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16.02.25 15:45
12살에 고향 중국 복건을 떠나 싱가포르에 이주한 린언창. '기름을 훔치는 쥐'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석유업계의 거두로 올라선 그의 역정은 파란만장하다.

1956년 나온 ‘자이언트(GIANT)’란 영화가 있었다. 전설적인 명배우들, 록 허드슨과 엘리자베스 테일러, 그리고 제임스 딘이 주역을 맡았다. 내용은 미국의 광활한 텍사스를 배경으로 '베네딕트 가(家)'라는 한 집안의 3대에 걸친 사랑과 희망, 좌절과 삶을 그린 영화였다.

영화 중 잊을 수 없는 장면은 베네딕트 집안의 한 일꾼인 제트 링크(제임스 딘 분)가 현금 대신 상속받은 불모의 땅에서 석유를 캐내 고생 끝에 결국 거대한 유전회사의 주인이 된다는 대목이다. 그는 고생 끝에 성공을 쟁취하는 인물의 현대판 미국식 ‘전형(典型)’이었다.

연기가 매우 인상적이었던 제임스 딘에 의해 잘 그려진 그런 인물의 전형은 중국에서도 찾을 수 있다. 굳이 이야기하자면, ‘중국판 자이언트’인 셈이다. 우리가 지금 여행하는 중국 동남부 복건(福建)에는 그런 전형들이 제법 많이 눈에 띈다. 복건 출신의 상인 그룹, 즉 앞 회에서 적은 복건상방(福建商幫)중에서 어린 시절 싱가포르로 건너와 또 하나의 거대한 성공 신화(神話)를 만든 사람이 있다. 중국의 ‘제임스 딘’이다.

그의 별명은 ‘석유대왕(石油大王)’이다. 때로는 ‘O.K Lin’이라고도 불린다. 정식 이름은 林恩強 린언창 Lim Oon Kuin)이다. 중국 상인, 즉 화상(華商) 그룹 안에서도 퍽 유명한 인물이다. 그는 1943년 중국 복건 보전시 예두진 석송촌(福建莆田市埭頭鎮石城村)에서 평범한 어부의 아들로 태어나 12살에 싱가포르로 이주한다.

초기에는 생활고로 말라카 해협을 오가는 유조선들을 대상으로 석유를 훔치기도 했다고 알려졌다. 그런 행위를 하는 사람들은 보통 油耗子(유호자 여우하오쯔: 기름 훔치는 쥐)라고도 하는데, 훔친 석유를 중간상에 넘겨 돈을 벌어들였다.

그러나 린언창은 20세 되던 해인 1963년부터 다른 일에 나선다. 기름 훔치는 쥐로 평생을 살아가기에는 그의 비즈니스 재능이 너무 아까웠을 것이다. 아무튼 그는 직접 발품을 팔면서 발전소, 운송회사, 건축공사장을 방문해 디젤유를 공급한다. 밤의 기름 도둑질 쥐에서 어엿한 낮의 기름 장사꾼인 油販子(유판자 여우판쯔)로 변신한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그는 인력을 대거 고용하고 유조차를 구입해 직접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 지역의 벌목장, 농장, 어선, 광산, 공장, 여관 등에 석유 제품을 팔기 시작했다. 유명한 싱가포르의 Hing Lung Group은 이렇게 태동하기 시작했다.

1968년 100톤짜리 유조선 구입을 필두로 그는 점차 말라카해협을 오가는 선박에 주유(注油) 서비스에 나섰고, 국제 석유무역과 유류 해운사업에도 뛰어든다. 1980년대에 접어들어 Hing Lung Group은 원유를 수입 제련하는 정유업으로 사업 범위를 확장했다. 1980년대 말에는 싱가포르 정부가 인증한 두 석유 무역기업의 하나로 발돋움했다. 그 후 25척의 유조선을 소유하는 데까지 번성한다.

2013년 현재 린언창은 싱가포르 부자 순위 중 13위에 이르렀다. 중국에서 석유업은 방대한 이익을 낳는 황금알의 거위다. 그렇기에 중국에서의 석유업은 三桶油(삼통유 싼퉁여우: 세 기름 통)이라는 이름을 만들어냈다. 中石化(중석화 SINOPEC: 중국 석유화공집단공사), 中石油(중석유 CNPC: 중국석유가스그룹공사),中海油(중해유 CNOOC: 중국해양석유총공사) 등을 일컫는 말이다.

이들은 ‘괴물’이다. 2014년 Forbes에 의하면 싼퉁여우의 총 영업수익은 6.1조 RMB(1RMB는 약 180원)에 이르렀으니 매일 168억 RMB가 수익으로 들어왔다는 얘기다. 중국 석유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國企吃肉的同時,民企也分得了湯(국영기업에서 고기를 먹으면 민간기업들은 국물을 얻어먹을 수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지난 30년 간 중국에서 석유업은 독과점 업종이었다. 그럼에도 싼퉁여우라는 국영기업의 독과점하에 일부 민영기업들이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 중 가장 두드러지는 그룹이 바로 복건 출신들의 민영 기업들이었으며, 이들은 복건석유상그룹(福建油幫)이라는 별도의 명칭을 불렸다.

이들은 지난 30년간 서로 협력하며 자원을 공유했고 부를 축척해 중국 민간 석유업계의 반을 차지했다. 바깥에서 보기에는 신비스럽다는 느낌을 줄 정도인 이들 복건석유상그룹은 늘 서로 뭉쳤고 협력했다.

2010년도 1월 중국의 ‘능원(能源)’이라는 잡지는 ‘揭秘石油福建幫(복건석유상그룹의 비밀을 파헤친다)’는 특집 기사를 내보낼 정도였다. 이 잡지에 따르면 중국 민간 석유업계의 총 규모는 3000억 RMB가 넘는다고 한다. 그 복건 석유상인들의 뒤에는 늘 어둠 속에서 묵묵히 그들을 지지해준 세력이 있었다.

이 세력은 광동(廣東) 광주(廣州) 출신 석유상인그룹(廣府油幫)들이 간절히 보내온 경유(輕油) 공급 요청을 물리치고 복건 석유상인그룹에게 우선적으로 석유제품을 공급했다. 아울러 복건성 같은 고향 출신들이 어려움이 생기면 항상 앞에 나서서 문제를 해결했다.

배후에 버티고 섰던 강력한 후원자, 그는 다름 아닌 같은 고향 출신 해외 이주 화교, 싱가포르의 ‘제임스 딘’ 린언창이었다.

국영기업이 독점으로 지배하는 중국 시장에서 아무리 석유제품을 구하기 어려운 시절이었어도 그는 동향 출신의 석유상들이 어려움을 호소하면 언제라도 팔을 걷어붙이고 앞에 나섰다. 린언창이 “OK~”하면 복건석유상인들이 원하는 석유제품이 곧 당도했다. 대신 그가 “NO~”하면 어느 누구도 석유제품을 받지 못했다. 그래서 그의 별명이 복건 석유 상인패들에게는 'OK Lin‘으로 자리를 잡았다.

석유로 유명한 세계의 도시를 꼽으라면 우선 미국의 휴스턴이다. 나머지가 네덜란드의 노트르담과 싱가포르다. 매년 5만 척의 유조선들이 정제된 석유제품을 싣고 이 세 도시에서 각 목적지를 향해 떠나며, 그 유조선은 곧 엄청난 돈을 싣고 돌아온다.

말라카 해협은 지난 30년간 수많은 복건 출신 중국 석유상인들의 사랑과 희망, 좌절과 성공을 지켜봤다. 20세기의 부(富)를 상징하는 대명사는 과연 무엇일까? 아마 US Dollar, Gold, 그리고 Petroleum oil, 바로 석유일 것이다.

2016년 2월 7일 현재 중국의 외환 보유고는 미화로 3.23조 달러, 금 보유량은 1,722.5톤이다. 그리고 원유 수입량은 2015년에 총 3억 3400만 톤에 달했다. 중국에서 보면 남쪽의 바다, 南洋(남양)은 일찍이 대륙을 떠나 바다를 건너 정착한 중국 화교들의 비즈니스 정신이 깊이 자리를 튼 곳이다.

그 남양의 싱가포르에서 석유 GIANT 왕국을 이룬 중국판 제임스 딘인 복건상인(福建商幫)출신 린언창은 비록 일선에서 물러났지만 아직도 석유계의 Asian Godfather로서 복건 상인그룹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수행해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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