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기자
  • 입력 2016.08.23 16:35

[뉴스웍스=유광종기자] 최부(崔溥)라는 선비가 있다. 조선 성종 때의 사람이다. 1454년 태어나 1504년 세상을 떴다. 그는 사실 평범한 선비, 조선의 관료였을 뻔했다. 그러나 특이한 경력 때문에 지금껏 큰 이름으로 남아 있다. 일반인에게는 낯설지만, 중국 역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그의 이름은 매우 높다. 그의 나이 34세 때 그는 제주에 도망을 친 사람들의 현황을 조사하기 위해 경차관(敬差官)의 자격으로 제주에 부임했다. 이듬해 1월 부친의 사망 소식을 들었다. 급히 배에 올라 고향인 나주로 향하다가 그는 표류하고 만다. 배에 탄 일행 42명과 함께였다. 14일을 표류해 그가 표착한 곳은 낯설고 물 설은 중국 강남의 외진 땅, 저장(浙江)의 태주(台州)라는 곳이었다. 그로부터 최부는 4개월 반에 걸친 아주 진기한 여행을 한 뒤 조선으로 돌아왔다. 그는 유명한 저작 <표해록(漂海錄)>을 남겼다. 명나라 당시 중국의 문물과 제도, 지역 풍속, 대운하의 운영 방식 등을 자세히 살펴 적은 기록이다. 이 저작 때문에 중국인들은 최부를 ‘동방의 마르코 폴로’라고 부르며 기념한다. 그를 좇아 지난달 말부터 이 달 초까지 여행을 다녀왔다. 한국인보다 중국인들이 더 그를 기린다는 점이 조금은 불편했다. 그의 초상도 중국인들이 먼저 그려냈다. 물론 상상화다. 그는 중국인에게 그토록 무엇인가 남을 만큼의 강렬한 인상을 줬던 조선의 선비다. 그의 여정에 맞춰, 그리고 남긴 기록에 따라 중국 강남 여행길, 대운하의 노선, 강북의 일부 구간 등을 살펴보기로 한다. 

멀리 보이는 특별한 모습의 산이 하나 있다. 엄지손가락을 세운 듯한 모습의 이 산 이름은 불두산(佛頭山)이다. 하도 모습이 기이해 이곳을 오가는 외국 선박들은 이 불두산을 랜드마크의 하나로 인식했다. 중국을 여행했던 많은 외국 선박의 기록에 자주 등장하는 산이다. 식량이 바닥나고, 물도 다 떨어져 오줌을 받아 마셔가며 표류했던 최부 일행의 선박도 이 산을 지났을 법하다. 기록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이 불두산 해역을 거쳐 그는 더 아래로 내려갔다. 그 전에 해적으로 보이는 선박 두 척이 다가와 최부 일행의 물건을 모두 빼앗고, 노와 돛대 등을 모두 부러뜨려 바다에 던졌다. 기진맥진한 최부와 일행은 그저 배 한 척에 몸을 맡기고 계속 물결을 따라 표류했다. 

온갖 고생 끝에 최부가 표착한 지점인 지금 중국 저장성 싼먼(三門)의 우두외양(牛頭外洋) 앞바다 모습이다. 지금은 한가롭지만, 최부가 닿을 당시의 사정은 험악했다. 한가로운 어촌에 불과했으나 당시의 중국인들은 바다에 나타난 낯선 이를 극도로 경계했다. 일본의 왜구가 자주 나타나 사람을 죽이고 노략질을 일삼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최부 일행 43명 모두 처음에는 왜구를 의심받았다. 그들을 죽이려고까지 했다. 그 와중에서도 최부는 꼿꼿함을 잃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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