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16.04.05 15:26
<겨울연가>는 일본을 중심으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해 한류 드라마의 해외진출을 본격적인 흐름으로 밀어 올렸다. <사진=KBS>

구차한 설명들

오인규 고려대 교수(한류학센터장)

중화권과 일본에서 한류가 대성황을 이루자, 국내외에서 구차한 설명들이 나돌기 시작했음은 전회에도 잠시 언급했다. ‘한류’라는 말을 만들어낸 중화권(대만 기원설과 베이징 기원설이 있음)에서 한국 드라마가 먼저 유행한 것을 두고 서양이나 일본 드라마보다 가격이 더 싸고(문화 디스카운트 론), 문화도 중국의 아류라서(문화 근접론), 또한 질도 떨어져서 쉽게 중화권에서 소비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우겼다.

그러나 똑같은 한국 드라마가 일본에서 욘사마와 <대장금> 신드롬으로 대폭발을 일으키자, 중화권과 일부 국내 한류학자들은 그 구차한 입을 다물었다. 대신에 일본 측 학자들은 문화 혼종(混種)론을 들고 나왔다. 즉, 한국이 현대화 하면서 서양 것보다는 일본의 문화를 습득하여 현대화(혹은 후기현대화)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 드라마를 보면 일본과 비슷한데다가, 현재의 일본이 아니라 20~30년 뒤떨어진 일본의 이미지를 자아내기 때문에, 일본 관객들에게 노스탤지어를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그러나 똑같은 <겨울연가>와 <대장금>이 남미, 동남아시아, 그리고 심지어 중동과 아프리카에서도 전대미문의 역사적인 시청률을 기록하자, 일본이 내민 문화 혼종론도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일본이 주장하는 문화 혼종론이 사실이려면 한류 이전에 일본 드라마가 무슨 이유에서건 전 세계를 휩쓸고 있어야 했다. 또한, 한류와 같이 혹은 곧 바로 대만 드라마가 전 세계를 강타했어야 한다.

드라마의 여성 문화코드

위에서 언급한 구차한 설명들은 근본적으로 한류 드라마의 관객이 여성이라는 중요한 시사점을 무시한 데서 기인한다. 중화권, 일본, 남미, 동남아시아, 중동, 아프리카의 한류 드라마 팬들은 1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여성들이 그 주류를 이룬다. 일본에서는 심지어 한류 드라마 때문에 “마누라들이 밤에 조용히 텔레비전만 봐서 좋아”라고 이야기하는 일본 남편들이 적지 않다.

왜 한류 드라마는 전 세계 여성들에게 어필할까? 이 골치 아픈 질문에 가장 속 시원히 대답해 준 학자는 UC 버클리의 쥬디스 버틀러 교수와 오레곤 대학교의 캐런 켈스키 교수다. 버틀러 교수는 여성이나 남성이 태어나면서 성적인 자아가 미리 만들어진 뒤 출생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화하는 과정에서 성적 자아가 대뇌에 심어진다고 주장한다.

성적 자아를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사회적 타부는 다름 아닌 근친상간과 동성애의 금지이다. 딸이 태어나 자라면서 어머니나 아버지와의 성적인 접촉, 혹은 여동생이나 오빠와의 성적인 관계가 금지되면서 프로이트가 말했던 멜랑콜리아에 빠진다고 버틀러 교수는 이야기한다.

남성이 남성과의 성교나 근친상간의 타부를 지키는 대가로 생면부지의 새로운 여성을 선물(부인이나 사회가 인정하는 성적 상대)로 받는 반면, 여성은 타부를 지키는 대가로 생면부지의 남성과 성적인 관계를 해야만 한다.

남성과 달리 여성은 그런 생면부지의 남성이 결코 ‘선물’이 아니라 ‘벌’이라고 버틀러 교수는 주장한다. 그러므로 선물이 아닌 ‘지옥’과 같은 남성을 성적 상대로 대해야 하는 일반 여성들은 멜랑콜리아라는 정신적 병에 걸리고 만다는 것이다.

반면에 켈스키 교수는 서양 남자와 결혼한 일본 여성들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서양 남성을 편력한 일본 여성들이 일본 남성 대신에 서양남자와의 성관계나 결혼을 꿈꾸는 행위의 심리적 근저를 탐색했다. 그에 따르면 이는 일본의 남성권위 사회에서 억압받아온 여성들이 일본 남성들에게 복수하는 일종의 사회 운동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서양인과 결혼한 일본 여성들 중에 상당수가 결혼에 실패하고 일본으로 다시 돌아온다고 켈스키 교수는 지적한다. 서양사회 혹은 문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돌아오는 일본 중년여성들은 한류라는 새로운 치유제를 만나게 된다는 분석이다.

한류 드라마는 치유제

그렇게 서양에서 버림받고 다시 일본으로 돌아 온 중년 여성 중에 한류 드라마를 보고 골수 한류 팬이 된 사람들이 많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이수연 박사는 <한류 드라마와 아시아 여성의 욕망>이라는 책에서 한 일본 여성 한류 드라마 팬과의 인터뷰를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스페인 남자와 사랑에 빠져 결혼을 하여 스페인으로 갔습니다. 스페인에서 4년을 살고 이혼한 뒤 일본으로 돌아왔습니다. 돌아왔을 때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마음속이 텅 빈 것 같았습니다. 2년 동안 텔레비전도 안 사고 라디오만 들었습니다. 일본 텔레비전은 정말 재미없었습니다. 하루는 친정에 갔더니 <겨울연가>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보는 순간 이거야말로 내게 곡 필요한 드라마라고 생각했습니다.”

한류 드라마에는 여성이 여성이라는 성적 자의식을 이루도록 강요받기 전의 순수한 사랑, 즉 남성이나 여성이 서로 상이나 벌로 주어지는 권위주의적 질서위에서 행해지는 거짓 사랑이 아닌 가장 원초적인 순수한 사랑에 대한 여성적 욕망이 그대로 드러난다. 이러한 문화적 코드는 전 세계 여성들의 ‘한’을 속 시원히 풀어주는 치유제라는 얘기다.

예술인과 예술

한류 드라마가 <허준>, <주몽>, <태왕사신기> 등을 거치면서 계속적인 사랑을 받고 있는 가운데, K-pop이 드디어 오랜 부진을 딛고 새롭게 한류 장르로 부상했다. 한류를 표출하는 예술인들은 왔다가 곧 사라지지만, 한류라는 예술 장르는 영원하다는 뜻이다.

(계속)

저작권자 © 뉴스웍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