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16.04.12 16:37
중국 수도 베이징의 낙후한 거리 안자러우의 주민위원회 정문 모습이다. 길거리 주민의 일상을 관리하고 통제했던 '가도판사처' 등의 운영에서도 중국 공산당의 변화 조짐이 드러나고 있다.

지난 주 대련(大連 다롄)을 거쳐 우리에게 소흥주(紹興酒)로 유명하면서 주은래(周恩來)의 고향이자 현대 문학의 대문호 노신(魯迅)이 살았다는 소흥시(紹興市)를 다녀왔다. 이 번 출장에서 만난 사람으로부터 현대 중국의 과거 이야기를 접할 수 있었다.

소흥(紹興)시 교외에 해당하는 커차오(柯橋)구라는 곳에서 만난 택시 기사 판(攀)씨와의 만남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판씨는 1960년생 쥐띠로 지난 30년간 대도시 생활을 하다가 다시 고향인 커차오로 돌아온 이력의 소유자다. 이 택시기사의 머리에 가득 차 있는 트라우마가 있었다. 남부 개혁개방의 선봉에 해당했던 심천과 커차우에서 각종 이유로 가도판사처(街道辦事處), 성관(城管)및 계획생육위원회(計劃生育委員會)와 부딪쳤던 스토리들이다.

판 선생은 원래 커차오(柯橋)의 농촌에 살고 있다가 1990년대 초반 심천으로 옮겨가 한 공장에 운전기사로 취직을 했다. 이어 지금의 집사람을 만났고 애들을 낳아 심천 시민으로 살았다. 그러나 대도시인 심천은 그에게 녹록하지 않았다. 호구를 커차오에서 심천으로 쉽게 옮기게끔 해주지도 못했으며, 10여 년 동안 노력으로 간신히 호구를 심천으로 옮겼으나 심천의 급등하던 주택 가격은 결국 2014년 그로 하여금 심천 생활을 접고 귀향하게 만들었다.

문제가 생기고 말았다. 커차오에 남아 있던 집이 커차오 지역의 신도시 발전계획에 따라 가도판사처로부터 철거 명령을 받았던 것이다. 게다가 제대로 된 보상도 받지 못한 채 일괄적인 철거 명령으로 하는 수 없이 소흥시(紹興市) 근처로 이주해야 했다.

심천에서 집을 사지도 못했고 집사람과 애들 호적을 심천으로 옮기는 데 거의 10여년을 보냈으며 그러다가 고향인 커차오로 돌아왔지만 결국 고향 집 철거 반대 데모에 몇 번 참가했다. 그 때문에 가도판사처로부터 자주 호출을 받아야 했다. 이런 몇 가지 경험으로 인해 본인은 아직도 현재 살고 있는 동네에서 무척 부담스러운 존재로 취급 받는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가도판사처(街道辦事處)를 줄인 말 가판(街辦), 도시 관리와 규제 및 철거를 집행하는 청관(城管), 그리고 산아제한을 주도하는 계획생육위원회(計劃生育委員會)의 이름도 직접 마주쳐야 했다. 평소에 관심을 크게 기울이지 않던 행정 용어와 기관의 명칭이 어느덧 눈과 귀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원래 가도판사처는 1954년 12월 31일 <도시가도판사처조직조례(城市街道辦事處組織組例>가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제4차 회의에서 반포되면서 만들어졌다. 가도판사처는 중국의 시 직할 구역 또는 시가 설치돼 있지 않은 지역에 인민정부가 파견한 기관(派出機關)이다.

통계에 의하면 2004년 12월 31일 중국 대륙에는 모두 5904개 가도판사처가 있다 한다. 이러한 가도판사처는 그 안에 ‘XX 가도공작위원회(XX街道工作委員會)’라는 명패도 같이 붙어 있으며 일반적으로 10만 명 이상이 거주하는 시 직할 구와 10만 명 이하 5만 명 이상의 시 직할 구역 또는 구가 들어서지 않은 곳에만 가도판사처 또는 가도공작위원회를 설치할 수 있다고 한다.

가도판사처는 정부 기구로, 그 안에 판공실(辦公室), 도시관리과(청관과), 사구판공실(社區辦公室), 민정과(민생정치과), 계생판(계획생육판공실) 잔련(장애인 연맹)등 여러 개의 과(科)와 실(室)이 있으며 주된 업무는 당의 방침 전달 및 지도, 길거리 문명 건설, 치안 유지, 노인 및 유약자 보호, 사회구제 및 장례제도 개혁, 출산 제한, 민병훈련, 법률 자문, 경제발전계획 수립 및 주민 이주 등 수없이 많은 업무를 담당한다.

가히 “麻雀雖小五臟俱全(참새가 비록 작아도 오장육부를 다 갖췄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각 가도 판사처 안에는 거주민위원회(居民委員會)라는 것이 있다. 이 거주민 위원회는 송대(宋代)로부터 내려온 보갑제(保甲制) 전통을 이어받은 것으로서, 10호(戶)를 1갑(甲)이라고 하고 10갑을 1보라고 하여 100호를 관리하는 군사적이면서 도시 관리 기능을 지닌 호적 관리 제도라 볼 수 있다. 이러한 제도는 일제가 대만을 통치하던 시절에는 일종의 상호 감시제의 성격과 연좌제로 변질하면서 주민 통치를 위해 활용하던 제도였다.

현재의 가도판사처 작업 인원은 행정편제 인원과 사업편제 인원 등 두 종류다. 행정편제 인원은 시 공무원에 속하나 사업편제 인원은 가도판사처에서 별도 고용한 전문 직급으로 공무원 신분이 아니다. 가끔 신문지상에서 나타나는 청관의 문제 등은 사실 사업편제 인원으로 청관의 협조인원들이 물의를 일으키는 경우가 많다. 이들의 정식 명칭은 협관(協管)이라 한다.

최근 이러한 가도판사처가 효율 문제와 예산 등의 이유로 북경과 안휘성 동릉시(銅陵市), 심천및 기타 등지에서 두 가지 새로운 관리 모델 방식으로의 전환을 위해 시험을 받고 있다. 하나는 북경과 안휘성 동릉시를 대표로 하는 모델이다.

우선 가도판사처를 없애고 지역 구정부(區政府)를 남겨두면서 그 직능을 강화하는 방식의 변화다. 얼핏 보면 우리의 동사무소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데 공산당의 지도 기능과 공안당국의 기능, 이밖에 몇 가지 기능을 추가한다. 원래 이런 가도판사처는 1949년 중화인민 공화국 건국 후 주민 자치위원회를 만들어 도시 구역 및 향(鄕)과 진(鎭) 등 작은 지역 관할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정부의 파출소 개념으로부터 시작했다.

그 후 1966년부터 벌어진 10년의 문화대혁명기에는 기존 가도판사처가 조반파(造反派)의 권력쟁탈투쟁으로 무너졌다. 아울러 사구(社區)의 행정기능이 멈추기도 했다. 가도판사처와 유사한 수준의 혁명위원회가 유일한 권력기관으로서 행정기능을 담당했지만 많은 경우 그 실체는 기업과 군이 지역구를 보호하기 위해 파견된 치안 유지 부대에 가까웠다.

이에 따라 행정기능이 오래 작동하지 않기도 했다. 문화대혁명이 끝나자 다시 가도판사처는 부활했다. 그러다 개혁개방이 이루어지면서 기존 국유기업의 단위에 속한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관리해주던 보육원, 유치원, 초중등학교, 양로원, 도서관, 식당, 오락시설, 병원 등의 관리업무가 결국 가도판사처로 옮겨졌다.

그 일부는 새로운 사업으로 나눠지면서 가도판사처 기능의 분화가 이뤄지기도 했다. 이렇게 많은 분야의 업무가 가도판사처로 모이자 지역정부의 지시 하달은 물론 업무 범위에 대한 법령 등 혼선이 야기 될 가능성이 커졌다. 가도판사처는 급기야 변질하기 시작했다.

업무를 아래위로 그저 전달하는가 하면 위에서 내려온 지시를 아무런 검토 없이 무작정 수행하는 폐단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서인지 늘 새 시가지 건설을 위한 주택 철거 과정에서 가도판사처는 성관인원(도시 관리 인원들)을 앞세워 강제적으로 기존 건물들을 철거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계획생육위원회에서는 출생허가증을 제대로 발급하지 않거나 법령 미숙지로 업무를 상급 단위로 무책임하게 떠넘기는 등의 행태도 자주 보여 일반 시민들의 불평이 크게 쌓여갔다. 이에 대안으로 등장한 구정부는 몇 개의 가도판사처를 합쳤고, 인원을 추가해 상급 정부에서 처리하던 업무를 사구(社區)에서 One Stop Service를 선보였다. 북경과 안휘성 동릉시에서 나타났던 변화였다.

이러한 변화는 외국인에게 매우 낯설다. 그러나 중국은 이러한 도시 관리 유형의 변화가 주는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가도판사처를 통해 주민들을 직접 통제하는 방식에 심상치 않은 ‘전환’이 일어났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각 지역 주민들의 자발적인 의식을 불러 일으켜 공산당의 상명하달식 주민 통제 방식이 ‘주민 자치’로 바뀔 가능성이 드러났다는 얘기다.

이제 중국의 각 도시들은 일반 도시의 개념에서 벗어나 거의 ‘작은 나라 규모’의 도시로 변하고 있다. 그리고 도시와 농촌의 간격이 줄어들고 있다. 그러기에 우리가 중국을 이해하는 데 이 점은 매우 중요한 포인트가 될 것으로 보인다.

다시 한 번 소흥(紹興)에서 만난 판 선생의 말이 귓가에 맴도는 듯하다. “我真沒用, 我連家都 保不了(나는 참 쓸 모가 없어요, 살던 집도 지키지 못하니 말입니다)”는 말이었다. 앞으로 중국의 도시와 농촌에는 거센 변화가 닥칠 전망이다. 중국 공산당의 집권 능력, 주민 자치의 가능성, 그로 인한 중국의 질적(質的)인 변모 등을 다 들여다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런 거센 변화의 와중에서도 판 선생과 같은 평범한 시민들이 늘 웃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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