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16.03.08 16:16
홍콩사람들이 중국에 품는 불만이 높아졌다. 어려워지는 경제사정, 각종 생업에서의 곤란 때문이다. 지난해 중국에 대한 시위로 이어졌던 '홍콩 우산(雨傘) 운동'의 앰블럼이다.

지난 2월 2일 미국 워싱턴 민간 연구단체인 헤리티지재단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016 경제자유지수’ 보고서를 발표했다. 홍콩은 경제자유지수가 100점 만점에 88.6점으로, 조사 대상 178개국 중 1위를 기록하여 지난 22년간 경제적 자유가 가장 높은 곳으로 꼽혔다.

그 다음으로 싱가포르가 87.8점으로 2위, 뉴질랜드가 81.6점으로 3위를 차지했다. 이 보고서에 의하면 홍콩은 비즈니스와 무역, 금융의 자유에서도 1위를 차지했다. 홍콩으로서 볼 때는 매우 고무적인 뉴스가 아닐 수 없다.

이는 홍콩의 분전(奮戰)이라고 할 수 있다. 연초부터 중국 증시의 폭락으로 위기감이 팽배한 가운데 세계경제 성장 전망치까지 석 달 만에 낮추어지는 등 우울한 분위기 속에서 나온 소식이어서 그렇다. 그러나 이 발표가 있은 뒤 1주일 만에 홍콩은 전쟁터로 변해 있었다. 지난 19년간 물밑에서 줄곧 이어졌던 ‘전쟁’이 심각한 수준으로 격화했다고 하는 게 맞을 듯하다.

원래 홍콩은 1997년도 중국으로 회귀한 뒤 19년 동안 중국이라는 막강한 시장을 백그라운드로 삼아 성장세를 지속했다. 아시아 IMF 금융위기 사태, 2003년 사스 창궐, 2008년도 리만 브라더스 사태도 극복해 이른바 ‘남방의 동방명주(東方明珠)’라는 위상을 지켰던 셈이다. 그러다 지난 2014년 9월 27일부터 행정장관 직접 선거를 요구하는 ‘우산(雨傘) 시위’가 벌어지고 말았다. ‘정치’라는 요소에 좀체 물들지 않던 홍콩에 이상한 분위기가 내려앉기 시작한 것이다. 왜 하필 ‘우산’ 이었을까? 그들의 구호에 이런 문구가 있었다.

“哪怕太陽再猛 烈日當空來打傘(아무리 햇빛이 따가울지라도 뜨거운 한낮에 우산을 펼치면 괜찮으리라)”. 2008년 홍콩에서 나온 영화가 하나 있었다. 제목은 바로 ‘烈日當空(영어로 High Noon)’이다. 영화는 주로 청소년들이 성년으로 자라면서 느끼는 현실과 이상의 괴리를 극복하는 내용이다.

1984년생인 젊은 여성 감독 麥曦茵(Heiward MAK Hei-yan)이 만든 영화다. 이 영화 안에도 아래와 같은 문구가 등장한다. “烈日當空 理應無懼(한낮의 햇빛이 뜨거워도 겁낼 필요는 없다)”. 아마도 이를 본 많은 젊은이들이 방황하는 홍콩의 현실 속에서 ‘우산’을 찾아 움직였으리라 여겨진다.

청년들의 움직임이나 영화 속의 설정 등에서 눈에 띄는 점이 하나 있다. 젊은 홍콩인들이 손에 쥐고 받치는 우산 위에 태양이 있고, 그 안에 별이 보인다는 사실이다. 이는 하나의 상징이다. 중국이라는 대국을 연상시키는 별 위에 태양을 붙여 놓았다는 점이다. (위 사진 참조)

지난 설에 벌어진 홍콩의 폭력 시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홍콩의 먹거리 점포를 살필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홍콩의 길거리에서 볼 수 있는 흔한 차찬팅(茶餐廳: 차와 식사를 할 수 있는 패스트푸드 식당), 야시장(夜市)에서 즐길 수 있는 샤우판(小販: 한국 포장마차와 같은 간이 음식점) 등이다.

특히 샤우판에서 판매하는 오뎅이나 튀김 등 먹거리는 퍽 유명하다. 지난 2월 8일 설 분위기가 한창이었을 때 홍콩에서는 이들 불법 포장마차를 단속하는 홍콩 식품위생당국과 포장마차를 운영하는 업주, 그리고 그를 지켜보던 시민들 사이에서 충돌이 벌어졌다.

이른바 어묵혁명(魚蛋革命 Fishball revolution)이라고 적는 소요사태였다. 어묵은 홍콩 시민들에게 무척 친근한 포장마차 음식이다. 학력도 낮고 배운 기술도 없기에 길거리 포장마차를 업으로 하는 이들은 1~2평 남짓한 작은 집에 살면서 야시장과 길거리에서 불법 포장마차를 업으로 생존을 이어가고 있다.

이들은 시장에 기생하는 조폭들에게 보호비를 내며 Fishball을 팔고 잔혹한 홍콩에서의 생활을 유지한다. 원래 식품 단속반원들은 늘 불법 포장마차를 단속한다. 그러나 보통 설 무렵에 이르면 단속을 늦추거나 알면서도 눈감아 주는 것이 관례였다. 그러나 이 날은 달랐다. 단속 반원들은 규칙대로 포장마차들을 철거했다.

그러자 업자들은 거세게 항의했다. 주변의 사람들이 함께 시위에 동참하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하고 말았다. 왜 과거에는 좀체 볼 수 없었던 이런 현상들이 정치의 무풍지대였던 홍콩에서 버젓이 벌어졌던 것일까. 지난 19년을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여러 가지 원인들이 겹쳤다고 봐야 한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2003년 중국과 홍콩의 경제협력 내용을 담은 CEPA(Mainland and Hong Kong Closer Economic Partnership Arrangement)가 맺어지면서 생겨난 홍콩의 주된 산업인 부동산 가격의 급등, 여행업과 금융업의 폭발적인 성장, 물류산업의 전반적인 쇠퇴를 꼽지 않을 수 없다.

2003년 연 300만 명에 달했던 중국 관광객은 2014년 4000만 명으로 늘었다. 그야말로 ‘폭발적’이라고 해도 좋을 만한 증가세였다. 그 때문에 홍콩 번화가 인근에는 일반 서민들이 즐겨 찾던 차찬팅(茶餐廳)대신 중국 관광객들이 몰리는 금은보석과 명품 시계 판매 점포등이 들어섰다.

Luisvuitton, Prada, Coach등 브랜드 상점들도 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자연스레 올라간 부동산 가격은 일반적인 월급쟁이가 연봉을 19년 동안 모아야 20평 남짓한 조그만 아파트를 겨우 살 수 있는 수준으로 급격히 폭등하고 말았다. 상점들의 월세는 하늘 끝이 어딘지를 모를 정도로 치솟아 홍콩은 사무실이나 점포 임대비가 세계에서 가장 비싼 곳으로 변했다.

여행업과 소매업을 보더라도 그런 흐름은 뚜렷하다. 2005년도 대만 타이중(台中)과의 경합에서 홍콩은 ‘디즈니랜드 유치’라는 거대한 월척을 낚았다. 그만큼 관광산업에 있어서 홍콩의 오션파크와 디즈니랜드의 비중은 컸다. 중국 관광객들이 홍콩을 들를 때 꼭 방문하는 명소들이기 때문이다.

그런 홍콩 디즈니랜드가 2014년에 이어 2015년도에도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2월 15일 홍콩 디즈니랜드가 공표한 자료에 의하면 2015년 수익이 51.14억 홍콩달러로 지난 해 동기 대비 6.4%가 감소했다. 순수적자는 1.48억 홍콩달러에 이른다 한다.

2016년 6월 상해(上海) 디즈니랜드의 개장은 확정적이다. 상해의 디즈니랜드가 문을 열면 그동안 홍콩을 찾던 수많은 중국 관광객들의 발길이 과연 홍콩 디즈니랜드와 오션파크로 향할 지는 큰 의문이다.

게다가 2016년 2월 설 기간 홍콩을 방문한 중국 관광객은 2015년 대비 50%가 감소했고, 여행 단체도 380팀에서 120팀으로 급감했다. 명품 브랜드 점포의 영업상황도 마찬가지다. 보석을 취급하는 周大福(주대복 저우다푸)은 2015년 홍콩 내 115개 점포를 폐쇄했다.

COACH는 2017년까지 임대 계약을 해놓은 홍콩 Central 소재 점포를 닫기로 결정하였고 1.27억 홍콩달러를 벌금으로 물을 예정이라고 한다. 디즈니랜드조차도 홍콩정부에 약정 벌금을 지급할 상황까지 검토하면서 폐쇄 방안을 숙고 중이라고 한다.

홍콩의 자랑거리 중 하나는 세계에서 일류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첵랍콕 공항이다. 2014년 광주(廣州)의 白雲(백운 바이윈) 공항은 활주로 제 3라인 증설작업을 마치고 첵랍콕 공항과의 국제 항로 쟁탈전에 돌입했다.

화물 운송 분야에서 2015년 중국 심천 항구의 컨테이너 취급량은 2218.19만TEU로서 홍콩의 컨테이너 취급량 2011.4만TEU를 앞섰다. 심천의 물류 처리 비용도 홍콩에 비해 5~20% 저렴하고 처리 속도도 홍콩에 비해 빠르다.

거기다가 홍콩의 부동산 가격도 말썽이다. 2003년 이래 2015년까지 평균 집값은 총 4배가 올랐으며 지난 세기 최고점을 찍었던 1997년과 비교해도 50%가 오른 상태다. 그 때문에 홍콩에서는 요새 ‘麥難民(Mac-refugee)’라는 용어가 생겨났다. 치솟는 집값으로 24시간 운영하는 맥도날드에서 식음료를 산 뒤 그곳에서 생활하는 난민을 일컫는 말이다.

홍콩의 금융업은 상해의 자유무역구(自由貿易區)설립 후 그 기능이 상해로 옮겨진 경우가 많다. 홍콩에 근거지를 둔 세계적 은행 HSBC는 2015년 4/4분기만 미화 8억 달러의 손실을 기록했다. 스텐다드차타드 은행도 27년 만에 처음으로 미화 15억 달러 손실을 보았다. 주된 이유는 중국에 대한 대출금 회수의 어려움 때문이라고 한다. 홍콩만이 아니다 주변 마카오의 경우 2015년 카지노 소득은 2308억 마카오 달러로 2014년 대비 34.3%가 격감했다.

“三十年河東, 三十年河西(황하의 물길이 삼십년마다 바뀌어 황하의 동쪽에 있는 마을이 서쪽에 있게 된다)”는 말이 있다. 청나라 때 吳敬梓(오경재)가 지은 『儒林外史(유림외사)』에 나오는 말이다. 세상만사의 변화무쌍함을 일컫는 내용이다.

이제 홍콩이 중국으로 회귀한 지 19년째다. 이솝우화에 나오는 해와 바람이야기가 생각난다. 나그네가 누추하며 두꺼운 옷을 벗도록 하기 위해서는 햇빛이 필요할까 바람이 필요할까. 중국에 귀속한 홍콩 사람들은 옷을 더 여미는 중이다.

중국에서 불어 닥치는 바람이 차가운 모양이다. 따사로운 햇빛도 기대했던 만큼은 물론 아니다. 때로 중국의 햇빛이 이 조그만 홍콩에 내려앉는 경우도 있지만, 홍콩사람들은 우산을 꺼내 그 햇빛을 가리려고 한다. 이민(移民)의 고단한 풍상이 곳곳에 스민 홍콩의 사람들이 쥔 우산을 언제 접어 햇빛을 고스란히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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