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최승욱 기자
  • 입력 2019.08.06 05:00
(사진=박인기)

12.6㎞ 걸어 마을 길에 올라서니 툭 터진 바다, 시원하게 펼쳐지는 La Arena 비치가 있다. 오전 10시 벌써 해수욕객들로 분주하다. 살펴보니 나이 드신 할머니, 할아버지들... 작은 바닷가 마을, 라 아레나(La Arena)는 노인들에게 특히 편안한 휴양지인 것이 분명하다

“할머니 할아버지, 라 아레나 천국에서 장수하세요~”

(사진=박인기)

눈을 들어 보니 해안선 멀리 좌측에 오늘의 목적지 Castro-Urudiales 모습이 꽤 멀리 떨어져 있다. 남은 거리는 15㎞쯤 된다. 이제 4㎞를 더 가면 경유지 Coberon이 나올 것이다. 거기서 좀 더 쉬기로 하고 걷는데 발길은 자연스럽게 바닷가로 향한다. 

(사진=박인기)

바닷물 속에 발을 담구고 하늘을 우러러 본다. 아~ 한 없이 시원하고 한 없이 다정한 바다의 떨림을 즐긴다. 발바닥, 발등, 정강이에서 온 몸으로 전해지는 5억 년 지구 생명력의 울림~. 5억년 생명태동의 손길이 찰나적 70년 발등을 수고했다며 쓰다듬는 순간이다. 그 떨림과 울림의 감동이 참으로 고맙고 감사하고 행복하다. 이것이 천지생명의 경외감인가? 정말 고맙습니다~. 70년을 한결같이 당신의 품속 너른 대지 위에 살 수 있게 해주셔서..,아멘 

(사진=박인기)

카베론으로 가는 해안길, 길가 수돗물 맛은 펑펑 시원하고 맛있다. 바(Bar)에서 만나는 맥주 맛은 차라리 멋있다. 사실 맛과 멋, 두 가지 구별은 이미 무의미하다.

순례길에선 만나는 모든 것… 하늘, 바다, 돌, 풀, 바람,수돗물, 나무그늘, 그리고 건물, 바, 와인, 맥주와 자연 같은 사람들… 참 고맙고 감사한 인연들이다. 

나는 걷는다. 꿈꾼다. 일생 동안 걸어갈 세상 길 모두가 존중과 배려, 책임지고 이해하는 무의식의 순례길이 될 수 있기를 나는 산소바다 수평선을 바라보며 몽유한다.

(사진=박인기)

드디어 CAMINODEL NORTE, 칸타브리아 지방(CANTABRIA COUNTRY)에 들어섰다. 지난 열흘 동안 감동과 위로를 주었던 바스크(BASQUE)여 안녕~. 또 만날 것이다.

(사진=박인기)

자 , 아제 칸타브리아 지방~. 또 어떤 떨림과 울림이 내게 친절의 모습으로 성큼 다가와 마주하게 될까? 들어서는 길가 풀잎이 불어오는 바람에 심하게 떨고 있다.

순례객을 맞아들이는 첫 마을 OAnton 의 인상은 예쁘고 달콤한 캔디 맛이다. 깨끗하고 아담한 집들, 계단과 창문의 꽃 장식에 정성이 듬뿍하다.

Short way? Long way? 동네 골목길을 벗어날 무렵 바닥에 두 갈래길로 나누어 칠한 페인트 방향표시가 비상식적 물음처럼 들린다. 당연히 짧은 코스의 길에 들어서자마자 전용 찻길처럼 도로가 펼쳐진다. 위험한 건널목, 언덕 도로길을 앞뒤 좌우 잘 살피며 조심조심 걸어야 한다. 글쎄 까미노 데 산티아고흘 준비하는 분들께 권해야 할 지 모르겠으나 갈 길 먼 사람들 한테는 필요한 길임에 틀림없다.

(사진=박인기)

스페인 사람들은 어려서부터 사람 다니는 골목길, 북적대는 광장 사람들 사이에서 요리조리 공을 차고 자전거도 탄다. 심지어 차가 달리는 좁은 샛길에서도 애들은 거침없이 자전거를 타고 달린다. 그도 그럴 것이 축제 때 흥분한 미친 소와 경주하듯 골목길을 달리는 사람들을 보고 자라는 스페인 아이들이다. 투우는 말할 나위없고... 위험상황을 열정적 스포츠로 승화시키는 에너제틱 스페니쉬들… 그들에게 자동차가 달리는 도로길은 사람도 걸어가야 하는 마땅한 순례길이다.

(사진=박인기)

언덕고개를 내려오다 반갑게 만난 바겸 레스토랑 ‘SALTACABALLO’... 북쪽 해안길을 선택한 탁월함을 시원한 생맥주로 보상해주는 시간이 찾아왔다. 맥주 한 잔을 주문하고 빈 물병을 채워달라고 내미니 물 가득에 얼음 두 덩이까지 풍덩 넣어준다. 멀리 바스크 해안 바다를 바라보며 천천히 마시는 기막힌 맥주 맛이야 일러 무삼하리요, 카스트로 우디알레(Castro-Urdiales)로 향하는 발걸음이 한층 설레고 떨린다.

(사진=박인기)

우리가 사는 세상길 위엔 언제나 끌림과 설렘이 차고 넘친다. 끌림과 설렘의 맛은 탁 쏘는 콜라 맛이다. 문화적 작위 맛인 것이다. 콜라 맛은 길들여진 사람한테는 필요하겠지만 자연의 깊은 맛은 아니다. 자연의 맛은 떨림과 울림이다.

인위적으로 설치해 놓은 우리의 문화적 둘레길에서 무엇이 부족한지 떨림과 울림의 관점에서 깊이 반성해야 하는 문제는 오늘날 대한민국 우리 모두의 숙제다. 이제 겨우 근대화 100년의 디딤돌울 놓은 건국길, 산업화·민주화의 길, 진보·보수 모두가 힘을 합쳐 화합으로 다듬어 놓아야 할 새 길은 천년동안 생명이 걷고 살아가야 할 떨림과 울림의 순례길이어야 한다.

(사진=박인기)

Miono 어촌을 지나 해변 소로를 찾으며 혼란스러워하니 역시 친절한 휴가객 아저씨가 다가와 앞서 길 안내를 한다. 까미노 길은 지도에 표시된 정보 말고도 사람다니는 해안길은 항상 있는 것 같다. 언젠가는 이 좁은 농로길도 새 길로 성큼 넓어지겠지… 그렇게 해안을 따라가기보면 신기하게 새 길이 나온다.

드디어 11시간여 만에 아름다운 휴양도시 카스트로 우르디알레 Castro-Urdiales에 도착했다. 우르릉 꽝~.

비 그치기를 기다리다 찾아나선 인포메이션 센터에선 알베르게는 아마 다 찼다고 유스호스텔을 권한다. 대신 캠핑싸이트를 물어 가은 도중에 그 알베르게가 있었다.

(사진=박인기)

알베르게는 이미 만원, 그런데 거기 지난밤 함께 투숙했던 러시아친구가 있지 않은가? 다행이 그 친구 소개로 알베르게 뒷마당에 텐트를 설치할 수 있었다. 궁하면 꼭 고마운 사람이 나타난다. 순례길에선.. 

빗방울이 거세진다. 비야 내려라 이미 난 텐트까지 완벽하게 설치했단다.

◇오늘의 산티아고 순례길=Portugalete→La Arena→Cobaron→Onton→Micho→Castro-Urdiales 27㎞, 35,883걸음, 12시간 (까미노 참고용 : PORTUGALETE→CASTRO URDIALES 27.7시간)

*편집자 주=박인기는 강원대학교 멀티디자인학과에서 디자인을 가르치다가 정년 퇴임한 교수다. 서울대학교 미술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대우그룹 제작부, 애드케이 종합광고대행사 등에서 직장생활을 한뒤 대학 강단에 섰다. 강원대 철학과에서 동양철학 박사학위과정도 수료했다. 대학 시절부터 산악부 활동에 심취했던 그는 올해 70살이 되자 비로소 세상으로부터 한결 자유로워졌다고 한다. 그동안 꾸준히 산악부 OB들과 종종 산을 찾아 마음을 비우곤 하던 그는 지난 겨울엔 여름 호주 ‘The Prom’에서 4박 5일 백패킹을 했다. 이번엔 60일 동안 숙박을 겸한 산티아고 백패킹에 도전한다. 내년 겨울엔 호주에서 6박 7일간 ‘Overland Track’에서 백패킹하기로 이미 예약까지 마쳤다. 즐겁게 80살까지 세상 트레킹하는 것이 '걷는 삶', '꿈꾸는 삶'의 소망이라는 소신을 갖고 있다.  "꿈꿀 수 있고 살 수 있으면 그게 모두 산이 아니겠는가?"라고 반문한다. 그는 7월 6일 13시20분 대한항공 여객기로 인천공항에서 프랑스 파리로 출발했다. 뉴스웍스 독자들도 그와 여정을 함께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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