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최인철기자
  • 입력 2017.03.21 09:00
사카모토 료마는 목숨을 건 탈번을 통해 일본 근대화의 주인공으로 거듭난다. 료마가 탈번하면서 지난간 곳들은 현재도 역사적 명소로 이어지고 있다. /사진출처=Tanae.com

[뉴스웍스=최인철기자]일본은 묘하게 유럽과 유사한 점이 상당히 많다. 한국과 중국이 일찍부터 중앙집권제 국가로 일부 제후나 왕족을 제외하고는 관료들을 지방에 파견해 국가를 운영했던 것과 달리 일본은 일찍부터 유럽식 봉건제와 유사한 통치시스템을 갖췄다. 

막부시대에는 허울뿐인 천황과 사실상 실세이자 일본 전국을 통치하는 쇼군이 전국의 다이묘들에게 영지를 하사해 국가를 관리해왔다. 다이묘들은 한국과 중국의 관료와 달리 유럽의 지방제후와 같이 가문이 수 대를 거쳐 지방을 다스리는 '왕'같은 존재다. 

다이묘들이 다스리는 '번(藩, 현재 일본의 현과 유사한 지방단위)'은 하나의 국가로 존재하다보니 이 지역에서 거주하는 사무라이, 백성은 모두 번을 벗어나 살 수가 없었다. 

다이묘들은 자신만의 강력한 지방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번을 벗어나는 행위, 이른바 '탈번(脱藩, だっぱん)'을 엄하게 처벌했다. 특히 번 방위의 최고 병력인 사무라이들이 탈번을 할 경우 토벌대를 보내 끝까지 추격해 잡아들이거나 여의치 않을 경우 살해하는 등 내부단속에 철저했다. 

지금으로 따지면 탈번은 나라를 버리는 매국노 정도로 취급받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같은 시스템은 대다수 사무라이와 백성들을 평생 '우물안 개구리'처럼 만들어 내부결속에 성공할지는 몰라도 새로운 외부의 세력이나 지식을 받아들여 발전하는데는 장애가 되고만다. 안정적 평화유지가 장기적으로는 고인 물처럼 썩어가는 것이나 다름없었던 셈이다. 

결국 에도막부 말기에는 개화나 개혁에 몸을 던진 선각자들이 일제히 탈번하며 낭인으로 전락해 온갖 살해위협에도 메이지유신과 일본 개방을 이끌어낸다. 절박하게 목숨을 건 개혁개방이다 보니 어쩌면 중국이나 조선과 달리 근대화에 성공한 요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대표적인 탈번 낭인들로는 조슈 번의 요시다 쇼인과 다카스기 신사쿠, 도사 번의 사카모토 료마와 나카오카 신타로(中岡慎太郎) 등으로 대표적인 일본 근대화의 주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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