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16.02.29 09:39
유명한 영화 '영웅본색'의 광고 포스터. 중국은 각 지역에 수많은 경쟁 그룹들이 등장한다. 중앙권력과의 물리적 거리가 먼 곳일 수록 경쟁은 더 치열하고 분위기 또한 훨씬 자유롭다.

3월 9일에서 15일 까지 있을 인간과 인공지능 간 세기의 대결이 화제다. 한국의 이세돌 9단과 구글의 인공지능 바둑 컴퓨터 알파고가 바둑으로 둘 사이의 우열을 가르는 대결이다. 이세돌 9단은 인간을 대표해 인공지능 컴퓨터와 다섯 판의 승부를 벌일 예정이다

백과 흑으로 이루어진 361칸이라는 바둑판 세상에서는 무궁무진한 조화가 이루어진다. 과연 수십만 기보(棋譜) 내용을 Big Data로 활용한 구글 인공지능이 입신의 단계에 이른 ‘불패(不敗)소년’이라는 별칭의 이세돌 9단을 이길 수 있을지 의문이다. 어떻든 현실세계 속에서도 매일 흑과 백의 암투(暗鬥)와 명투(明鬥)가 수많은 조화를 만들어 내고 있다.

중국에서 天高皇帝遠(천고황제원)이라는 말이 있다. 하늘은 높고 황제는 멀리 있다는 말이다. 원(元)나라 말 순제(順帝) 때 지방정부에 대한 중앙정부의 지배력이 약화일로에 접어들자, 절강(浙江)의 태주(台州)와 온주(溫州) 지역 농민들이 원나라 통치에 반대해 농민운동을 일으켰던 사회적인 상황을 반영한 말이다.

이 말은 중국 명대에 광동(廣東) 안찰사를 역임한 황푸(黃溥)라는 이가 《한중금고록:閑中今古錄》에 남긴 글에 실려 있다. 원문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天高皇帝遠,民少相公多。一日三遍打,不反待如何(하늘은 멀고 황제는 멀리 있다. 백성은 적은데 관원들은 많다. 하루에 세 번을 맞으니 반항하지 않을 수 있을까)."

35년 전 처음 중국 조주상인(潮州商幫)들과 장사를 시작할 때였다. 거래선들은 미팅시 정부 정책을 논의하면서 늘 나에게 덧붙여 해주는 말이 있었다. 바로 “天高皇帝遠, 上有政策, 下有對策, 強龍壓不過地頭蛇((하늘은 높고 황제는 멀다. 위에서 정책을 만들면 아래는 대책을 만드는 법이지. 아무리 강한 용이라도 땅에서 기는 뱀을 누를 수는 없다)”는 내용이다.

당시는 주룽지(朱鎔基) 부총리가 막 리펑(李鵬) 총리 계열의 인민은행장 리구이셴(李貴鮮)을 경질하고 본인이 스스로 그 자리를 겸직하였으며, 46세였던 왕치산(王岐山: 현재 중국 공산당 기율위원회 서기 겸 정치국 상무위원)을 인민은행 부행장으로 임명하고 금융개혁을 치열하게 밀어붙일 때(1993년)였다.

당시 금융개혁은 조주(潮州) 등 지방에 있는 상인들에게 무척 불리한 요건 등이 많아 반발이 심했었다. 신화사(新華社)에서 당시의 주룽지 부총리를 “鐵面無私, 雷厲風行(철로 만든 얼굴에 사사로움이 없으며, 벼락같이 무섭고 바람같이 빠르게 개혁을 추진하는 사람)”이라고 표현하던 시기였다.

이런 서슬 퍼런 환경 속에서 그 후 일부 거래선들은 업계를 떠났지만 그래도 적지 않는 거래선들은 정부의 정책에 순응해 아직도 그곳 조주에서 디터우서(地頭蛇: 땅에서 기는 뱀. 터줏대감이라고도 옮길 수 있음)로서 남아 장사를 이어가고 있다.

금융 개혁 추진 후 4년 뒤인 1997년 주룽지 부총리는 정식 총리가 되었으며 반부패 투쟁에 진력하였다. 당시에 부패 척결을 외치면서 주룽지 총리가 남긴 한 마디 말은 아직도 중국인들 사이에 회자되고 있다. “我這裏准備了一百口棺材,九十九口留給貪官,一口留給我自己(여기에 100개의 관을 준비해서 99개는 탐관들에게 주고, 하나는 내 것으로 남겨둬라)”는 말이다.

그로부터 17년이 흐른 2014년, 12월 29일 중공중앙 정치국에서는 "공산당의 정치 기율과 정치 규칙을 엄숙히 밝히고 당내에서는 어떠한 이익을 도모키 위한 모임과 그룹을 형성하는 것에 반대한다"고 공표했다.

또한 신화사에서는 "최근에 낙마한 큰 호랑이 뒤에 이익으로 얽히고설킨 관원들이 연결되어 있으며 그 주변 또한 서로 긴밀하게 얽힌 방파이(幫派: 무리 패거리)와 퇀훠(團夥; 그룹)들이 버티고 있다"고 했다. 그 이름값을 지닌 그룹들이 제법 많다. 그 전후에 등장한 석유마피아(石油幫), 비서장마피아(秘書幫), 산서성마피아(山西幫) 등이다. 이들은 당이나 관영 매체들을 통해 정식으로 이름이 알려지면서 세간에 커다란 화제로 등장했다.

2014년 말 중국공산당 중앙 정치국 회의에서 공개한 마피아들 외에 외부에서 바라보는 방파이(幫派)는 더 있을 수 있다. 전력업계의 산동 인맥 그룹(山東幫: 산동방), 그리고 최근에 급부상하고 있는 경제 및 IT 업계의 청화대 인맥 그룹(清華幫: 청화방)등이 그들이다.

중국은 혈연(血緣)의 전통적 사회조직 구성 외에 그를 닮은 유사혈연(類似血緣)의 조직이 덧대지면서 무수한 사회 각 영역의 그룹들을 형성하는 구조를 지닌 사회다. 여느 사회의 흐름은 대개 비슷하겠지만, 중국은 그런 특징이 다른 지역보다 훨씬 강하다.

그렇게 해서 생겨나는 헤아릴 수 없는 그룹들은 크게는 죽고 사느냐, 아니면 먹히느냐 먹느냐 등의 문제를 두고 심각한 경쟁에 나선다. 그러니 중국의 인문적 지형은 늘 살벌하면서도 다툼이 가혹하다. 그 속을 헤쳐 앞으로 나아가는 일은 그래서 늘 특별한 긴장을 필요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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