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허운연 기자
  • 입력 2021.01.04 19:35

[뉴스웍스=허운연 기자] 지난주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서는 입양아 학대 사망편이 방송됐다. 생후 7개월 무렵 양부모에게 입양된 정인이는 이후 271일 만에 사망했다. 겨우 16개월 살다간 정인이의 몸에는 학대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부러졌다 다시 붙은 뼈가 다수 확인됐고 췌장은 찢어졌으며 배에는 피가 가득 찼다.

국민들은 분노했다. 이에 사회각층에서 ‘정인아 미안해’ 챌린지가 벌어졌고 양부모의 엄벌을 요구하기 위해 법원에 진정서를 보내는 운동도 시작됐다.

특히 정인이를 살릴 수 있었던 기회를 모두 날려버린 양천경찰서에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어린이집 교사와 소아과의사 등이 학대 정황을 발견해 3차례에 걸쳐 경찰에 신고했으나 이를 ‘무혐의’로 처리했다. 학대 받는 아이가 있었고 지키고자 했던 어른들이 있었지만 경찰은 양부모의 말만 들었다.

여당은 부랴부랴 대책 마련에 나섰다.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은 4일 최고위 회의에서 “아동학대, 음주운전, 산재사망에 대해서는 국민 생명 무관용 3법을 입법하겠다”며 “16개월 정인이의 가엾은 죽음을 막기 위해서라도 아동학대의 형량을 2배로 높이고 학대자 신상을 공개하겠다”고 말했다.

형량 확대나 신상 공개도 당연히 해야할 일이지만 정인이는 3차례에 걸친 신고를 통해 양부모와 떼놓을 기회가 3번이나 있었던 만큼 경찰에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경찰은 올해 ‘비대’해졌다. 경찰개혁의 첫발로 1차 수사종결권을 갖고 자치경찰제도 시행된다. 경찰은 수사권 개혁으로 국민편익 증진과 피해회복이 더 활성화되고 자치경찰제 도입으로 지자체와 연계된 주민 밀착형 서비스가 제공될 것이라고 약속했다.

다만 국민들은 의문이다. 이번 건만 해도 "경찰이 경찰했다"고들 한다. 현재 경찰 수준에서는 언제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은 일이라는 것이다. 경찰이 조롱거리가 된 건 처음이 아니다. 그런 조직이 더 커졌다는데서 불안을 느끼는 국민들도 있다. 3번의 간절한 외침에도 묵묵부답이었던 경찰을 국민이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는가.

물론 전체 조직을 비난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도 사명감을 갖고 일선에서 열심히 뛰는 경찰들을 응원한다. 다만 이제는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경찰의 팔은 안이 아니라 국민을 향해 굽어야 한다.

지방청에 지방이 빠지고 조직이 커지는데 환호하기 보다는 작은 소리라도, 작은 아이라도 놓치지 않는 민생 경찰이 되는 것이 우선이다. ‘국민과 소통하는 따뜻하고 믿음직한 경찰로 국민과 함께 하겠습니다’라는 약속, 이제는 지켜야 한다.

아이 울음소리가 그친 대한민국에 학대로 인한 아동 사망 소식은 계속해서 들려온다. 정인이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지난 6월에는 캐리어에 7시간 넘게 갇혀 숨진 9살 아이도 있었다.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위기의 아동을 파악하는 제도가 작동되지 않아 안타까운 사건이 일어났다”며 “그 부분에 대한 대책을 살펴봐야 한다”고 지시했으나 정인이의 사망을 막지 못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 출생아 수는 27만5815명에 그쳤다. 3년 만에 30만명대가 무너졌다. 출생아 수보다 사망자가 더 많은 인구 데드크로스도 발생했다. 당연한 소리겠지만 하나의 작은 생명이라도 절대 놓쳐서는 안 되는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다.

정치권이나 정부도 거창한 저출산 대책 이전에 하나의 생명도 귀하게 여길 수 있는 정책을 내놓아야 한다. 더는 학대로 상처받고 사망하는 아이가 없도록 정인이에게 미안한 어른들이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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