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기자
  • 입력 2016.09.01 16:36
보라색 엉겅퀴의 모습이다. 중국의 수도 베이징은 이 엉겅퀴와 깊은 연관이 있는 곳이다. 엉겅퀴가 주는 엄격함, 까다로움 등의 이미지가 황제의 거주지였던 베이징과 잘 맞아 떨어진다.

누르는 자와 눌리는 자의 이분법적인 구조는 여기서 걷어치우자. 억압의 행위자와 그 피해자라는 단순한 구도에서 베이징을 본다면 우리는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다. 그보다는 방대한 중국의 국토와 그 수많은 인구를 끌고 가는 황제의 통치행위, 그에 딸려 있는 많은 방략(方略)을 읽는 게 우리에게는 더 필요한 일이다.

이곳은 엉겅퀴가 잘 자랐던 곳인가 보다. 베이징의 옛 이름은 꽤 많다. 그러나 처음의 지명은 어쩐지 이 엉겅퀴를 뜻하는 ‘薊(계)’라는 글자로 시작한다. 지금의 베이징 근처에도 이 글자를 사용한 현(縣)이 있지만, 어쨌든 역사 속에서 등장하는 베이징의 첫 이름은 이 글자를 썼다. 그만큼 베이징의 토양에서 잘 자랐던 식생(植生)이었으니 엉겅퀴는 이곳을 대표하는 꽃으로 봐도 좋을 것이다.

그 엉겅퀴의 꽃말은 ‘엄격함’이다. 꽃에 말을 붙이는 관행이야 서양의 발명이겠으나, 어쨌거나 가시가 달린 엉겅퀴는 그런 ‘엄격’의 이미지와 잘 어울린다고 할 수 있다. 아울러 엉겅퀴의 엄격함과 황제의 기운 역시 서로 어울리는 조합이다. 원래 그 엉겅퀴가 제철을 맞아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점을 보고 왕조의 운영자들이 이곳을 황제의 터전으로 잡았으리라고는 보지 않는다.

지정학적인 필요에 의해서 왕조의 수도로 선택을 받은 것이겠으나, 아무튼 이 베이징의 원래 이름은 엉겅퀴와 관련이 있었고, 아울러 그 꽃은 제법 삼엄하다 싶은 이미지를 우리에게 준다는 점도 사실이다. 그렇게 베이징은 원래부터 황제의 엄혹한 통치와 맞아 떨어지는 지역이었던 모양이다.

이 베이징은 공중에서 보면 뚜렷한 축선(軸線)을 가운데 안고 있다. 천안문 광장의 남쪽에는 옛 베이징 성채의 남문(南門)이 있고, 거의 정북(正北) 방향을 따라 마오쩌둥 시신이 놓인 기념관, 광장 한 복판의 인민영웅기념비, 국기 게양대, 마오쩌둥 대형 초상이 걸린 천안문, 오문(午門), 황제의 집무 장소인 태화전(太和殿), 황궁의 북문인 신무문(神武門), 왕조 시절 수도의 신민(臣民)들에게 시각을 알려주던 종루(鐘樓)와 고루(鼓樓)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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