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
  • 입력 2017.01.11 14:49

우리 사전에 오른 이 처변(處變)이라는 낱말의 뜻은 대개 ‘사태의 변화를 잘 수습하다’의 정도다. 단어의 앞 글자인 處(처)를 ‘처리하다’는 흐름에서 ‘처리’한 경우다. 한자의 조어 맥락에서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이 글자를 ‘처하다’로 푸는 때도 있다.

이 흐름에서 단어를 볼 때는 ‘변화에 처하다’는 새김이다. 오히려 쓰임이 더 많은 의미다. 변화라는 것은 삶속에서 늘 닥치기 때문이다. 우선 봄, 여름, 가을, 겨울의 계절 변화가 그렇다. 날씨도 바람과 비 등 갖은 기상의 변화로 매우 다채로운 모습을 보인다.

그런 변화에 적응하는 과정이 어쩌면 인생이다. 나라의 살림도 그렇고, 사느냐 죽느냐를 두고 벌이는 싸움도 마찬가지다. 인생의 길에는 늘 풍파(風波)가 닥친다. 나라의 운영에도 변수는 늘 등장한다. 전쟁터는 수시로 변하는 여러 조건들을 두고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승부가 갈리는 곳이다.

그런 싸움터의 예를 들어본다. 먼저 오위(五危)라는 말이 있다. ‘다섯 가지 위험’이다. 여기서는 전쟁터 장수에게 드러나는 다섯 위험 요소라는 뜻이다. 장수의 능력은 전쟁의 승부가 갈리는 큰 길목이다. ‘오위’는 이런 장수가 패배해 군대를 전멸시키는 다섯 위험을 지적하는 내용이다.

첫째는 필사(必死)다. 죽음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태도다. 이는 장수의 죽음을 부르기 쉽다. 다음은 필생(必生)이다. 저만이라도 반드시 살겠다는 자세다. 그러면 적에게 포로로 잡히기 십상이다. 셋째는 분속(忿速)이다. 성급해 화를 잘 내는 경우다. 적에게 모욕을 당하는 결과를 부른다.

넷째는 염결(廉潔)이다. 스스로의 도덕적 정당성에만 집착하는 행위다. 지조(志操)와 절개(節槪)만 따지다 적에게 농락당한다. 다음은 애민(愛民)이다. 백성을 극도로 아껴 전쟁터 전체를 휘감는 상황에 대응하는 때를 놓친다. 결국 적에게 끌려 다니는 일이 닥친다. <손자병법(孫子兵法)>에 나오는 내용이다.

이 다섯 가지 위험 요소는 결국 전쟁터의 승과 패를 가르는 요인이라는 지적이다. 아울러 병력이 전멸(全滅)의 상황에 이르는 참담한 결과까지 부를 수 있다. 그래서 생사를 극도로 신중히 다루며 감정에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 개인적인 생각을 전황(戰況)과 혼동하지 말아야 하며, 크고 작은 요소를 정확하게 가를 줄 알아야 한다.

그래서 나온 말이 처변불경(處變不驚)이다. 모든 변화에 처해도 놀라지 말라는 뜻이다. 침착하면서 냉정한 판단을 놓치지 말라는 충고다. 감정의 동요는 금물이며, 각 싸움 요소의 크고 작음을 잘 다루라는 얘기다. 전쟁이나 그에 준하는 상황의 변화에 놓였을 때 중국인들이 자주 사용하는 성어다.

대한민국 새 해 기상이 격변을 예고한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미국 새 행정부의 출범, 미사일 고고도 방어체계를 두고 벌이는 중국의 보복과 도발, 일본의 약삭빠른 처신 등이 다 그렇다. 한 해 내내 우리의 전략적 판단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일깨우는 국제정치의 새 기류다.

우리는 ‘처변불경’을 참 잘 하고 있는 모습이다. 다른 맥락에서다. ‘변화에 처해 있으면서 신경이 무뎌져 전혀 놀라는 일이 없다’의 흐름에서다. 아무도 잘 놀라지 않으며, 격변의 소용돌이 자체에 관심도 두지 않는 분위기다. 모두 다 우리 안의 싸움을 구경거리 삼아 들여다보는 데만 열중한다. 나라 모습이 정말 많이 망가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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