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19.08.02 05:00
한국을 떠나 세 번째로 맞는 토요일(20일)이다. 첫 일주일은 프랑스에서, 두번째 일주일은 스페인 바스크지방에서 보내고 있다. 내일부터 세 번째 일주일이 시작된다. 아직까진 잘 걷고 잘 살고 있는 중이다.
빌바오까지는 30㎞, 중간에 한번 자고 걸어야 하는 거리다. 공립 알베르게의 수용능력은 보통 20~30명. 먼저 오는 순서대로 투숙 가능하다고 하니 늦은 시간에 도착하면 그만큼 숙소 잡기가 어렵다. 넘치면 다른 곳을 찾아야한다. 사립 알베르게, 유스호스텔 등의 차례다.
엊저녁 여러 독일 친구들의 은근한 인간적 매력 속에서 즐겁게 울림을 얻고 '까르르' 웨일즈 페리샤와 런던 간호사에게서 설렘을 받은 덕분에 건강한 밤잠 잘 자고 일어났다. 아침 7시30분, 또 새 길을 나섰다.
나처럼 그저 우직하게 걸으며 사는 사람에게는 고대 중국 노장사상이 주는 울림이 크다. 세상 모든 것이 항도(恒道)이고 변화무쌍한 불변의 작용이니 유한한 인생 쓸 데없이 많이 알고자 헛고생 말고, 소중한 자기 생명력으로 궁년(窮年)까지 왕성하게 활동하며 자유롭게 살라는 생명중심사상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왕성한 활동과 자기 생명력이라니 무슨 말인가? ‘지인자지 자지자명(知人自智, 自知者明)'. 남을 아는 사람은 지혜롭다고 하고 자기 자신을 아는 사람은 현명하다고 한다.
노자의 말에 장자가 ‘인간세’에서 지식의 덧없음으로 받는다.
‘덕탕호명 지출호쟁 명야자 상알야 지야자 쟁지기야(德蕩乎名 知出乎爭 名也者 相軋也. 知也者, 爭之器也)'. 덕은 명성을 추구하다가 상실되고 지식은 경쟁심에서 나오는 것이다. 명성은 서로 헐뜯고 비난하는 수단으로 이용되고, 지식이란 분쟁에서 이기기 위한 도구이다.
명예를 성취하고 문명을 만들어내기 위해선 반드시 지식이 필요하다. 장자는 젊어 유위하고 늙어 무위해야 한다고 인간사 역할이 있음을 분명히 했다. 지식과 명예를 추구하는 일, 몸을 상하게 하지 않는 한 누구나 가야 할 길이다. 왕성한 활동으로 생명력 넘치게.., 그러나 60살 넘어서까지 오로지 유위에 매달리면 인생이 서글퍼진다. 자신의 노욕으로 다음 세대 새로운 길, 도전의 창의력을 막아서는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무용지용(無用之用)'. 쓸모없음이 쓸모있음이다. 세상 일에 쓸 데 없음이란 없다고 말했으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만 두라 함은 몸부터 살피라는 일갈일 것이다.
몸이란 의식의 터전, 지식을 쌓아놓은 곳간 같은 곳인데 인간세상에서 금과옥조처럼 받드는 명예, 지식, 재물의 탐심을 그만하고 중요한 몸부터 살피라는 충고 아니겠는가?
몸은 걷게하고 살게하니 끝날까지 즐거워야 하는 도체, 도용이며 도상이다. 100년도 못 사는 인간 삶에서 그것보다 중요한 일이 무엇이 있을까? 노장은 우리들에게 몸 상할까, 그것부터 챙기라고 염려하고 있다.
본질적으로 삶이란 무엇인가? 몸은 걷고 몸은 살아간다. 입시를 치르고 입사를 하며 가족을 부양하는 것 모두 몸이 하는 일이다. 교감하고 관계를 맺으며 사랑하는 일도 몸이 하는 일이다. 더 나아가 정신생명을 향해 초월하고 변화를 실현시키는 일도 몸이 한다. 역사와 문화와 경험이 모두 몸으로 전화되어 그 속에 인생이 모두 담겨 있기 때문이다.
몸은 걷는다. 몸은 꿈꾼다. 꿈꾸며 변화하며 몸은 살고 있다.
고마운 사람들. 벨기에, 웨일즈, US ARMY. 스페니쉬 모두 걷고 사랑하며 건강하게 오래 살자, 산티아고 몽유도~!
◇오늘의 산티아고 순례길=GERNIKA LUMO, aterpetxea Hostel~LARRABETZU, Aterpetxea Albergue Hostel 18㎞, 27,358걸음, 5시간(까미노 참고용 : GERNIKA LUMO, aterpetxea Hostel~ LARRABETZU, Aterpetxea Albergue Hostel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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