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윤현성 기자
  • 입력 2021.05.08 16:00

"부모 아니라 모부"…'수사 요구' 청와대 국민청원 하루 만에 20만명 이상 동의

'따돌림' 관련 이미지. (사진제공=픽사베이)

[뉴스웍스=윤현성 기자] 사상 교육은 과거 냉전 시대에나 이뤄졌을 법한 단어이다. 현시대와는 다소 동떨어져 있다. 하지만 최근 수년에 걸쳐 우리나라 교육 현장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의도적·조직적인 사상 주입이 이뤄졌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지난 5일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조직적으로 학생들을 세뇌하려 하고 있는 사건에 대해 수사, 처벌, 신상공개를 청원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이 게시됐다. 해당 청원은 관리자가 검토 중에 있어 검색 시 공개가 되지 않음에도 청원 하루 만에 청와대 공식 답변 기준인 20만명을 훌쩍 넘어섰다.

해당 청원인은 "인터넷을 통해 교사 집단 또는 그보다 더 큰 단체로 추정되는 단체가 은밀하게 자신들의 정치적인 사상(페미니즘)을 학생들에게 주입하고자 최소 4년 이상을 암약하고 있었다는 정보를 확인했다"며 "이들은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마음이 쉽게 흔들릴 만한 어려운 처지에 처한 학생들에게 접근하여 세뇌하려 하고 자신들의 사상 주입이 잘 통하지 않는 학생들에게는 교사가 해당 학생을 따돌림을 당하게 유도하는 등 교육자로서 해서는 안 될 끔찍한 행동까지 서슴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학생들에 대한 조직적 사상 교육 의혹을 제기한 청와대 국민청원. (사진=청와대 홈페이지 캡처)

◆"교사 장점은 아이들 심리 이용·생각 바꾸는 것"…조직적 움직임 있었나

청원인에 따르면 해당 단체가 운영했던 것으로 보이는 웹사이트는 접근이 불가한 상태지만, 게시글 일부가 '아카이브' 형태로 공개되어 있다.

공개된 게시글을 살펴보면 해당 웹사이트는 최소 지난 2017년부터 올해까지 사용됐던 것으로 보인다. 논란이 대상이 되는 단체는 다양한 '최상위권의 직업'을 비롯한 직군들이 가입되어 있고, 특히 '전문직'으로 분류된 교사는 회원 수가 300명이 넘었다고 밝혔다.

교사직과 관련해서는 "교사는 청소년기 이전의 아이들의 심리를 이용하여 그들의 생각을 바꾸고, 때로는 아이들 간의 정치에도 개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가장 큰 문제가 된 내용은 본인들이 원하는 대로 교육을 따르지 않는 학생을 대상으로 '따돌림' 등을 유도하라는 권고 사항이다.

'페미니즘 사상 교육' 의혹의 발단이 된 웹사이트 게시물. (사진='archive.is' 캡처)

지난 2018년 9월 올라온 게시글을 보면 "교육을 하다 보면, 특히 가정에서의 성인지 교육이 잘못된 학생군에서 교육 시에 학급의 분위기를 흐리는 경향이 있다"며 "제어가 되지 않는 학생일 경우 불가피하게 교사가 간접적으로 학생집단에서 자연스럽게 따돌림당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여 심리적으로 위축시킴으로써 교육환경, 분위기를 흐리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해당 게시글 작성자 또한 문제 소지를 의식한 듯 "거듭 강조드리지만 공유받으신 자료는 외부 유출에 절대 주의해주시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러한 내용 외에도 "습득력은 빠르나 다소 어려운 글은 힘들수 있는 6~7세 미취학 아동과 저학년은 글보다 시각적 자료를 꾸준히 반복적으로 보여주어야 한다"며 "학습자의 성별에 따라 영상 속의 내용(시위영상, 집회영상)을 자연스럽게 흉내 내거나 따라하도록하여 놀이로 생각할 수 있게끔 유도하면 된다"는 등의 내용이 담긴 게시글도 담겨 있었다.

'페미니즘 사상 교육' 의혹의 발단이 된 웹사이트 게시물. (사진='archive.is' 캡처)

이에 대해 청원인은 "위 내용이 사실이라면 최소 4년간 수많은 학생들에게 조직적으로 은밀히 자신들의 사상을 세뇌하려 한 사건"이라며 "부디 철저히 수사하여 사건의 진위 여부, 만약 참이라면 그 전말을 밝히고 관계자들을 강력히 처벌해달라"고 촉구했다.

◆교사의 사상·편견 전파, '교육기본법' 위반…따돌림 유도는 아동학대 처벌도 가능

논란이 된 조직이 '페미니즘 사상'을 학생들에게 세뇌시키려 했다는 의혹은 게시글 내에 포함된 일부 표현들로 인해 불거진 것으로 보인다.

공개된 게시글을 살펴보면 '교육'과 관련해 성인지, 젠더 등이 강조되고 있고 특히 학부모 등을 언급할 때에는 항상 '부모'가 아닌 '모부'로 지칭되어 있다. '모부'란 일부 극성 페미니스트 조직에서 아버지를 뜻하는 '부'(父)가 앞에 오는 것은 성차별적이라고 주장하며 '어미 모(母)'를 앞에 두고 사용하는 단어다.

또 교육 장소 대여료, 자료 파기 비용, 퀵서비스 이용 비용 등 각종 경비를 '본부'에서 전액 부담하겠다는 내용은 해당 조직을 지원하는 '뒷배'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낳고 있다.

실제로 해당 게시글 내용이 사실이라면 이는 '교육기본법' 제6조(교육의 중립성) 위반에 해당한다. 해당 법 조항은 '교육은 교육 본래의 목적에 따라 그 기능을 다하도록 운영되어야 하며, 정치적·파당적 또는 개인적 편견을 전파하기 위한 방편으로 이용되어서는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아울러 '따돌림당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라는 내용의 경우에는 친구 등과 비교하거나 차별·편애하는 행위, 왕따시키는 행위 등 '정서적 학대'에 해당해 '아동복지법'상 처벌도 가능하다.

◆현직 교사 "양성평등교육, 애초에 교육과정 포함…문제 커지면 개선 필요할 것"

이번 논란에 대해 일선 교사들은 우려를 표하면서도 다소 조심스러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초등학교에서 담임직을 맡고 있는 이모 교사는 이번 '페미니즘 세뇌' 의혹과 관련해 "교사들 사이에서 특별한 분위기는 없다. '쇄신하자', '고치자'라는 것은 전혀 없지만 일단 본인의 수업을 돌아보는 정도의 시도는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애초에 양성평등교육이 교육과정에 포함되어있고, 대부분의 교사가 교육과정대로 수업을 운영한다"며 "교육과정은 수업과 평가로 이어지는데, 평가에는 학생과 학부모의 수업 전반에 대한 평가도 포함되어 있어 수업에서 편향적이거나 이상한 발언을 하면 곧바로 학생과 학부모의 피드백으로 돌아온다"고 강조했다.

이 교사는 "소수의 이상한 교사가 잘못된 교육을 한 것에 대해 부정적이지만, 어느 집단이든 이상한 사람들은 있게 마련이라고 생각한다"며 "작년에 초1 학생들한테 속옷 세탁 숙제로 내주고 해서 파면된 교사와 비슷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냥 말도 안 되고 이상한 사람들인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교사 간 동료평가도 있는 만큼 '사상 주입' 같은 행동은 웬만하면 없겠지만, 페미니즘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교직원들이) 여초 집단인만큼 영향이 있을 수도 있다는 우려는 있다"며 "현재 다문화교육 관련해서는 '절대 쓰지말아야 할 용어' 같은 것이 배포되고 있다. 문제가 커진다면 페미니즘과 같은 젠더 교육에서도 이러한 것을 도입하거나 교사 연수 등을 시행해 장기적인 개선이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현행 교육 제도는 성인지 교육을 더욱 강화하는 방안으로 나아가고 있다. 권인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하고 같은 당 윤미향·진선미 의원, 심상정 정의당 의원 등 18명이 제안한 '성인지교육지원법안'은 어린이집·유치원·학교 등에서 성인지교육을 의무화하고, 초·중등교육법에 성인지 교과과정 운영 활성화 명시와 같은 내용이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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