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최승욱 기자
  • 입력 2019.07.27 05:00
(사진=박인기)

16일 늦은 밤 9시경 캠프사이트에 도착하여 텐트를 치고 그냥 잠자리에 들었다. 17일 아침에 일어나 리셉션 담당으로부터 다음 캠프장에 관해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목적지 MUTRIKU 타운에는 4개의 캠프사이트가 있단다. 그 중 산림지역에 위치한  Galdona 캠프장과 해안가에 인접한 Saturraran 캠프장을 목적지로 삼고 이동하기로 했다. 약 26㎞ 거리다.

필자 (사진=박인기)

좀 일찍 서둘러 오후 2시 출발했다. 내겐 상대적으로 시간이 넉넉하니 아침에 일어나 다음 목적지 확인하고 글을 쓰면서 오전 시간을 다 보냈다. 텐트는 절대적인 자기공간이니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롭다.

시내에 있는 인포메이션 센터나 캠프싸이트 리셉션에 가면 'Camping'이란 책자가 별도 비치되어 있다. 그 책자 안내 혹은 리셉션 담당분한테 좀 더 자세하게 물어보면 다음 캠프싸이트까지의 거리, 소요시간,접수 등 리셉션 끝나는 시간까지 사전에 알아볼 수 있다. 적절한 시간을 가늠하며 목적지 싸이트를 결정하면 쉽게 캠퍼(camper)가 될 수가 있다.

(사진=박인기)

물론 백패커의 무게 감당은 본인들 몫이겠지만...내 경우 무리해서 25㎏ 무게를 짊어졌지만 20㎏ 미만으로 배낭 꾸리는 게 당연히 현명하다. 먹고 마시는 음식류는 현지에서 조달할 수 있기 때문에 무게를 차지하는 식량류는 과감히 빼기를 권한다.   

(사진=박인기)

줌마이아에서 GR121번 길을 타고 오르며 약 1시간 정도 거리까지 북쪽 해안길의 진수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환상적인 바다 절경이 펼쳐진다.

(사진=박인기)

영화로 비유하면 클라이맥스의 웅장함과 흥분이다. 깍아지른 절벽과 탁 트인 바다와 밀려드는 파도의 하얀 포말들...산길을 감수하고 올라오니 이런 숨겨놓은 절경을 보게되는구나 싶다.

(사진=박인기)

알고 보니 이 지역이 지리학적으로 Geoparkea지역이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이어지는 지그재그 오름 길은 역시 힘이 많이 든다.

(사진=박인기)

하늘 오르는 길 정말 고역이다 싶을 때 나타나는 까미노 노란색 표시. 그 옆 나무 밑에는 쉼터 의자까지 마련해 놓았다. 

소를 키우고 포도밭을 가꾸는 둥근 구릉의 산동네가 눈 앞에 시원스레 펼쳐져 있다. 연록색 풀밭이 평화롭고 길도 지붕도 모두 하늘과 맞닿아 있는 하늘동네다. 

(사진=박인기)

ERLETE GOIKOA, SiDRA DU FARME 2.50€/BOTELLA’. 스페인어 모르는 영어권 사람들을 위해 ‘Drink here or take away’ 까지... 

숙소를 겸한 농가 포도밭 앞에 세워놓은 ‘집에서 담근 사이다 술(?)이니 2.5유로 돈 통에 넣고 마시고 가시거나 들고 가시라’는 광고 간판이다. 그런데 바람에 포도넝쿨잎이 흔들리고 소 서너마리가 되새김질 하고 있으며 옆에서 얼룩 바둑이까지 공연히 밭두렁 흙을 파고 있다. 영락없이 여름 땡볕 한국의 한가한 시골 풍경이다.

Camino de Santiago는 천년의 길이라하니 어쩌면 2.50€ 없던 옛 시절 이 길엔 어쩌면 정성껏 기름 부어 순례객 부르튼 발을 적셔주었을 지도 모른다. 암튼, ‘사이다?  술?‘ 마셔보니 텁텁한 맛, 맥주? 포도주? 아니 막걸리? 칠성사이다 맛은 분명 아니다.(캠핑장 리셉션을 통해 그것이 ‘애플 와인’이라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자세히 보니 내가 마시고 놓은 사이다 빈 병 옆엔 ‘Repairs skin for burn, bite, irritation CRÉMA CALENDULA 2.50€’이란 글귀도 눈에 띈다.  많은 순례객들이 지나갔는 지 돈통엔 제법 알차게 지폐까지 들어있고...

고개 들어 돌아보니 먼 하늘에 구름이 꽉 찼다. 게다가 바람까지 점점 쌔진다.

(사진=박인기)

길을 걷다가 보면 천년 길이 사유지 목초지가 된 경우가 종종 나타난다. 그러나 어김없이 비록 문을 만들어 놓았을 망정 그 길이 까미노 길임을 익히 알고 인정하여 길 만큼은 그대로 잘 보존하고 있다.

'문 열고 걸으시라 문을 달아 미안합니다’라는 주인장 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천년이 흘러도 스페인 순례길엔 거침이 없다. 

(사진=박인기)

 

(사진=박인기)

간지점 Deba에 도착하니 16km, 오후 8시 25분, 스퀘어 광장엔 아이 어른 저녁시간을 즐기고자 웅성웅성 모두가 흥겹다.

(사진=박인기)
(사진=박인기)

한참 더 산을 넘어 내려오니 조그마한 항구동네 Mutriko가 바로  발 밑에 보인다. 예쁘다. 시간이 있으면 진짜 잠시 쉬어 가련만 갈 길이 멀어 아쉽게 지나칠 수 밖에 없었다.

철길이나 다리 건너고 표시를 보니 MUTRIKO까지 아직도 가야 할 길 3.9km, 1시간 20분, 아직도 갈 길이 멀다. 

또 언덕 하나를 넘어 헤드랜턴을 켜고 터덜터덜 위험한 찻 길 따라 도착한 Camping Saturraran. 도착시간은 이미 늦은 밤 10시 30분인데도 음악소리 흥겹고, 정말 11시까지 리셉션 오픈, Bar 오픈,  게다가 손님 맞는 뚱보아저씨 또한 매우 화통하다. 사람 있어 다행이다라고 안심하고 있는데 아저씨 표정, ‘인생 뭐 있어? 즐겁게 흥겹게 ... ‘ 그런 기분 들게 한다. 굿~ 진짜 안심이다. 

친절에도 속결과 묵은 농도가 다른 맛이 있다. 엊저녁 캠프에선 1박 12€, 와이파이 24시간 2.5€, Bar에선 한 시간 무료, 리셉션에선 15분이 무료라고 야무진 아가씨, 똑 뿌러지는 목소리로 말했었는데.., 이곳 아저씬 미리 예약했다고 말하니, ㅎㅎㅎ~ 연신 ‘Don’t worry, Don’n worry...10유로에 와이파이 무료, 텐트도 아무 데나 치고 싶은 데 치란다.

(사진=박인기)

돈 워리, 돈 워리...진짜 참 기분 좋은 말인데, 여기 오니 언제든 들을수 있을 것 같다, 내일 날 밝으면 나 또한 ‘돈 워리~ ‘. 하루 더 머물고 싶을지도 모른다.

◇오늘의 산티아고 순례길=-ZUMAIA, Camping & bungalows Zumaia~DEVA~MUTRIKO(Motrico), Camping Saturraran 26km 38,555걸음 8시간30분

*편집자 주=박인기는 강원대학교 멀티디자인학과에서 디자인을 가르치다가 정년 퇴임한 교수다. 서울대학교 미술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대우그룹 제작부, 애드케이 종합광고대행사 등에서 직장생활을 한뒤 대학 강단에 섰다. 강원대 철학과에서 동양철학 박사학위과정도 수료했다. 대학 시절부터 산악부 활동에 심취했던 그는 올해 70살이 되자 비로소 세상으로부터 한결 자유로워졌다고 한다. 그동안 꾸준히 산악부 OB들과 종종 산을 찾아 마음을 비우곤 하던 그는 지난 겨울엔 여름 호주 ‘The Prom’에서 4박 5일 백패킹을 했다. 이번엔 60일 동안 숙박을 겸한 산티아고 백패킹에 도전한다. 내년 겨울엔 호주에서 6박 7일간 ‘Overland Track’에서 백패킹하기로 이미 예약까지 마쳤다. 즐겁게 80살까지 세상 트레킹하는 것이 '걷는 삶', '꿈꾸는 삶'의 소망이라는 소신을 갖고 있다.  "꿈꿀 수 있고 살 수 있으면 그게 모두 산이 아니겠는가?"라고 반문한다. 그는 7월 6일 13시20분 대한항공 여객기로 인천공항에서 프랑스 파리로 출발했다. 뉴스웍스 독자들도 그와 여정을 함께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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