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19.07.20 09:30
걷는다는 것은 삶이자 생명, 그리고 깊은 사유다. 그런 의미에서 걷는다는 것은 꿈을 꾸는 것과 같다. 모든 분야에서 이미 감각화 되어버린 현대문명사회,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관계의 경박함을 놓아버리고 나는 트레킹(Trekking) 속으로 들어간다.
몽유도(夢遊道). 꿈 꿀 몽(夢), 즐거운 나들이 유(遊), 길 도(道), 도리 도(道) 그리고 변함없이 생성변화하는 무위(無爲)상도(常道)의 의미다. 직역하면, ‘즐거움이 있는 새로운 길을 꿈꾸며...’ 정도가 되리라.
그렇지만 원래 도는 늘 새롭고 그래서 늘 즐거운 것이다. 그 볼 수도 없고[夷] 들을 수도 없으며[希], 만질 수도 없다고[微] 한 그 변함없는 도의 속 뜻은 외면하고 우리는 늘 눈에 보이는, 들을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길 도, 도리 도에서 맴돌며 인위적 길만 애써 찾고자 한다. 그 길은 사실 무수히 많은 것들이 오가며 쌓이고 다져진 새로울 것 하나없는 세속적 욕망의 길이건만...
뉴스웍스에 기고할 카미노 데 산티아고(Camino de Santiago) 몽유도(夢遊道)는 7월 6일부터 9월 3일까지 60일 동안 걷고 꿈꾸는 길 위의 삶, 즐거운 걸음 속에서 도(道)를 느껴보고자 하는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이다. 본격적인 출발점은 프랑스 파리(Paris), 바욘(Bayonne)을 거쳐 도착하게 될 프랑스 스페인 국경도시 작은 마을 이룬(Irun)이다.
거기서부터 고독한 대서양의 해안선 북쪽길 ‘카미노 델 노르테(Camino del Norte)’ 약 550km를 걷고, 또 히혼(Gijon)에서 아스투리아스 주도 오비에도(Oviedo)를 거쳐 내륙지방을 오르고 내리는 산악 원조길 ‘카미노 프리미티보(Camino Primitivo)' 약 320km, 도합 약 870㎞ 정도를 24㎏의 백팩을 짊어지고 야영하고 숙박한뒤 ‘빛나는 별 들판의 산티아고’를 뜻하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에 입성하는 길고 긴 여정이다. 이어서 세상의 끝 피스테라(Fisterra)를 찾은 후 포르투갈 리스본을 방문하고 또다시 스페인 마드리드, 바르셀로나를 경유하여 귀국하는 총 60일의 결코 만만치 않은 여정인 것이다.
“왜 가냐구? 아~그냥 걷지 즐겁게 ㅎㅎㅎ 몽유도...걷는 길이 사는 길이니 그냥 즐겁게 걷고 새 세상 꿈꾸며 잘 살다 오겠습니다~ 꾸벅”
땀 흘리며 무거운 짐 꾸리는 내 모습이 조금 안쓰럽던지 아내가 묻고 내가 대답했다.
나는 걷는다. 그냥 걷는다. 걷는 게 사는 거니까. 그래서 오늘 내가 걷는 길이 오늘 내가 사는 길이다.
걷는 길을 한자로 도(道)라 부른다. 길 도는 기본적으로 사람이 걷는 길을 일컫는 말이지만 사람들이 모여 만든 규칙, 제도 등 유위적 문명(文明)의 길이기도 하고, 천도(天道) 즉 하늘이 만든 생명의 길, 사람을 살리는 무위자연(無爲自然) 길이기도 하다. 다른 말로 도는 살기 위해 걷는 길이고 살아내기 위한 방편이며 살아야 하는 운명이기도 한 것이다.
산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것이다. 오늘 살아간다는 것은 지금 여기 몸과 정신이 온전히 살아있음을 직접 느껴보는 것이다. 생존과 번식의 본능으로부터 자유로워진 70살 지금, 남은 건 소박하게 사는 즐거움이다. 지극히 자유로운 그 소박함을 통하여 비로소 나는 내가 된다…몽유도!
옛 성현은 자연을 소박(素樸)이라 불렀다. 보려해도 보이지 않고[夷], 들으려해도 들을 수 없으며[希], 잡으려해도 잡을 수 없으니[微] 그 존재가 현묘하고 인간 손에 재단되어지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날 것이니 그냥 ‘거친 통나무, 소박(素樸)으로 비유한 것이다.
소박의 관점에서 보면, 난 이명박 대통령을 사랑한다. 복개천에서 생계를 꾸려가던 거친 상공인들의 극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밀어부쳐 기여코 완성시킨 도심의 오아시스, 청계천 푸른 복원 때문에 난 그분을 사랑한다. 또 난 이 대통령을 싫어한다. 그렇게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설명하고 설득하여 국민을 하나로 만들지 못한 지도자의 효율적 무능함을 혐오한다.
그리고 난 문재인 대통령을 사랑한다. 일명 태극기 부대의 극렬한 반대와 보수층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일관되게 밀어부쳐 기여코 평화를 연출시킨 김정은 사랑의 그 순수성 때문에 난 그분을 사랑한다. 또 난 문재인 대통령을 싫어한다. 그토록 많은 우려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이념적 믿음 하나로 지금까지 집요하게 일관함으로써 국민을 완전히 둘로 갈라쳐버린 그 관념적 편향성을 혐오한다.
자연의 위대함이란 보려해도 보이지 않는, 들으려해도 들리지 않는, 잡으려해도 잡히지 않는 그 유무양자지동(有無兩者之同)의 현묘함, 그 깊이를 알 수없는 현지우현(玄之又玄), 전후 내외 넘나듬의 지도리, 곧 중묘지문(衆妙之門)에 있다고 했다.
도덕경은 말한다. 유생어무(有生於無) 유무상생(有無相生)의 유기적 상대성, 문 안쪽에서 보면 저쪽이 바깥이고 문 바깥쪽에서 보면 이쪽이 바깥인 것 처럼 보수진보라는 진영구분이 무의미한 것이라는 상생의 중묘지문을...
사랑과 혐오... 공(功)은 사랑하고 과(過)는 혐오한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애증은 한 몸이다. 자연의 관점에서 보면 물론 이명박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의 공과도 한 몸이다. 그러니 진보와 보수...더 나아가 피차(彼此)는 한 몸일 수밖에...
사실 내편 네편의 구분은 정치적 수사일 뿐,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일러 위정자들은 오직 국민을 위한 국가이익 최우선의 정치적 결단이었다고 말하곤하지... 그러나 이를 생태환경적 관점에서 판단한다면 피아구분 그것은 우리 모두를 서서히 죽음으로 내모는 공존공생의 포기, 공멸을 향한 외눈박이 기생충의 자충적 돌연사가 아닐런지...
비우자 비우자. 몸으로 걷고 마음을 비우자. 그리하여 정신을 생명의 울림으로 살려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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