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최승욱 기자
  • 입력 2019.07.21 08:45
파리 센강. (사진=박인기)

파리에서 뜻하지 않은 일주일을 보내고 드디어  본격 까미노 트레킹을 나서는  날, 파리 날씨는 맑고 쾌청하다. 바스티이 역에서 메트로를 이용해 도착한 몽트라세 기차역에는 참 다양한 모습의 여행객들로 꽉 들어찼다 그리고 TGV 8번 열차 상층 104번 자리를 찾아 앉으니 비로소 순례길 '몽유도'가 이제 비로소 시작되는구나 실감할 수가 있었다. 

“그래, 모든 것은 마음을 더 비우라는 신호였다” 

지난 토요일, 샤를 드골공항에 도착했을 때부터 그 이후를 다시 복기해보고 마음에 쌓인 짐을 내려놓으며 앞으로 펼쳐질 새로운 길에 집중하도록 하자. 

공항에 도착한 첫 날 아이폰 분실사건 발생 후 혼란스러웠던 토, 일요일 밤은 바스티이역 근방 Hotel de Royal Bastille에 머물렀다. 월화수목 나흘 밤은 그 옆 호텔 Hotel de Petit에서 보냈다. 오스테리츠역(Gare d’Austerlitz) 주변 호텔을 찾아 헤매다 만난 호텔 직원 소개 덕분에 밤 12시경 어렵게 찾게 된, 구세주 같았던 호텔이었다. 지금은 매년 바캉스가 시작되는 7월의 파리, 게다가 주말, 역 주변은 온통 투숙객들로 만원이었으니 예약없이 찾게된 호텔 투숙에 깊이 감사해야만 했다.

파리 4구 생 자크 탑이 보인다.(사진=박인기)

사건의 발단은 공항철도역에서 당일표가 매진되면서 Austerlitz역으로 발길을 옮겼고, 거기 또한 매진되어 밤차를 탈 생각에 Montparnasse기차역으로 옮겨가는 도중에 감쪽같이 사라져버린 아이폰과 KB크레딧 카드였다. 아이폰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현실감에 순간 당혹감이 몰려왔고 이어 공포감까지 엄습했다. “이제 어찌해야 하는가?”

침착하게 생각을 단순화 해보니 우선 새 아이폰부터 장만하자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이어 떠오른 생각이 아이폰을 찾아 헤매다 발견했던 ‘한국식당 비빔밥 집으로 가보자’였다.

비빔밥 집에서 일하는 친절한 한국 청년으로부터 레알역 주변에 FNAC, DART 매장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월요일 아침 일찍, 시청 Hotel de Ville 주변을 맴돌다 뜻하지 않게 중고 아이폰 매장 SFR을 찾게 되었다. 마침 잊어버린 아이폰과 비슷한 기종 아이폰 6S를 손에 넣고보니 모든 게 술술 풀리게 예정되어 있었다는 듯 한결 마음 편안해졌다. 

시간은 오후 2시경, 곧바로 Montparnasse 기차역에 가 기차표를 구입해 떠나려 하니 아뿔싸 이번엔 또 밤차까지 당일 기차표가 다 매진되었단다. 할 수없이 다음날 표를 구입하고 다시 호텔로 터덜터덜 돌아오니 설상가상 낮부터 호텔엔 빈 방이 없단다.

옆 호텔로 배낭을 옮긴 후 아이폰을 들고 비빔밥 집부터 다시 찾았다. 지긋지긋한 파리를 떠나 카미노에서 한국 청년을 만나 문제를 풀어보려 했던 생각을 바꿔 지금 당장 파리에서 한국 청년으로부터 아이폰 문제를 풀어내기 위해서였다. 

메트로를 타고가며 생각을 정리했다. 먼저 비빔밥 집 청년을 다시 만나 아이폰 활성화부터 도움 청하자. 그리고 이왕 이렇게 된 것, 서울 집에 어떻게든 다시 전화하고 충분한 정보 공유부터 하자. 마지막으로 이제 파리에 더 머물게될지라도 침착하게 내 아이폰의 상태대로 앱을 설치하고 복구할 수 있는 것은 복구해보자. 그리하여 본격적인 카미노 출발 전 나흘 동안 마치 모든 것이 잘 풀리도록 예정되었던 것처럼 순례길 워밍업을 위한 파리 관광 기회가 더 생긴 것이었다. 비바 한국청년, 부엔 카미노!

정말 불행중 다행, 막다른 길에 다다르니 새로운 길이 열린 것이다. 한국 청년의 도움으로 무사히  카톡앱을 설치하고, 이어 즐겨 쓰던 네이버 노트, 캘린더까지 장착할 수 있었으니...
날아갈 듯한 마음으로 서둘러 한국과 통화시도하니 반가운 딸 헬렌이 받었고 게다가 딸로부터 마침 덴마크 연수갔던 조카 신혜가 지금 파리에 돌아왔다는 기쁜 소식과 함께 전화번호까지 얻을 수 있었다. 마치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으로 신혜와 통화한뒤 저녁까지 함께 할 수 있었으니, 역시 막다른 길에 다다르면 기적처럼 새로운 길이 열리는가. 아~ 사는 길 걷는 길, 꿈꾸며 걷는 길 까미노 데 산티아고!

성 메리 성당 앞 스트라빈스키광장.(사진=박인기)

파리에 머물면서 시내 관광을 했다. 복잡한 샤틀레(Chatelet)역과 뽕피두(Pompidou)광장, 레알(Chatelet Les Halles)역 등을 거닐다가 파이프오르간 연주소리가 인상적이었던 SAINT-EUSTACHE 성당에 들어가봤다. 수직으로 치솟은 기둥 위에 우아하게 짜여진 고딕양식의 천정구조물이 인상적인 성당안 풍경은 역시 옛모습 그대로 고색창연했다.

파리 SAINT-EUSTACHE 성당. (사진=박인기)

북쪽으로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 사람 구경과 상점구경을 하며 걷다가 다시 돌아 내려와 Chatelet을 끼고 시청을 지나 잠시 멀리 노틀담(Notre Dam)성당을 바라보다가 센강(La Seine)을 따라 동쪽 방향으로 걸으며 Bastille로 돌아왔다. 

센강. (사진=박인기)

다음날에는 1번 메트로를 타고 이동, 시청에서 서쪽 방향으로 걸음을 옮기며 루브르 박물관(Palais Royal Musee du Louvre) 광장에 들어서 옛 정서에 잠겼다가 튈러리(Tuileries)정원을 가로질러 콩코드(Concorde)광장에 들어섰다. 삼성갤럭시 광고판이 압권인 건물 사이로 마들렌(Madeleine)성당이 보였다. 역시 막달라 마리아 상 위를 비춰 내라는 원형천정 빛이 감동적이었던 곳을 지나칠 수가 없다.

또다시 걸음을 재촉하여 샹제리제(Av des Champs-Elysees)거리를 오르며 개선문(Arc de Triomphe Tombe du Soldat Inconnu)에 다가섰다 그리고 발길을 돌려 옛기억을 더듬어야 했다 에펠탑(Tour Eiffel)을 보기위해 트로카대로(Trocadero)광장에 들렀다가 서둘러 Jasmin까지 가야했기 때문이다.

에펠탑이 바라다 보이는 트로카대로(Trocadero) 광장에서 퐁 드 세브레(Pont de Sevres)로 향하는 9호선을 타자 자스민향이 스치는 약 5년 전 기억 속으로 들어왔다 추억의 장소 Ranelagh역을 내려 Jasmin역까지 걸으며 천천히 기억울 더듬었다.  ‘QUARANTE & UN’ 카페, 공예품 판매장 ‘TALMARIS’, Bar-Sandwicherie-Salades-Panini를 판매하는 ‘Cafe le Jasmin’, ‘ERIC KAYSER’ 빵집, 일식음식을 포장판매하는 ‘nanaya', 그리고 아파트로 들어가는 Jasmin역 앞 모퉁이 ‘G20’ 마트 모두 예전 모습 그대로 변함없이 서있었다. 그 옆 골목길 Rue Ribera에 들어서면 곧바로 건물 지나 꺽어지는 좌측 골목이 반가운 Rue Dangeau다. 그 골목끝에 한 달 머물었던 아담한 아파트가 자리잡고 있다. 지금도 아파트 입구는 항상 문이 담겨있고 사람 보기도 쉽지 않다. 계단을 내려가 안쪽으로 쑥 들어가며 화단을 지나면 왼쪽에 출입문이 있었지...좁고 답답했지만 생각해보면 그래도 참 정겨웠던 추억의 장소다.

‘몸으로 걸으면 정신이 맑아진다. 마음 속 복잡한 생각을 한 짐 내려 놓게 되니까...’ 

한국을 떠나며 든 생각이었다. 사실 내 나이 70살, 몸무게 75kg...이 무게를 감당하기 위해 동원된 장비무게가 또 24kg이다. Backpack 18kg, Frontpack 4kg...여기에 몸에 걸친 셔츠와 반바지, KEEN 등산화와 양말 두 켤레 그리고 수통 두 개에 물 담으면 2kg이 더해질 것이다. 집 떠나기 전 세 번씩이나 풀고 여미며 무게를 덜어 내려 했건만 어쩌랴 이제 그 무게 감내해야 할 내 고통이다.

이번 Backpacking을 위한 장비 목록은 다음과 같다. Fjallraven KAIPAK 58, 측면에 매달린 LEKI 스틱과 운동화 샌달 각각 한 켤레씩, 그리고 배낭을 열면 맨 아랫부분 D-Bag 속에 침낭과 매트리스, 우의 겸 방한용 후드 두 벌, 간 팔 상의와 레딩 하나,그리고 반바지 한 벌과 티 셔츠 두 벌이 들어 있다. 그 위 작은 D-Bag엔 말린 쌀, 비상용 말린 소고기, 컵 하나와 1인용 버너세트가 들어있다. 그리고 그 옆 통엔 MSR 1L, 무게 1.9kg짜리 스위스 1~2인용 텐트가 수직으로 세워져 있다. 계곡 물 등을 끓여 야영하는데 필수품이다. 마지막 그 위 작은 D-Bag 두 개엔 헤드렌턴, 비상약 상비약 봉지가 들어 있으며 기타 양말 서너켤레와 세면도구 스패치 등이 들어 있다. 생각해보니 옷 한 벌, 양말 두 켤레 등으로 최소 장비화했어야 했다.

당해봐야 깨닫듯이 실전의 노우하우가 중요함을 새삼 절감하게 되었다. 문명인의 자연인 코스프레는 모든 것을 내려 놓아야 한다. 비워야 한다. 그것이 정신을 되찾고 자유를 얻어 즐겁게 동진(同塵)하는 초월의 몽유도(夢遊道)다.

(사진=박인기)

바욘(Bayonne)에 도착하니 저녁 7시 53분, 순례자 여권과 지도, 기타 정보를 얻기 위해 여기서 하루 머물러야 한다. TGV를 타고 오는 도중 trip.com을 탐색하니 광고안내문은 마지막으로 방 하나 남았다며 빠른 예약을 권유한다.

예약을 끝내고 위치를 물어 니브강을 건너 찾아간 곳은 ‘Baionacoa Residence’, 하룻밤에 86.79유로다. 좋은 인상에 투머치 토커인 주인장은 어떻게 예약했느냐며 묻길래 trip.com 사이트를 보였더니 신기한 듯 생전 처음 보는 사이트라며 한참 검색한다. 몇 가지 묻고 이룬(Irun)으로 이동하여 북쪽길을 걸을 생각이라는데 자꾸 생장쪽이 조용하고 전통적인 까미노라며 또 적극적으로 사설을 늘어 놓는다.
 
창문이 아기자기한 벽돌 주거건물 사이 해 넘어가는 잔광이 예쁘게 걸린 오래된 고도, 빛바랜 성당 정취가 고풍스럽게 인상적이다. 동네  한 바퀴 거닐고 나서 웃음소리 넘치는 몫 좋은 La Nive 강가 ‘LE VIVALDI’ 카페에 느긋하게 자리 잡고 앉았다. 풍미 가득한 씨후드 CHIPIRON PLANCHA CART와 맥주 Pietra 한 병으로 프랑스 남부도시 Bayonne의 역사와 문화 정취를 나름대로 상상해 본 저녁이었다. 강가에 서서히 어둠이 깃들기 시작한 밤 10시 20분, 디저트로 나온 바닐라 초콜렛 아이스 크림 맛은 상상했던 그 맛, 익숙한 서울 맛이 묻어났다.

아듀~ 바욘의 밤이여!

*편집자 주=박인기는 강원대학교 멀티디자인학과에서 디자인을 가르치다가 정년 퇴임한 교수다. 서울대학교 미술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대우그룹 제작부, 애드케이 종합광고대행사 등에서 직장생활을 한뒤 대학 강단에 섰다. 강원대 철학과에서 동양철학 박사학위과정도 수료했다. 대학 시절부터 산악부 활동에 심취했던 그는 올해 70살이 되자 비로소 세상으로부터 한결 자유로워졌다고 한다. 그동안 꾸준히 산악부 OB들과 종종 산을 찾아 마음을 비우곤 하던 그는 지난 겨울엔 여름 호주 ‘The Prom’에서 4박 5일 백패킹을 했다. 이번엔 60일 동안 숙박을 겸한 산티아고 백패킹에 도전한다. 내년 겨울엔 호주에서 6박 7일간 ‘Overland Track’에서 백패킹하기로 이미 예약까지 마쳤다. 즐겁게 80살까지 세상 트레킹하는 것이 '걷는 삶', '꿈꾸는 삶'의 소망이라는 소신을 갖고 있다.  "꿈꿀 수 있고 살 수 있으면 그게 모두 산이 아니겠는가?"라고 반문한다. 그는 7월 6일 13시20분 대한항공 여객기로 인천공항에서 프랑스 파리로 출발했다. 뉴스웍스 독자들도 그와 여정을 함께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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