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최인철기자
  • 입력 2017.03.10 09:00
일본 시코쿠 지역 나루토시에는 1차세계대전 당시 1000명에 가까운 독일인들을 수용한 포로수용소가 존재했다./사진출처=나루토시

[뉴스웍스=최인철기자]많은 사람들은 일본과 독일이 2차세계대전의 공동 전범국으로만s 기억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1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승전국으로 독일의 아시아 점령지역을 빼앗고 일본 섬지역에 독일인 포로수용소를 운영했다는 것을 아는 경우는 많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1914년 6월 1차대전이 발발하고 독일,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이탈리아(3국동맹)에 오스만투르크, 불가리아가 동맹군을 형성하자 영국, 프랑스, 러시아(3국협상)와 일본이 연합국을 맺어 맞붙었다.

일본은 1차대전의 주 격전지인 유럽과 상관없이 영국과의 군사동맹이라는 점을 십분 활용하는 기지를 발휘한다. 아시아 맹주라는 야욕을 채우려는 절호의 기회로 삼은 것이다. 일본은 독일에 대한 선전포고와 동시에 아시아의 독일 군사기지를 점령했다. 

특히 중국을 호시탐탐 분열점령했던 유럽 주요 국가들이 자기네 안마당 전쟁에 골몰하는 사이에 신해혁명 이후 중화민국의 대통령을 맡고 있던 위안스카이(遠世凱) 정권을 압박하면서 제국주의의 발톱을 드러냈다. 독일의 중국 조차지였던 산둥성의 칭다오를 점령하고 중국주권을 침해하는 21개조 요구를 강요했다. 

칭다오 등에서 독일군과 민간인 1000명을 포로로 잡은 일본은 시코쿠의 동쪽지역인 나루토시 등을 비롯해 독일군 포로수용소를 만들어 수용했다. 수용소에 있던 독일인들은 자체적으로 연주단을 만들어 1918년 독일의 대표 작곡가 베토벤의 9번 교향곡 '합창'을 첫 연주하면서 일본과 특별한 인연을 이어간다. 나루토시는 합창 연주 100주년을 맞이하는 2018년에 '반도' 포로수용소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는 방안을 추진중이다. 독일군 포로수용소의 일화는 10년전 '발트의 낙원'이라는 제목의 영화로 제작됐다.

한편 일본은 1919년 파리에서 열린 강화회의에 전승국으로 참여하고 국제연맹의 상임이사국이 되는 등 사실상 미국, 영국에 이어 세계 3대 강대국으로 급부상했다. 일본은 1차대전의 덕을 톡톡히 보면서 조선, 해운, 공업생산이 급증하면서 명실상부한 공업 강대국으로 변신하고 2차 세계대전을 통한 세계 최강국이라는 꿈을 꾸게 만든다. 메이지 유신이후 50년이 안돼 극동의 아시아 섬나라가 세계를 호령하는 존재로 급부상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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