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
  • 입력 2017.01.25 16:19

우리가 자주 쓰기도 하지만 또 자주 오용하는 단어가 금도(襟度)다. 襟(금)이라는 글자는 옷깃을 가리킨다. 그 가운데서도 가슴 부위에 해당하는 옷깃을 지칭하는 글자다. 따라서 눈에 많이 띈다. 남에게는 숨기려고 해도 제대로 숨길 수 없는 곳이다.

이 글자는 사람의 ‘마음’을 말하기도 한다. 옛 사람들은 마음을 품는 곳이 가슴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머리에는 생각이 머물지만, 사람이 사람을 대하는 마음가짐은 대개 가슴에 깃든다고 여겼다. 포부(抱負), 이상, 뜻, 지향 등은 따라서 가슴과 관련이 있다.

그 정도와 크기, 수준 등을 나타낼 때 붙는 글자가 度(도)다. 이 글자는 크기나 길이 등을 재는 의기(儀器)를 말한다. 흔히 길이와 부피, 무게 등을 지칭하는 도량형(度量衡)이라는 말에서 자주 등장하는 글자다.

그래서 금도(襟度)라고 하면 가슴의 크기다. 그냥 육체의 가슴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마음가짐의 크기를 드러내는 말이다. 남을 헤아리고, 남을 받아들일 줄 알고, 남과 어울릴 줄 아는 능력이다. 이를 테면 포용력과 개방성이다.

따라서 이 단어를 ‘법도’ ‘원칙’ ‘규범’으로 사용하면 잘못이다. “금도가 부족하다” “금도를 어겼다”는 등의 표현으로 쓸 때가 그렇다. 몇 차례 더 연역해서 그런 뜻으로 쓸 수도 있다. 그러나 글자의 원래 새김을 잘못 풀어간 경우다.

마음은 어쩌면 헤아림이 근본일 수 있다. 먼 세상 한 곳의 홀로 떨어진 장소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몰라도, 남과 어쩔 수 없이 부대끼며 살아가야 하는 사람이라면 이 마음가짐의 근본 바탕인 헤아림에 밝아야 한다.

헤아림으로써 남의 눈과 마음에 비친 나를 알 수 있으며, 또한 그로써 남의 의견에 귀를 기울일 줄 안다. 따라서 금도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두에게 중요하다. 그런 금도를 제대로 갖춰야 남과 함께 어울릴 수 있는 까닭이다.

흉금(胸襟)이라는 말도 있다. 역시 마찬가지 맥락이다. 가슴(胸)과 그 앞의 옷깃(襟)을 한 데 엮었다. 가슴에 품은 생각이나 뜻을 가리킨다. 친구에게 마음을 터놓고서 제 뜻과 감정을 풀어놓을 때 자주 사용한다.

심금(心襟) 역시 같다. 가슴에 품은 생각이나 의지다. 마음을 울린다고 할 때의 심금(心琴)과는 다르다. 금기(襟期)는 가슴으로 품는 기대, 희망, 뜻을 가리킨다. 그저 옷깃을 가리킬 때는 의금(衣襟)이다. 하지만 이를 잘 만져야 한다. 흐트러진 모습은 이 옷깃이 어떻게 다뤄져 있는가에서 곧 드러나기 때문이다.

옷깃을 잘 매만지는 일은 정금(整襟)이라고도 적는다. 가다듬는다는 뜻의 整(정)이라는 글자를 앞에 붙였다. 염금(斂襟)도 그렇다. 옷깃을 잘 매만진 뒤 남을 정중하게 대하는 자세다. 제대로 거둬들인다는 뜻의 斂(렴)이라는 글자를 붙인 경우다.

새삼 ‘금도’가 떠오르는 이유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새 대통령 때문이다. 취임 뒤 연일 발표하는 생각이나 마음의 크기가 예전 미국의 지도자답지 않아서다. 각박한 통상 전략, 자국 중심의 강파른 저울대, 대외정책의 이기적 속성이 예전까지 봤던 미국의 가슴 크기와는 정반대다.

민주와 자유라는 큰 가치는 사라지고 날렵한 장사꾼의 안목만이 남은 느낌이다. 넓은 포용성과 밝은 개방성 대신 ‘장사꾼 미국’이 부상했다. 이제 우리도 옷깃을 다시 매만져야 할 때인가 보다. 트럼프의 미국은 예전의 미국이 아닌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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