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16.04.28 16:08
현대 대중문화의 한 종류인 팝아트 개념의 회화. 다른 문화를 받아들이는 행위에는 전향적인 방법과 후향적인 방식이 있다. 중국이 한류를 받아들이는 행위는 전향적인 요소가 많다.

전 회에 연재한 대로 중국은 강타이(港臺) 문화를 포함하는 자랑스러운 대 중화권 문화를 가지고 있는 대국이다. 그렇다면 저들은 전 세계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은 자신들의 자랑스러운 문화가 있는데, 왜 약소국인 한국의 대중문화에 심취할까?

이 질문은 사실 여러 중국인 학자들 사이에서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겉으로는 “한국 대중문화가 어느 나라의 대중문화보다 싸니까(문화 디스카운트론) 수입해서 즐긴다”고 하지만, 속으로는 그 수수께끼를 풀 속 시원한 답이 없다. 호주국립대의 로알 말리앙카이 교수는 “중국에서는 이미 영미, 일본 대중문화도 얼마든지 공짜로 불법복제해서 즐길 수 있기 때문에 한국대중문화의 저가(低價)수출은 중국에서의 한류 붐에 대한 설명이 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실례로, 2011년 2월 미국 UC 버클리 대학에서 열린 제1회 고려대-버클리 한류 워크숍에서 홍콩과 대만의 학자들은 열렬하게 한국 드라마의 문화 디스카운트론을 주장했다. 그러나 한국 문화가 중국과 홍콩이나 대만에서는 싸게 수입될지는 몰라도 일본에서는 아예 한류드라마가 할리우드 드라마와 같은 가격에 수입된다는 지적에 대해 아무 반박도 할 수 없었다.

한류가 싸기 때문에 중국에서 공전의 유행을 한다는 말이 거짓이라면, 무엇 때문에 중국인들은 한류에 열광할까?

 

공짜로 즐기는 대중문화

호주 국립대의 로알 말리앙카이 교수는 그의 논문 <당신의 적들과 가까이하라: 중국에서 한국대중문화 감싸기>에서 중국내의 한류 붐은 한국 대중문화가 할리우드나 일본 대중문화보다 수입단가가 싸기 때문이 아니라고 단언했다. 이어 그는 중국내에서 아무리 한류에 대한 정부나 혐한 단체들의 압력이 있어도 불법 복제되어 배포되는 한류 DVD나 인터넷 불법 다운로드 사이트들을 막을 길이 없다는 점이 이유라고 했다. 즉, 한류는 가격이 아무리 비싸져도, 정부가 아무리 막아도 그 것에 한 번 중독되면 꼭 DVD 불법복제나 인터넷 불법다운로드를 받아서 봐야 하는 마약 같은 그 무엇이 있다는 것이다.

나중에 북한의 한류에 대한 설명에서도 언급하겠지만, 북한 같은 폐쇄된 사회에서도 불법 복제된 한류 DVD를 보지 않으면 안 되는 북한의 한류 팬들과 그 상황이 같다는 것이다.

위의 주장은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 일본에서 반(反) 한류 내지는 혐(嫌) 한류 운동이 극심해지자 한류 경기가 급속히 얼어붙은 이유가 바로 불법복제 내지는 불법 다운로드 사이트가 없기 때문이라는 점을 떠올리면 좋다. 우리나라의 경찰이 사이버 상에서 포르노 사이트를 차단하더라도, 한국에서는 얼마든지 불법 다운로드나 복제사이트가 있기 때문에 경찰청의 단속이 무의미한 것과 그 논리가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그러나 말리앙카이 교수는 논문에서 “왜 중국의 젊은이들이 한류에 열광하는지에 대해서는 적절한 답을 찾을 수 없다”고 고백했다. 단지 한류의 내용이 서구적이고 미국의 대중문화와 흡사하지만 드러내놓고 미국 대중문화를 소비할 수 없으므로 미국과 비슷한 한국 대중문화를 소비하는 것이 아니냐는 견해를 조심스레 내놓을 따름이다.

그러나 한국 대중문화가 미국문화의 대리만족이라면, 미국 대중문화를 마음대로 소비할 수 있는 일본의 한류 팬들은 왜 한류를 그토록 뼈에 사무치도록 그리워할까?

 

문화적으로 가까워서

또 하나 중국학자들의 궤변은 한류가 중국에서 뜬 이유가 한국 문화의 근본이 중국에서 배워간 중국문화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즉 문화적 근접성이란 궤변이다. 물론 <대장금>을 보면 궁궐의 모습이나 조선시대의 생활양식이 중국 것과 흡사한 점은 사실이다. 그러나 <사랑이 뭐길래>, <순풍산부인과>, <상속자들>이 중국 문화와 흡사할까? 문화적으로 한국과 전혀 가깝지 않은 남미, 동남아시아, 중동, 아프리카에서 왜 <대장금>, <겨울연가>, <너의 목소리가 들려>가 왜 대히트를 쳤을까?

안타까운 것은 이런 중국학자들의 궤변에 몇 몇 한국의 한류 학자들도 동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문화 디스카운트론과 문화근접성론은 허무맹랑한 중국문화의 자만심에서 나온, 한류 깎아내리기에 급급한 공허한 논리에 불과하다. 중국인이 한류에 열광하는 이유는 다른 곳에 있다.

 

전향적 학습론

심리학자들은 대중문화의 섭취나 소비를 하나의 학습행위로 간주한다. 뭔가 새로운 것을 배우려는 행위의 동기는 주로 두 가지로 축약할 수 있다. 하나는 전향적 학습론이고, 다른 하나는 후향적 학습론이다. 전향적 학습론은 어떤 새로운 사실을 공부하는 동기가 바로 성취의 목적에서 나오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즉 수능 논술공부를 하면 일류대학에 갈 수 있기 때문이라면, 그 학습의 동기가 전향적이다. 반면에 후향적 학습은 뚜렷한 성취 목적이 없는 학습이다. 예를 들어 내가 지금 페르시아 시를 공부하고 싶다면 무슨 이유에서 일까? 페르시아 시를 공부하면 판검사 시험에 합격할 수 있거나, 삼성전자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일까?

중국의 한류 팬들은 전향적 학습자들이다. 즉, 한류를 소비하면서 한국의 대중문화를 공부하면 뚜렷한 경제적, 사회적 목적을 성취할 수 있다는 공통적이고 집단적인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과거 한국의 중상층 사람들이 미국, 유럽 문화 대신에 먼저 일본 대중문화에 심취했던 상황과 그 맥락이 비슷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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