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16.05.01 09:45
중국 선양의 박물관에 있는 만주국 내각회의 모형. 만주국은 일본의 야심에 따른 국가 건설이었으나 한편으로는 거대한 건설 붐이 일어 많은 사람들의 발길을 끌어들였던 곳이기도 하다.

이 번 회에서도 중국에 번지는 한류 이야기를 해보자. 전 회에서 다뤘던 전향적 학습 동기는 한류가 중국에서 붐을 이룰 수 있었던 개인적 차원의 중요한 이유 중 하나이다. 중국인으로 태어난 한 개인이 출세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교육을 통해서, 혹은 기업이나 투자활동을 이용한 이윤 축적을 통해서다. 그러나 둘 다 쉬운 길이 아니다.

그런 어려운 상황에 처한 중국인 개인들은 자신들의 전향적 학습을 통해 고통스러워진 감정 상태를 한류라는 뮤직비디오 혹은 드라마를 통해 보상 받을 수 있다. 이 것을 우리는 감정적 잉여라고 한다. 자신이 지불한 돈이나 시간에 비해, 훨씬 더 많은 감정적 보상을 받을 수 있다면 인간은 그 잉여의 유혹에 빠지고 만다.

청소년들이 고된 학교생활을 하면서, 피폐해진 자신들의 감정을 치유하기 위해 게임 중독에 빠져드는 것과 같은 이치다. 게임을 하면서 낭비하는 시간과 돈보다, 보상 받는 감정의 잉여가 훨씬 더 값어치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교회에 매주 일요일에 가서 기도하면 천당에 갈 수 있다고 느껴지는 감정잉여와도 같다. 그러므로 가난한 여공이나 직장여성이 교회에 가서 던지는 십일조가 아깝게 여겨지지 않는 것이다.

감정잉여는 전향적 학습을 할 경우 꼭 필요하다. 미국 유학을 위해 어려운 영어를 배우다가도 할리우드 영화를 보면서 마치 미국인이 된 듯 미국생활을 만끽하면서 마음으로 위안을 받는 유학생의 심리도 이렇다. 전향적 학습이 예상치 못했던 결과를 낳은 것이다.

여러 차례 설명한 일본 한류 팬들의 회고적 학습은 감정잉여가 그다지 필요 없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어렸을 때 느꼈던 감정잉여를 다시 복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첫 사랑에서 느꼈던 감정잉여는 40대 불륜 여성이 느끼는 감정잉여와는 전혀 다르다. 중국인의 한류 사랑이 첫 사랑이라면, 일본 한류 팬들의 한류 사랑은 40대의 회춘과 같은 것이다.

 

중국이라는 새로운 대륙의 서막

SM엔터테인먼트의 이수만 회장은 모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의 한류시장은 우리 민족을 100년간 먹여 살릴 수 있는 기회의 장소라고 했다. 그렇다. 1978년 중국이 개방했을 때, 우리는 그 의미를 잘 모르고 있었다. 북한과 매우 가까운 중국이 개방함으로써 한국은 더 위험해 질 수 있다고 걱정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중국, 일본, 러시아, 북한 모두 우리에게는 안보의 적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중국이 기회의 땅이 될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들은 드물었을 것이다. 더욱이 북한도 덩달아 기회의 땅이 될 수 있다고 과연 그 당시 몇 명이나 예상했을까?

전 중앙일보 중국 특파원이었던 유광종 기자는 1930년대의 만주가 우리 조선인들에게는 하나의 커다란 기회의 땅이라고 했다. 조선 반도의 암울한 시대상황에서 벗어나 일본인들의 파트너로서 만주를 개척하고 일확천금을 벌 수 있었던 새로운 대륙은 젊고 혈기왕성한 조선 남자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기에 충분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민족이니 친일이니 하는 이념 논쟁보다, 많은 한반도의 젊은이들이 바로 눈앞에 펼쳐진 만주 벌판을 보며 새로운 미래를 꿈꿨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도 그래서 만주로 갔고, 정일권씨나 최규하씨도 그래서 만주로 갔을 것이다.

이제 만주가 중국의 구역으로 우리 앞에 나타났다. 중국은 생산의 전초기지로서, 값싼 노동력의 수입처로서, 그리고 이제는 한국 대중문화의 수출상대국으로 부상했다. 앞으로 어떻게 중국이 변화할 것인가는 누구도 쉽게 점칠 수 없다. 다만, 중국은 이제 우리 바로 옆에서 같이 살아가야 하는 운명적인 이웃으로 다가왔다.

 

한류와 중국의 마리아쥬

중국의 새로운 야망은 미국의 할리우드를 능가하는 콘텐츠 강국으로 성장하는 것이다. 만화 영화 <뮬란>이나 <쿵푸팬터>가 할리우드에서 만들어져 공전의 대 히트를 쳤다는 것은 중국의 위정자들에게는 치욕이 아닐 수 없다. 어떻게 우리의 콘텐츠를 서양 사람들이 훔쳐서 우리에게 도리어 되팔아 먹었단 말인가?

그러나 과거에도 중국은 자신의 콘텐츠를 항상 도둑맞았던 나라다. 종이가 그랬고, 화약이 그랬고, 심지어는 로켓, 아이스크림도 그랬다. 중국이 아이스크림을 개발한 나라지만, 지금 중국의 부유층들은 하겐 다스 아이스크림을 먹는다. 부채도 그렇다. 중국에서 부채가 처음 만들어졌지만, 그 부채를 쥘부채로 개선해 다시 중국에 팔아먹은 쪽은 일본이었다.

우리도 뒤지지 않고 중국의 문화원형을 가지고 한류의 일부로 만들어 중국에 재수출하고 있다. <기황후>는 아마도 그런 유형의 한류 작품 중에 가장 큰 성공을 거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앞으로 더 많은 중국 스토리가 한류로 만들어져 다시 중국에 성공적으로 수출되리라고 본다. 또한, 중국의 제작자들이 한류 제작자들과 합작해 더 많은 중국 콘텐츠를 한류로 만들어 전 세계 시장에 등장하지 않으리라 보장할 수 없다. 1930년대의 만주 땅이 2010년대에 다시 나타난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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