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윤현성 기자
  • 입력 2021.03.16 19:00

[뉴스웍스=윤현성 기자] 한국토지주택공사(LH) 임직원들의 신도시 땅 투기가 현 정부가 기치로 내세웠던 검찰 개혁, 부동산 문제 해결, 적폐 청산 등을 모두 뒤흔들고 있다. LH 사태에 당혹스러워하던 당정청이 시간이 지나면서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서다.

먼저 정부와 여권은 왜 이번 LH 사건 수사에서 검찰을 배제했냐는 지적이 나오자 부동산 투기의 근본 책임이 검찰에 있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지난 11일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3기 신도시 얘기가 2018년부터 나왔는데 검찰이 수사권을 갖고 있을 때는 뭘 했나"라고 지적했고, 전임 장관인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14일 자신의 SNS를 통해 "부동산 시장의 부패에 검찰의 책임이 가장 크다"고 비난했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상임선대위원장도 같은 날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이 부동산 범죄를 수사하라고 검찰에 지시했지만 검찰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며 검찰로 화살을 돌렸다. 이에 더해 이 위원장은 "LH는 해체에 준하는 대수술이 불가피하다. 2009년 이명박 정부가 너무 많은 정보와 권한을 집중시켰다"며 전 정권을 언급하기도 했다.

당초 현 정권의 검찰개혁을 두고 검찰의 '업보'라는 관측이 많았으나, 최근 당정의 행보는 이를 명분으로 '검찰 책임 전가'를 만능 무기처럼 휘두르는 모양새다. '기승전검찰, 기승전전정권인가'라는 피로 섞인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회피 태세'는 청와대도 마찬가지다. 부동산 투기 문제와 관련해 문재인 대통령은 15일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정부는 여러 분야의 적폐 청산을 이뤘으나 부동산 적폐는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저 시장 안정에 몰두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불과 2년 전인 2019년 11월 진행된 국민과의 대화에서 문 대통령은 "부동산 문제는 우리 정부에서 자신있다고 장담하고 싶다"며 "지금 현재의 방법으로 부동산 가격을 잡지 못한다면 보다 강력한 방안들을 강구해서 부동산 가격을 잡을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부동산 문제는 자신있다고 공언했던 문 대통령이 LH 사태가 촉발된 이후 "부동산 적폐는 엄두를 내지 못했다"고 발언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부동산 가격 안정이라는 문 대통령의 약속도 사실상 지켜지지 못했다. 국토교통부가 지난 15일 발표한 '2021년 공동주택 공시가격안'에 따르면 정부가 올해 공동주택 공시가격을 지난해보다 19% 넘게 올리면서 지난 2007년(22.7%) 이후 14년 만에 가장 큰 상승폭을 기록했다. 전년도 상승률(5.98%)의 3배 이상이다.

이로 인해 부동산 안정은커녕 국민들의 부담은 더 커지고 있다. 공시지가 상승의 연쇄효과로 재산세·종합부동산세는 물론 건강보험료까지 올라 은퇴자의 세금 부담까지 커진 실정이다. 

부동산 정책 실패로 인한 증세, LH 사태로 인한 국민들의 불신과 열패감이 한데 묶이면서 '부동산'이라는 단어는 현 정부의 역린으로 자리잡게 됐다.

결국 정권 하반기에 발생한 이번 LH 사건을 어떻게 해결하는지가 문재인 정부의 '성적'이 될 가능성이 크다. LH 사태 이후 문 대통령과 정세균 국무총리 등은 연일 '발본색원', '패가망신', '환골탈태'와 같은 강경대응을 시사하고 있지만, 1차 조사와 같은 맹탕 결과를 반복한다면 '빈 수레가 요란했던 것'이라는 평가를 피할 수 없다.

더욱이 검찰개혁의 일환으로 현 정부가 밀어붙인 국수본이 수사의 주축이 되는 만큼 LH 사태 수사가 국민들의 근본적인 불신 해소로 이어지지 못한다면 중대범죄수사청 설치 등을 바탕으로 한 검찰개혁 시즌2에도 타격이 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그런데도 당정청의 모습은 오는 4월 7일 예정된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 매몰돼 '유야무야' 넘어가려는 경향이 강해보인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듯 LH 사태에 정부가 실질적인 대응과 수사에 나서지 않는다면 '망신'을 당하는 것은 투기꾼들이 아닌 문재인 정부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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