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16.03.25 16:10
청나라 말기에 벌어진 대규모 민란인 '태평천국 운동'을 그린 그림이다. 청나라를 큰 위기에 빠지게 만들었던 이 민란의 주체는 광동과 광서 지역 객가 그룹이다.

요즘 차이나머니가 화제다. 외환 보유고 3.2조 달러라는 중국의 자금이 전 세계 각지의 유망 기업들을 온라인 쇼핑하듯 사들인다. 한 해 세계 M&A 시장의 총 규모가 3300억 달러에 이른다 한다.

2016년 3월 3일 국제 금융센터가 낸 ‘중국기업의 해외 M&A급증과 위험요인 점검 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 중국기업들의 해외 M&A 규모는 이미 1181억 달러에 이르렀고 금년 1월부터 2월 말까지 이미 851억 달러라는 차이나머니로 전 세계 각 기업들을 합병했다고 한다.

차이나머니가 전 세계 각지 기업들을 구매하는 배경에는 중국계 은행들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고, 국가 차원의 정책 방향도 그에 한 몫 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동력은 세계 각지에 퍼져 있는 중국 상인, 즉 화상(華商)들로부터 나왔다고 보인다.

세계 각지에 각 산업별로 퍼져있는 화상은 현재 4800만 명 정도다. 화상들이 경영하는 기업들도 이미 1000만 개에 이른다고 한다. 이들 화상의 70%는 동남아시아 지역에 몰려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객가 출신 화상들은 전통을 중시하고 대대로 내려오는 조상의 말씀과 가훈 등을 매우 소중히 다루는 태도로 유명하다. 객가 상인들이 요즘도 떠받드는 전통의 가르침은 흔히 ‘객가조훈(客家祖訓)’이라고 한다. 객가 화상들이 어떻게 비즈니스를 운영하고 어떤 삶의 자세를 지녔는지 제대로 들여다볼 수 있는 좋은 창(窓)이다.

객가 지역 주민들은 성(姓)에 따라서, 혹은 지역에 따라서 각기 다른 여러 가지의 조훈(祖訓),가훈(家訓), 족훈(族訓) 등을 지니고 있다. 예를 들어 왕(王), 강(江), 임(林), 소(蘇), 위(魏), 심(沈)등 6대 성씨의 조훈이 각각 다르다. 가훈 역시 각자의 특성을 지닌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볼 때 눈에 띄는 공통점이 있다.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객가 조훈에는 이렇게 써있다.

 

“人往四海, 勵志名揚, 崇宗敬祖, 戀土愛鄉, 孝悌忠恕, 篤守倫常, 尊師尙學, 修身勤上, 宜習正業, 奮發農桑(사람들이 사해로 퍼지니 어디를 가든 뜻을 키워 이름을 날릴 지어다, 조상을 모시고 존경하며 고향을 사랑하고 태어난 흙을 그리워해라. 효도하고 형제간 우애를 지킴은 물론 충성됨과 윤리를 늘 준수하고 스승을 존경하며 학업에 신경 쓰며 수신하여 부지런히 앞으로 정진해 정업을 배우고 농업에 분발하라).

端行正品, 和睦禮讓, 戒賭戒淫, 征惡揚善, 法禮不違, 倫理不亂, 毓德垂後, 千古相傳, 謹尊祖訓, 世代隆昌(품행을 단정히 하고 화목하며 예로써 양보하고 도박과 음탕함을 경계하고 악을 징벌하여 선을 알려라. 법과 예를 거스르지 말고 윤리를 어지럽히지 말라. 덕을 쌓아 후세에 모범을 이뤄 천년만년 서로 전하라. 조훈을 늘 존경하면 세대가 융창하리라).“

 

2010년 12월 2일 중국 복건성(福建省) 영화현(寧化縣)에서 싱가포르와 대만, 인도네시아 등 여러 곳에서 온 1000여명의 객가 출신 화상들이 참석한 가운데 객가 시조신단(客家始祖神壇) 준공식이 열렸다. 그 장면을 소개한 TV 프로그램에서 객가 어린이들이 객가어로 아래와 같은 내용을 노래하고 있다.

 

“북방 사람으로 태어나 남쪽으로 옮기니(北方人 往南跑), 전쟁을 피해 생활할 수 있는 곳을 찾아간다(避戰火 找生活). 무이산을 지나 산간 평지에 정착해(過武夷住山坳), 산림을 개척하고 흙집을 만드니(開山林 築土堡), 돌로 된 촌에 숲으로 이루어진 집이다(石壁村葛藤凹). 닭과 소그리고 양들이 온 산을 뛰돌아 다니고(雞牛羊 滿山跑), 일부는 빨리 뛰어 산의 험준한 곳을 넘어가네(跑得快 過山隘). 먼 바다로 나가 돈 벌 곳을 찾아다니고(出遠洋 找財發), 돈이 벌어지니 고향동네 어르신들 생각하며(財路廣 想父老), 조상의 땅으로 돌아와 성묘하니(回祖地 把墓掃), 사당에 들어와 향 피우며 기도한다(進祀燒香 來祈禱). 조상의 은덕은 잊을 수 없어라, 잊을 수 없어라(祖宗恩德 忘不了 忘不了). 사당에 들어와 향 피우며 기도하니(進祀燒香 來祈禱)객가 조상의 훈계를 잊을 수 없노라 잊을 수 없노라(客家祖訓 忘不了 忘不了).”

 

객가 출신 어린 아이들은 이런 노래를 어려서부터 객가어로 배운다. 이른바 “조상 땅을 팔 수 있을지언정 조상의 언어를 잊지 말라(寧賣祖宗田 不忘祖宗言)”는 말이 떠오른다. 북방에서 전쟁을 피해 생활의 터전을 찾아 멀리 험준한 무이산을 넘어 내려온 사람들의 고난을 읽을 수 있다.

이들은 결국 산속의 평지에 삶의 터전을 일구며, 또한 정착지를 떠나 해외 각 지역을 돌아다니면서도 항상 조상들을 존경했다. 아울러 자신이 살던 터를 생각하고 부모에게 공경하며 조상들을 받들었다. 그러니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선조들의 가르침을 항상 가까이 했다.

법과 예의 준수, 학문 존중, 스승에 대한 존경, 도박과 음탕함의 경계 등은 모든 객가의 조훈 과 가훈에 나오는 공통적인 분모이다. 이른바 유교의 팔덕(八德: 忠, 孝, 仁, 愛, 信, 義, 和, 平)이 조훈에 실려, 노래에 실려 그대로 자손대대로 전해 내려온 것이다.

객가 장손의 집안에는 보통 사당이 있다. 장손의 집에서 이런 사당을 차려놓고 조상들의 위패를 모신다. 음력 12월 25일부터 정월 보름까지 조상들의 초상을 걸어놓고 기렸으며, 매년 봄과 가을에 맞춰 대규모 제사를 지낸다. 집안 어르신들이 주재하고, 각 구성원이 가능한 한 다 모인다.

장례도 마찬가지였다. 봉분(封墳)을 만들어 세상을 뜬 가족을 묻는 일반 한족들과 달리 객가는 그 뒤 다시 길일(吉日)을 택해 세골(洗骨)작업을 거쳐 유골을 항아리에 안치하는 2차 장례를 지낸다. 그래서인지 객가는 풍수와 택일에 무척 민감했다고 한다.

좀 더 살기 편한 곳을 찾아 늘 이동하는 편이었기에 금기(禁忌)가 많았다. 숫자로 보면 4. 6. 7이라는 숫자를 기피했고, 날짜로는 음력으로 5. 14, 23일을 피했다. 그들에게는 매우 부담스러운 숫자들이었기 때문이다.

4는 죽을 사(死) 글자와 동음이라서 꺼렸다. 5. 14. 23일은 매달 금기가 많은 날(月忌日)이라고 알려져서다. 우리 식으로 하면 아마 ‘손재수’가 많은 날이라고 할 만하다. 6은 만록(滿祿)이라고 해서 죽음을 연상한다고 여겼다. 7은 객가 사람들에게 모든 제사가 7의 곱으로 이루어지기에 ‘49재’를 연상시킨다고 해서 피했다.

음식을 만들 때도 가능한 한 1. 6. 7로 숫자 조합을 하지 않는다. 나이로 73세나 84세가 되면 늘 한 살 낮추든가 아니면 한 살을 올리는 버릇이 있다. 애들이 4세가 되었을 때에는 4세라고 안하고 ‘양쌍세(兩雙歲)’라 하여 ‘두 번째 두 살’로 표현한다.

이들의 교육열 또한 대단하다. 19세기 초에도 곳곳에 사당학교를 세워 예전부터 후세 교육에 치중하였다. 여성들의 모습도 달랐다. 뒷머리를 돌돌 말아 올려 머리에 많은 치장을 꼽아 놓고 다녔으며 그 안에 은비녀 등을 호신용으로 꼽아 두고 다니기도 했다. 그 뿐만이 아니다. 객가 여자들은 청나라 때에도 발을 꽁꽁 동여매는 전족(纏足)을 전혀 하지 않았다.

청나라 말엽에 태평천국(太平天國)의 난이 일어나자 일반 백성들에게 준 충격은 컸다. 태평천국을 주도한 그룹은 객가다. 그 테두리 안에서는 남성 병력과 여성 병력이 평등하게 활동했다. 여군 병력만 해도 10만 명에 이를 정도로 많았다. 아직도 객가 사람들 사이에서는 당시 태평천국 군대의 여성 장군 쑤싼냥(蘇三娘)에 대한 전설이 회자되고 있을 정도다.

일반적으로 북방 출신 상인들이 광동(廣東) 상인들을 만나면 이곳 출신들이 대개 다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속내는 많이 다르다. 어느 계열이냐에 따라 여러 면에서 차이를 보인다. 우선 광부상인(廣府商幫)들은 기업의 역사와 종업원 숫자, 자본금 규모 등을 먼저 설명한다.

광동 동부 해안의 조주상인(潮州商幫)들은 신용과 도의를 강조하면서 장기 거래선을 얼마나 두고 있는지와 기업의 경영 가치관을 소개하는 편이다. 그러나 객가상인(客家商幫)은 우선 조상을 먼저 설명하고, 집안 내력을 알린 뒤 자신이 운영하는 기업을 설명하는 순서를 따른다.

각자 다 특징과 개성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조상과 집안 내력을 먼저 내세우는 객가 사람들은 특히 유별나다. 그래서 객가 사람들을 ‘미스터리한 광동인’이라고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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