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최승욱 기자
  • 입력 2019.08.16 05:00
(사진=박인기)

8월 2일 금요일 오전 9시30분 플로르 알베르게를 떠났다.

산길을 걷는데 왠지 익숙한 느낌이다. 우측에 밤나무 좌측으로 옥수수밭이 길게 늘어섰다. 그리고 앞으로 가야 할 프리미티보 까미노 원조길을 암시하 듯 높고 뾰죽한 산이 멀리 앞 길에 산맥까지 마련해 놓았다.

(사진=박인기)

산 들 바다, 여긴 분명 강원도 길이다. 강원도, 20여년을 살며 내게 제2의 고향이 되어버린 삼척, 태백, 정선...그 강원도 국도길을 참 무심하게 많이 오르고 내렸었지...가족과 떨어져 지내면 모든 길이 아름답고도 서글프다.

순례길에서 처음 73세 미국 할아버지를 만났다. 두 번째 노르테 길을 걷는단다. 한국에서 왔다니까 대뜸 “김정은 crazy! ~”, 이유가 너무 많이 사람을 죽여서란다. “How about president Trump? “, “He’s crazy too!”...ㅎㅎㅎ

땀을 비오듯 흘리면서도 그의 주관은 분명했다. 그리고 서둘러  떠난 자리 잠시 앉았던 나무벤취가 흥건하게 젖었다. 가만히 살펴보니 벤취 뿐만 아니다. 하늘도 잔뜩 습기를 머금었다.

(사진=박인기)

오후 2시30분. 비교적 큰 관광도시 야네스(Llanes)에 도착했다. Oficina de Turismo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2시, 오후 5시부터 오후 9시까지 운영한다. 2시간30분 기다려야 오픈한다. 그래, 잠시 쉬며 시내 구경한 뒤 천천히 Po 캠핑사이트로 떠나자.

인포메이션 센터 옆에는 두툼하게 앉기 편하게 만들어 놓은 돌 느낌의 벤취가 있다.

(사진=박인기)

거기 앉아 배낭부터 내려 놓고 앞을 보니 흰색 보트가 행렬을 이루고 정박해 있다. 돌담을 쌓아 수로를 확보해 만든 보트 계류장이 바로 눈앞, 동네 깊숙히 바닷가의 정취를 끌어 들인 것이다. 그러니 광장처럼 늘어 선 양쪽 바, 카페테리아에 관광객들이 그림처럼 앉아 있다.

(사진=박인기)

수로는 마치 우물물처럼 잔잔하다. 흔들리는 보트 옆, 그림처럼 미동 않던 흰 갈매기가 이따금씩 끼룩 끼룩~ 대며 관광객 머리 위로 나른다. 스틸 사진처럼, 아니 스틸같은 동영상처럼 느리게 흐르는시간, 야네스는 참 평화롭고 편안하다.

(사진=박인기)

골목길에 들어서니 여기저기 레스토랑에서 해산물 음식 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깊숙한 골목, Bar Parrilla Restaurante에서 수로가 내려다 보이는 명당 자리에 앉아 나도 오늘 이른 저녁을 즐겼다. 13유로에 전채, 카레라이스에 닭고기 볶음, 메인 감자튀김과 크림수프를 얹은 고기튀김, 후식 레드와인 한 병이다.

현지인과 기념촬영중인 필자. (사진=박인기) 

옆 자리에 두 젊은 가족이 식사하고 있다. 어른들은 사뭇 진지하고 표정 또한 개성적인데 그것과 상관없이 주변을 뛰노는 다섯 명의 아이들은 하나 같이 밝고 요란하며 천진무구하다. 제도화되지 않으면 사람의 본성과 잠재력은 저들처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무궁무진한 것 아닐까? 생명력이 무진하다.

(사진=박인기)

오늘은 순례자, 길을 걷고 사는 범부, 풍광을 즐기는 관광객으로서 다기능 역할 모두가 내 안에 함께 있었다. 사람은 정말 매 순간 경이롭다. 사람은 정말 매 순간 눈부시다. 따라서 사람은 매 순간 즐거워야 한다. 즐겁게 한 평생 행복하게 살아야 할 권리를 사람은 갖고 태어났다. 오 ~ 지저스 크라이스트, 오~ 노자 장자 할아버지. 2000년, 2500년 전에 이미 그렇게 안타깝게 설파했건만...

비교적 큰 도시에 도착하면 먼저 인포메이션 센터에 들려 두 세시간 기다리더라도 실제적인 현지 정보를 얻고 가볍게 길을 떠나는 걸 추천한다. 기다리기 싫어 지나치기 보단 결과적으로 기다리는 것이 더 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나는 야네스인포메이션 센터에서 상세한 다음 목적지까지 정보와 지도, 알베르게, 캠핑싸이트에 대한 정보까지 충분히 얻고 나서 약 1시간 걸어, 편안하게 Po 캠핑사이트에 도착할 수 있었다. 도착시간 5시 30분, 캠핑장 이용료 11유로.

(사진=박인기)

오늘 바이크족, 사이클족, 산길을 달리던 런닝족까지 올라~올라~ 만났다. 모두 엊저녁 바에서 맥주와 와인을 즐기던 사람들일 것이다.

인간의 야성(野性)을 가장 성공적으로 제도화시킨 게 스포츠산업, 관광산업인 것 같다. 관광은 먹고 마시는 대중적 해결책의 해방구, 스포츠는 지속적으로 먹고 마실 수 있도록 몸을 다듬어 내는 의욕적 자기주도 활동... 먹는 에너지보다 쏟아내는 에너지가 많아야 건강하다. 정말 국가의 역할과 정책적 선진화라고 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이 두 가지에 집중해야 하는 것 아닐까? 커플 모터바이커 , 형형색색 사이클러, 가족 캠프장 캠퍼, 바다서핑족, 동네수영장 스위머 등등... 국민 모두가 즐거워하는 관광객 스포츠 산업에 집중한 스페인 국가정책은 이렇게 단순간결한 것 같다. 만일 그렇다면 선후진성을 불문하고 국민 삶의 매순간을 최상의 즐거움으로 채우려 한 그들의 국가적 역할과 책임에 대한 안목과 정책적 일관성은 정말 부럽다. 

(사진=박인기)

국가적 책무인 힘이란 무엇인가? 어쩌면 국가적 역할과 책임은 기성세대가 된 힘 있는 어른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되어야 할 실천규범이 아닐까? 다음 세대에게 난 어떤 울림과 즐거움을 마련하고 있는가? 나의 힘, 나의 책무에 대해 나부터 반성해본다. 

오늘 저녁 큰 기쁨을 준 야네스여,  아디오스~!
멀리 좌측 방향으로 늘어 선 높낮이 산맥의 봉우리 정상은 모두 구름 속에 잠겼다. Po의 내일 날씨 모습이 또 무척 궁금하다.

(사진=박인기)

희망대로 오늘 난 Po, Camping Las Conchas 캠프싸이트에서 나만의 천국, 자유 자율 자존의 텐트를 쳤다. 옆 텐트 아르헨티나에서 왔다는 마티나, 콜롬비아의 알리 친구와도 더불어 기분 좋은 첫 인사도 나누었다.

◇오늘의 산티아고 순레길=Pendueles, Albergue Casa Flor→Vidiago→San Roque del Acebal→La Galguera→Llanes→Po, Camping Las Conchas 21.6㎞, 31,255걸음, 8시간30분 (까미노 참고용 :  Pendueles, Albergue CasaFlor→Llanes 13㎞, 2시간43분)

*편집자 주=박인기는 강원대학교 멀티디자인학과에서 디자인을 가르치다가 정년 퇴임한 교수다. 서울대학교 미술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대우그룹 제작부, 애드케이 종합광고대행사 등에서 직장생활을 한뒤 대학 강단에 섰다. 강원대 철학과에서 동양철학 박사학위과정도 수료했다. 대학 시절부터 산악부 활동에 심취했던 그는 올해 70살이 되자 비로소 세상으로부터 한결 자유로워졌다고 한다. 그동안 꾸준히 산악부 OB들과 종종 산을 찾아 마음을 비우곤 하던 그는 지난 겨울엔 여름 호주 ‘The Prom’에서 4박 5일 백패킹을 했다. 이번엔 60일 동안 숙박을 겸한 산티아고 백패킹에 도전한다. 내년 겨울엔 호주에서 6박 7일간 ‘Overland Track’에서 백패킹하기로 이미 예약까지 마쳤다. 즐겁게 80살까지 세상 트레킹하는 것이 '걷는 삶', '꿈꾸는 삶'의 소망이라는 소신을 갖고 있다.  "꿈꿀 수 있고 살 수 있으면 그게 모두 산이 아니겠는가?"라고 반문한다. 그는 7월 6일 13시20분 대한항공 여객기로 인천공항에서 프랑스 파리로 출발했다. 뉴스웍스 독자들도 그와 여정을 함께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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