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19.08.05 05:00
바스크 지방의 끝자락, 포르투레테(Portugalete)는 참 편안한 항구도시다.
뛰어난 항구의 풍광은 물론 '그린 안더스트리(GREEN INDUSTRY)’를 표방하는 환경적 슬로건의 도시답게 세워진 철다리, 가드레일, 아파트 연결 엘리베이터 구조물, 연결다리, 멀리 공장 구조물까지 삶의 터전으로서 당연히 지켜져야 하는 약속, 환경친화적 목적성의 품격을 잃지 않고 있어서이다.
편안한 인상의 할아버지 올리버 또한 그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다소 지친 표정으로 노구를 이끌고 있는 주름진 얼굴 속에 평화가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평화로움은 살아온 과정의 결실인 것이 분명하다. 세월의 나이보다는 어떻게 살았는가가 얼굴에 드러나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벨기에에서 두 달동안 걸어왔다는 그의 나이는 이제 겨우 64세, 도인의 현현이 분명하다.
장자(莊子)는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도인으로서 품격 단계를 진인(眞人), 신인(神人), 지인(至人)으로 표현했다. 물론 모두 득도(得道)의 단계를 넘어 선 인간세 이후의 경계를 말하는 것이다.
득도의 세계란 어떤 것일까? 그는 인간이 가야 할 길, 넘어야 할 초월의 경계단계를 구분했다. 첫 번째가 지혜의 단계다. 정지(情知) 혹은 성지(成知)로 지칭한 만들어진 세상 상식과 지식을 거부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어 시시비비를 가리는 분별지를 버리고 호불호를 간택하는 시기심과 질투심을 떨쳐 버리라고 말한다. 결국 차별하지 말고 미워하지도 말라는 이 말 뜻은 ‘도에 이르는 길은 어려운 게 아니다 (至道無難)’ 그러하니 ‘오직 차별 선택함을 혐오하고 애중에 빠지지 말라(唯嫌揀擇 但莫憎愛’) 고 말하는 선종 승찬의 깨달음과도 통한다. 새 길의 출발은 이렇게 성지(成知)를 버리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터널을 지나니 또 새 길이 나타난다. 이 번 길은 달관에 이르는 길이다. 달관은 모든 인간세 길흉화복을 넘어서라는 것이다. ‘삶과 죽음, 장수와 요절, 부귀빈천, 궁핍영달’까지 변화무쌍한 인간세를 흔들림없이 바라볼 수 있는 통찰의 눈으로 바라보라고 권하고 있다.
모든 것이 몸 하나 건강만 못하다는 뜻일 텐데 분열하고 차별지우며 유한한 삶으로 무한한 권력을 탐하고자 하는 이념적 매몰상태의 어리석음을 준엄하게 꾸짖고 있는 것이다. ‘삶은 유한하고 지식은 무한하다. 유한한 삶으로 무한한 지식을 좇으면 삶이 위태로울지니(吾生也有涯, 而知也无涯. 以有涯隨无涯, 殆已)’
스페인 개도 묶이면 거칠게 짖는다. 그 소리는 마치 더 초월하라는 죽비 소리 같다. 한 단계 더 성큼 올라서야 한다고...
도가(道家)에서 말하는 득도의 경계는 인간의 몸과 마음을 버리고 자연의 것으로 돌아가라고 강조한다. 허정한 마음상태로 돌아가기 위한 심재(心齋)의 과정, 본성의 근본인 몸까지 놓아버려 사물화시키는 좌망(坐忘)의 단계를 거치면 무위자연의 경계에 들어서게 되는 것이다.
이 경계에선 까미노 위 소똥조차 자연이 준 훌륭한 예술이 된다. 적어도 무공해 풀잎을 먹고 배설한 ‘생똥’의 자연예술이기 때문이다.
또 다시 들어서야 하는 터널, 이전 터널보다 입구 규모가 훨씬 크다. 출구 빛도 강렬하다. 그런데 터널울 빠져 나와 만나게 되는 산 길은 의외로 호젓하게 이어진다.
자유로운 마이 웨이~. 장자가 마지막으로 제시하는 새 길은 정신생명의 자유길이다. 득도의 단계를 거치면서 인간은 자연과 한 몸을 이룬다. 즉 몸과 마음을 비워 낸 허정한 상태는 비로소 하늘(천), 땅(지), 도(자연)와 합일을 이루며 ‘정신’이라는 묘용의 단계에 접어든다는 것이다. 거침없이 자유로운 경지다.
그런데 정신이 어떻다는 것인가? 신비한 묘용의 세계는 이미 지상의 세계가 아날 것이다. 조그만 물고기 ‘곤(鯤)’이 구만리 날아가는 ‘붕새(鵬)’로 변하듯 한없이 자유로운 세계, 가진 것 아무 것도 없어도 풍요로운 예술셰계에 성큼 들어서는 것이다. 그 세계를 이상세계, ‘무하유지향(無何有之鄕)’이라고 말한다. 비로소 인간은 언제 어디서나 자기 삶의 주체가 되는 이상적인 인간, 지인(至人)이 된다.
걷는 길, 사는 길, 새 길을 찾는 아침 까미노에선 언제나 싱그러운 풀 냄새, 자연이 주는 이슬 같은 청량한 울림의 생명력애 감화되곤 한다. 변치 않는 항도(恒道)의 신비로움이다.
젊은이의 발걸음은 가볍고 경쾌하다. 늙은이의 발걸음은 진중하고 묵직하다.
‘천천히 차근차근 꾸준하게... ’엊저녁 함께 자리한 11명 식사값을 모두 혼자 지불한 통 큰 한국 청년, 보르도에 산다는 준씨가 독일 처녀와 함께 앞서 나간다. 모두가 예술세계를 수놓는 다채로운 질감의 어울림이다.
걷고 살며 꿈꾸는 마아 웨이, ‘걷는 길 사는 길, 박인기의 산티아고 방랑기’...그의 몽유도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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