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전다윗 기자
  • 입력 2021.01.29 15:00
전다윗 취재노트 증명사진

[뉴스웍스=전다윗 기자] 몇 달 전 정부기관을 상대로 취재하며 답답함을 느꼈다. 해당 기관이 특정 업체에 특혜를 주는 듯한 정황을 제보받아 사실 여부 확인이 필요했다.

어렵게 관련자를 찾아내 물었더니 "담당이 아니다"란 대답이 돌아왔다. 이후 '담당자'라는 사람의 전화번호만 수차례 받아 적었지만, 한 명도 자신의 관할이라고 인정한 사람이 없었다. 소개받은 담당자에게 접촉하면 "사실 다른 기관의 아무개가 '진짜 담당자'"라며 답변을 피했다. 결국 제보가 사실이 아니었다는 허무한 결론을 얻는 데 며칠이 걸렸다. 

공무원들의 책임 떠넘기기는 고질적인 문제다. 경계가 불분명하거나, 민감한 사안일 경우 업무를 회피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자칫하면 일의 모든 책임을 자신, 또는 자신의 부서·기관이 져야 한다는 우려 때문이다. 이러한 우려는 결국 '민원 핑퐁', '전화 뺑뺑이' 등으로 이어진다. 

공무원들의 고질적인 소극행정은 결국 집단감염이란 대형사고 발생을 부추겼다. IM선교회 산하 미인가 교육시설발 집단감염은 사전에 방지할 기회가 수차례 있었지만, 책임 떠넘기기가 지속되며 때를 놓쳤다.

29일 기준 IM선교회발 코로나19 확진자는 340명에 달한다. IM선교회 산하 대전 IEM국제학교 관련 확진자가 170명이 넘고, 광주 TSC국제학교 2곳과 교회 관련 확진자도 140명 이상 발생했다. 국제학교는 한 방에 많으면 20명씩 집단합숙하는 미인가 교육시설이다. 그간 학교, 학원, 종교시설 어디에도 속하지 않아 방역수칙의 사각지대에 있었고 집단감염이 발발하며 그 실체가 드러났다. 

하지만 이번 집단감염은 미리 막을 수 있었다. 방역당국은 가장 많은 확진자가 발생한 대전 IEM국제학교의 존재를 지난해 6월 말부터 알았다. 당시 대전시가 국세청·종교단체 등을 통해 확보한 관련 시설 명단을 대전 중구청에 전달한 상태였다.

지난해 7월에는 주변 주민들이 해당 시설을 112에 신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두 달 후인 9월엔 국민신문고에 대전 IEM국제학교 관련 민원이 접수됐다. '수십명의 학생이 한 건물에 살며, 밤에도 찬송가를 불러 주변의 피해가 크다'는 내용이었다. 

이에 대한 기관들의 대응은 '애들 장난' 같았다. 대전 중구청은 여러 차례 시설 점검에 나섰으나 별다른 소득이 없었다. 미인가 시설이라 학원의 방역수칙에 맞춰야 하는지, 종교시설의 방역수칙을 적용해야 하는지 모호했던 탓이다. 결국 중구청은 대전시 교육청에 공문을 보내 '학원인 것 같다'며 점검을 요구했으나, 대전 교육청은 공문을 반려했다. 해당 시설은 종교단체가 설립한 무등록·미인가 시설이고, 이에 대한 지도·감독은 지자체 소관 업무라는 것이 대전 교육청의 입장이었다.

집단감염의 온상이 될 수 있음을 충분히 눈치챌 수 있는 중요한 사안이었는데도 관리 근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를 들며 서로 떠넘기기에 급급했다. 결국 방심과 무관심 속에 집단감염이 발발했다. 이로인해 한때 희망을 품었던 사회적 거리두기 완화 조치도 멀어진 듯 보인다. 

흔히 코로나19 사태를 준전시 상황에 비유한다. 잠깐의 방심도 허용치 않는 일촉즉발의 상황이란 의미다. 이번 집단감염 사태는 육군이 적의 전초기지를 발견했지만 '공군인 것 같다'며 경계하지 않은 꼴이다. 습격이 시작된 후 '공군이 잘못했다'고 해봤자 이미 늦었다. 한바탕 당하고 난 뒤 자주포에 맞았느냐, 폭격기에 당했느냐가 중요할까.  

이번 사태가 공직자들의 무사안일주의에 경종을 울리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더 나아가 적극적으로 임하면 바보가 되는 공직사회의 구조적 문제도 뜯어고쳐야 한다. 적극적으로 해결해도 달라질 건 없고, 잘못되면 나 혼자 뒤집어쓴다는 것이 대다수 공무원의 인식이다. 최근 적극행정을 장려하는 법과 제도가 늘었다지만, 여전히 리스크는 크고 리턴은 적다. 잘잘못에 대한 상벌이 더 명확해질 필요가 있다. 

방역당국의 '남 탓'도 그만 보고 싶다. 1년간의 코로나19 확진 사례를 돌아보면 개신교를 포함한 종교단체발 집단감염이 주를 이뤘다. 관련 시설에 대한 더 꼼꼼한 점검과 조처가 필요했다. 사태가 벌어진 뒤 제3자처럼 관망하며 '총알받이'를 세우는 것도 떠넘기기에 불과하다. 일개 지방 공무원들과 특정 단체가 오롯이 짊어질 책임이 아니다. 최종 책임자들부터 여차하면 옷 벗겠단 각오로 임해야만 제2, 제3의 종교단체발 집단감염 사태를 막을 수 있다. 

저작권자 © 뉴스웍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