는 소식은 오늘날 북한이 처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국가를 대표하는 외교관들의 삶이 이 지경일진대 그 땅에 갇혀 살아가는 주민의 삶은 얼마나 처참할지 북한 출신인 나로서도 좀체 가늠이 되지 않는다. 외교관들이 모두 아침에 눈을 뜨면 남한의 인터넷망에 접속하여 뉴스를 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는 그의 고백에서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남한으로의 탈출을 고민하고 있을 많은 북한 외교관들을 생각해보게 된다.

주체사상으로 무장하고 수령절대주의 교육을 체계적으로 받은 엘리트 외교관들의 이런 행태는 무엇을 말해 주는 것인가. 북한을 떠나 해외에 살면서 이들이 느낀 가장 큰 고민은 아마 수령제의 문제였을 것이다. 유일하게 북한에서만 고집하는 수령우상화를 보면서 같은 대사관 내에서도 서로 말은 못하지만 북한 문제의 본질이 김일성 가문에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게 됐을 것이다.

일찍이 독일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전체주의 운동의 특징으로 중심에 있던 지도자들이 빨리 잊혀지며 쉽게 대체된다는 점을 지적한 바 있다. 여기서 대체된다는 것은 또 다른 전체주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닌 그 체제가 완전히 뒤집히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전체주의의 성공에 가장 큰 방해요소는 이를 추종하는 자들의 무관심이다. 운동의 추종자들이 그 운동과 일체가 되어 법칙에 완전히 순응해 주어야 하는데 에 대한 관심이 없는 것이다.

태영호 전 공사를 보면서 북한체제의 미래가 며칠 남지 않았음을 느낀다. 지금까지 북한 정권이 보여준 모습은 어떤 국가나 폭력장치도 보여주지 못한 모습이었다. 구체적으로 모든 개개인의 삶의 영역을 철저하게 장악하고 지속적으로 지배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수령 3대 체제를 거치면서 나라를 가난에서 구하지 못하게 되자 3대 세습이 오히려 악재를 낳게 됐다. 김일성, 김정일 시대에는 거짓과 속임수가 통하고 폭력이 정당화됐다. 하지만 김정은 시대에 들어서는 오랜 굶주림과 폐쇄의 원인이 어디서부터 온것인지를 인식하는 인민이 많이 생겨났다. 그리고 수령 세습제에 대한 의문이 퍼지면서 체제에 반항하려는 움직임이 땅속 깊은 곳에서 솟아나는 새싹처럼 밀고 올라오고 있다. 

 

영국주재 북한대사관에서 근무하다 귀순한 태영호 전 공사 <사진=KBS영상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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