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조영교 기자
  • 입력 2021.05.01 08:05

"강력한 힘 지닌 '좋은 직장' 군대에 남성만 가선 안돼"…이스라엘, 대상자 40~50%만 21개월 복무

이스라엘 남녀 군인. (사진=IDF 페이스북 캡처)
남녀 모두 징병대상인 이스라엘의 남녀 군인. (사진=IDF 페이스북 캡처)

[뉴스웍스=조영교 기자] 최근 정치권의 뜨거운 감자로 여성징병제가 대두되고 있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저서 '박용진의 정치혁명'에서 '모병제 전환'과 더불어 남녀 모두 최대 100일간의 의무 기초군사훈련을 받게 하자는 '남녀평등 복무제' 도입을 주장했다. 이를 시작으로 같은날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도 '여성도 징병대상에 포함시켜 주십시오'라는 제목의 청원글이 올라왔고 동의 인원은 30일을 기준으로 24만명이 넘었다. 

노르웨이 입대경쟁률 6대1, 사실상 모병제 가까워

전세계 징병제 국가 64개국 중 여성징병제를 시행 중인 국가는 총 11개국이다. 이 중 군부국가, 독재국가, 내전이 진행중인 나라 등을 제외하면 이스라엘, 노르웨이, 스웨덴, 네덜란드 등을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다. 

성 평등 관점에서 가장 진보적인 입장을 취하며 여성징병제를 이끌어 온 노르웨이와 팔레스타인과 분쟁 중인 이스라엘 사례를 중심으로 여성징병제 논의 과정과 시행 상황을 살펴봤다. 

스트롬 에릭센 노르웨이 전 국방부 장관. (사진=스트롬 에릭센 페이스북 캡처)

박진수 덕성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가 2019년 발표한 '한국, 미국, 노르웨이의 여성 징병제 논의와 사회적 갈등 연구 : 행위자, 쟁점, 갈등 표출과 해소를 중심으로' 논문에 따르면 노르웨이는 2016년부터 여성 징병제를 시행했다. 분쟁국가가 아닌 곳에서 남녀 모두를 대상으로 의무 복무 시스템을 도입한 것은 유럽국가 중 노르웨이가 첫 사례다.

노르웨이는 2007년부터 정부 부처에서 '성 중립적 징병제'를 권고하며 여성징병제 도입 논의를 시작했다. 당시 여성징병제에 관한 사회적 논의를 주도한 것은 노르웨이 내 사회주의 계열 정당 출신 여성 정치인들이었다.

노동당 출신인 스트롬 에릭센 노르웨이 국방부 장관은 2007년 "우리가 징병제를 오늘 제안했다면 인구의 반을 생략하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여성징병제 도입을 주도했다. 국방장관과 국방부가 주도해 2008년부터 본격적으로 여성징병제 도입에 관해 사회적 논의가 이뤄졌다.

물론 노르웨이 내에서도 반대하는 목소리가 많이 나왔고 갈등을 빚었다. 중앙당 출신의 파스터라누 도브로 시장은 "노르웨이의 징병제가 사실상 모든 사람이 복무하는 '보편적' 징병제가 아니며 여성이 군대에 복무하길 원하면 이미 가능한 상황에서 여성징병제 도입이 굳이 필요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런 갈등 속에서도 사회주의 계열 정당 소속 여성 정치인들은 여성계를 설득하고 사회적 합의를 주도하며 여성징병제 도입을 이끌었다. 그 결과 2013년 노르웨이 의회는 '성 중립적 징병제를 위한 결의안'을 승인하고 2016년부터 여성징병제를 본격적으로 시행했다. 

노르웨이는 현재 매년 19세가 되는 남성과 여성을 복무 대상자로 선정하는데 수는 약 6만여명 정도다. 다만 노르웨이 군은 능력, 동기 등을 고려해 전체 징병대상자 중 약 8000명 정도만 선발해 징집한다. 복무기간은 통상 12개월 정도며 지원자에 한해 최대 19개월까지 추가 연장이 가능하다.

또한 남녀를 막론하고 징병 대상이 되더라도 학업이나 기타 사유 등으로 징병을 회피할 수 있어 융통성있게 징병이 이뤄지고 있으며 입대경쟁률이 약 6대1인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모병제에 가까운 모습으로 징병이 이뤄지고 있다.  

훈련 중인 이스라엘 여군. (사진=IDF 페이스북 캡처)
훈련 중인 이스라엘 여군. (사진=IDF 페이스북 캡처)

◆이스라엘,국가 선언 이전부터 여성 군대 참여…남성 보조적·비전투적 역할 한계

이스라엘은 여성징병제를 도입하기까지 많은 진통이 있었다. 권인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명지대 교수로 재직 중이던 2008년 발표한 '징병제의 여성참여' 논문에 따르면 이스라엘 여성의 군대 참여는 공식 국가 선언을 한 1948년 이전부터다.

이스라엘에선 남녀를 합쳐 매년 약 13만명이 징병되는데 남성은 3년, 여성은 21개월을 복무하게 된다. 남녀 간 징병은 복무기간의 차이, 군대 내에서의 역할도 있지만 병역 면제 조건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여성은 결혼했거나 임신을 한 경우 군대에 가지 않으며 종교적 이유로 양심상 병역을 원치 않아도 병역에서 면제되므로 여성 징병대상 중 약 40~50%만 군대에 간다. 또한 이스라엘은 전쟁과 테러 등의 문제로 1년에 약 한달에서 한달 반 정도를 예비군서비스를 해야 하는데 여성은 예비군 군사훈련을 받지 않는다. 

이스라엘 여성은 징병면제 혜택을 남성보다 많이 누린 것과 더불어 군대에서 하는 역할도 제한적이다. 국가 성립 이후로부터 금지되던 여성의 전투참여가 1986년부터 법적으로 가능해졌지만 대부분의 여성들은 여전히 비전투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상황이다.   

육군 수도방위사령부 독거미부대 특임중대원
대한민국 육군 수도방위사령부 독거미부대 특임중대원들. (사진=대한민국 육군 공식 블로그 캡처)

노르웨이와 이스라엘의 여성징병제 도입 과정과 갈등은 향후 우리나라에서 여성징병제과 모병제 등 군 문제를 다루는 데 좋은 참고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이다. 다만 이들 국가와 우리나라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에릭센 노르웨이 국방부 장관이 여성징병제 도입과 관련해 "군대는 노르웨이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곳 중 하나다. 이 집단이 오직 남자에게만 열려있다면, 이는 우리나라의 평등이라는 기본적 원칙에 위배되는 것"이라고 말한 것에서 그 차이를 알 수 있다. 

논문에 따르면 노르웨이의 여성징병제 도입은 군대를 교육과 일의 영역으로 인식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군대는 좋은 일자리이며 사회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집단으로, 이런 좋은 직장과 권력을 남자만 가질 수 있다면 그것은 공정하지 않다고 인식하는 것이다. 따라서 여성징병제는 여성들이 군대라는 일과 권력을 얻기 위한 좋은 방편으로 작용한다.

이스라엘은 분쟁을 겪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과 비슷한 상황으로 가장 많이 고려되지만, 여성징병제가 도입되는 과정과 사회 인식 등에서 많은 차이가 존재한다. 이스라엘 역시 노르웨이처럼 군대에 대한 인식과 대우가 좋은 편에 속한다. 

다만 노르웨이와는 다르게 집단주의적 정서가 강해 노르웨이나 다른 유럽 국가들처럼 여성의 군 참여가 남성과 동등한 의미의 시민권 획득으로 이어진다고 볼 수 없다. 여성징병제가 실시되는 양상 역시 남성과 다른 복무기준, 다른 근무환경, 다른 면제조건 등을 보이며 한계를 갖고 있는 점이 그 이유다. 

노르웨이와 이스라엘 두 나라 모두 여성징병제가 정착되기까지 많은 진통을 겪었다. 그럼에도 합의에 도달할 수 있던 이유는 군에 대한 인식이 긍정적인데다 사회적 갈등을 논의하고 합의를 이루는 데 정부가 주체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여성징병제 도입과 관련한 논란은 1999년 군 가산점 제도가 위헌으로 결론난 이후 지속돼왔다. 그동안 헌법재판소는 남성만 군 복무 의무를 규정하는 현행법이 합헌이라는 판결을 세 번이나 내렸지만 정치권에선 적극적인 법 개정 등이 적극적으로 논의되지 않았다.

한편 부승찬 국방부 대변인은 지난 20일 정례브리핑에서 여성징병제 등 병역제도 개편과 관련해 "국방부가 어떤 입장을 명확히 표현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며 "아직 거쳐야 할 일이 너무 많다. 모든 고려 요소들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결정할 일"이라고 선을 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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