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원성훈 기자
  • 입력 2021.02.04 19:25
원성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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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웍스=원성훈 기자] 한일해저터널 건설은 토건족들의 이익 집착에 불과한 것일까. 아니면 차후 통일한국에서의 활용 가능성까지 내다 본 야심찬 시도일까. 

김종인 국민의힘 위원장은 지난 1일 부산 강서구 가덕도 대항전망대를 찾아 가덕도 신공항 사업을 적극 지지한다면서 이에 더해 내놓은 공약이 '한일 해저터널 건설'이다. 이로 인해 정치권은 뜨거운 공방을 펼치고 있다. 경제성 논란을 비롯해 친일 문제까지 광범위하게 찬반 양론이 넘쳐나고 있다.

김 위원장은 이날 "가덕도와 일본 규슈를 잇는 한·일 해저터널을 적극 검토하겠다"며 "일본에 비해 월등히 적은 재정부담으로 생산 부가효과 54조 5000억원, 고용유발 45만 명에 달하는 엄청난 경제효과가 기대되는 사업"이라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의 이런 구상이 나오자 박인영 더불어민주당 부산시장 예비후보는 3일 논평에서 "국민의힘이 제시한 한일해저터널의 편익은 오로지 4대강 사업 최소 5배에 이르는 토건적 이익뿐"이라며 "토건에 집착하는 이명박 후예다운 단견"이라고 질타했다.

한일해저터널의 경제적 효과를 가늠해 보려면 이미 건설돼 활용중인 해외의 유사 사례를 살펴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영국과 프랑스는 지난 1994년 영국 해협 가운데 가장 좁은 부분인 도버 해협 밑을 뚫어 터널을 만들었다. 도버 해협을 배편과 항공편 뿐 아니라 육로로 연결한 것이다. 총 연장 길이 49.9㎞인 영불 해저터널이 개통됨에 따라 유로스타 열차로 런던~파리 구간을 3시간 만에 주파할 수 있게 됐다.

영불 해저터널 운영사인 ‘유로터널’은 해저터널 개통 후 수년간 재정적 어려움을 겪었지만 개통 20주년인 2014년엔 매출이 10억 유로(당시 환율로 1조 4260억원), 순익이 1억100만 유로(1440억원)으로 완벽한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2013년 기준으로는 이용객도 2천만 명을 상회했다. 

남북한 간 경제협력이 본격화된다면 한일해저터널도 뚫을만 하다는 것이 이미 나온 연구기관 보고서의 결론이다. 2018년 10월 국토부는 2017년 당시 교통연구원에 의뢰한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당시 교통연구원은 "한일 해저 터널은 당장 비용편익분석이 0.6으로 낮지만 남북도로교통연결 사업이 완료되면 배후 경제권이 커져서 다시 사업진행 동력을 얻을 수 있다"고 밝혔다. 

한일해저터널이 건설되면 천문학적 수준일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초국경 경제권 형성을 가속화 하고, 부산이 동북아통합교통망의 중심도시로서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한일해저터널이 건설되면 한국과 일본은 시속 700㎞의 자기부상열차로 1시간 이내에 도달 할 수 있다. 자동차로는 2시간 내로 이동이 가능하다. 

한일 해저터널이 새로 신설될 부산 가덕도 공항과 연계되면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나온다. 부산발전연구원의 '한일터널기본구상 및 향후 과제'라는 보고서에 의하면, 한일해저터널 사업의 한국 측 부담액은 약 20조 원 정도다.

이같은 투자에 비해 경제적 효과는 훨씬 큰 것으로 추정됐다. 생산유발효과는 54조 5300억 원, 부가가치유발효과는 19조800억원에 달하며 고용유발효과는 44만9900여 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한일해저터널이 건설되었을 때 창출되는 수요와 관련, 여객을 417만 6000명(2030년 기준)이 이용 할 것으로 추정했으며, 화물은 9만3000TEU(2030년 기준)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더구나 이런 수치는 장차 '통일한국'이 들어섰을 때 엄청나게 늘어날 수밖에 없는 한반도와 일본 열도 간 교통 및 관광수요 급증은 제외한 것이다.  

한일해저터널을 놓고 어김없이 '친일 문제'도 거론됐다. 박인영 예비후보는 "일본의 한반도 침략의 결과가 지금의 분단된 대한민국이며, 일본의 대한민국 침략은 현재 진행 중"이라며 "대한민국은 2019년 일본의 수출규제라는 경제침략을 당했다. 우리 대한민국은 정부 신속한 대처로 위기를 극복했고, 전 국민이 한마음으로 일본산 불매운동 시작해 지금도 진행 중"이라고 비판했다. 

이런 주장에 반대 입장도 만만치 않다. 성일종 국민의힘 의원은 4일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힘 비상대책회의에서 "부산시장 선거에서 정책 이슈로 한일해저터널이 중심에 떠오르자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일본을 위한 정책이라며 친일 프레임으로 내몰더니 친일의 DNA가 살아났다며 여권 수뇌부가 죽창을 들고 나서고 있다"며 "심지어 민주당 부산시장 예비후보인 김영춘 후보는 한일 해저터널은 일본을 대륙국가로 만드는 것이라며 김대중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을 폄하하는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한일 해저터널은 231㎞로 수심이 제일 깊은 곳은 200m이고, 우리 정부가 담당할 거리는 약 50㎞ 정도이며 15조원에서 20조원이 들어갈 것으로 예측된다"며 "이미 싱가폴과 말레이시아, 영국과 프랑스 등 각국이 협력하여 해저터널을 통한 상호 이익을 보고 있다. 또한 이런 건설 공사는 각국의 경계까지 하는 것이 관례"라고 반박했다. 

물론, '한일해저터널'이 실제로 건설됐을 경우 '일본만 좋아진다'거나 '일본의 대륙진출 교두보를 우리가 자청해서 만들어주는 매국행위'라거나 '일본의 문화 침투가 가속화 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하지만 김대중 대통령 집권 당시 운동권 세력이 그토록 반대했던 일본 대중문화 개방이 오히려 '한류 물결'의 시작이 되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젠 한류가 오히려 일본의 문화에 큰 영향을 끼치는 현실을 보면 '문화와 문명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는 속설이 그대로 증명된 셈이다. 더구나 영국과 프랑스의 경우에서 보듯이 해저터널 개설로 인한 이익 자체가 커서 상호 윈윈하는 형태로 세밀히 설계하면 될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현재 한일해저터널 추진을 반대 측에 서있는 민주당 일각의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폄하 의혹도 불거졌다. 김영춘 민주당 부산시장 예비후보가 지난 3일 한 라디오 시사프로그램에 출연해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들도 부산의 입장에서 곰곰이 따져보신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계산을 제대로 해봤다면) 그런 얘기는 안 나왔을 거라고 본다"고 말한 것에 대해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이 같은 날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DJ, 노무현도 대한민국 국익이 아니라 일본 국익을 위해 한일터널 찬성했다는거냐"고 반박했기 때문이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지난 1999년 9월 오부치 일본 총리와의 한일정상회담에서 "한일 터널이 건설되면 홋카이도에서 유럽까지 연결되니 미래의 꿈으로 생각해 볼 문제"라고 발언한 바 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도 2003년 2월 청와대에서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와 취임 첫 한일정상회담을 갖고 한일해저터널의 필요성에 대해 "한일 간에 해저터널을 뚫어야 한다는 의견이 있어왔지만 북한 때문에 실감을 잘 못하는 것 같다"며 "북한 문제가 해결되면 해저터널 착공 문제가 경제인들 사이에서 다시 나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민주당의 뿌리라고 볼 수 있는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이 한일해저터널이 미래에는 가능할 것으로 예견하는 등 필요성에 대해 긍정적인 의견을 보였다는 것은 분명하다. 부산시장 보궐선거에 미칠 당리당략 차원의 유불리 논쟁을 넘어 2050년 이후 전 세계 열강 판도 변화를 미리 그려보면서 동아시아 지도를 바꿀 대역사의 의미와 효과를 차분하면서도 냉정하게 살펴볼 때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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