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기자
  • 입력 2016.09.30 14:49
베이징은 원(元) 명(明) 청(淸)의 왕조 수도였던 까닭에 지상의 최고 권력자였던 황제의 기운이 가장 높은 곳이다. 사진은 청나라 건륭제(乾隆帝) 초상이다.

관개운집(冠蓋雲集)이라는 중국 성어가 있다. 관(冠)은 벼슬아치들이 머리에 쓰는 사모(紗帽)를 의미한다. 개(蓋)는 벼슬아치들이 즐겨 탔던 수레 위에 올린 양산 또는 우산과 같은 장치다. 맑은 날에는 햇빛을 가리고, 비가 올 때에는 비를 막기 위해 수레 위에 올린 장치다. 사모관대(紗帽冠帶)의 벼슬아치, 그리고 그들이 타고 다니는 수레의 우산과 같은 장치들이 사나운 비 내리기 전의 구름처럼 새카맣게 몰려있다는(雲集) 상황을 형용한 말이다.

베이징은 그 ‘관개운집’의 전형이다. 우리말에도 ‘서울 가서 벼슬 자랑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베이징은 더 그랬던 모양이다. 수도에 거주하며 공직에 다니는 벼슬아치, 즉 경관(京官)이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았을 게 분명하다. 아울러 황제 밑의 왕후장상(王侯將相)이 즐비하고, 총리를 비롯한 장관급의 벼슬아치들이 줄을 이었으니 함부로 제 관직의 위계를 자랑하다가는 큰 코 다치기 십상이었다는 얘기다.

이 글이 중국 각 지역의 인문적 특성과 그 고장이 배출한 인물을 소개하는 마당이지만, 베이징이 낳은 인물을 꼽자니 매우 막연해진다. 앞에서도 잠시 언급을 했지만, 명대와 청나라 때의 황제들이 사실은 다 베이징 출생이다. 몽골이 통치한 원나라 때부터 많은 황제들이 이곳에서 태어나 중국을 다스렸다.

아울러 비록 이곳을 출생지로 두지는 않았지만, 명대와 청나라 때의 수많은 수도(首都) 벼슬아치인 경관들도 베이징의 인문적 특성을 거론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들이다. 너무 많아서 딱히 몇 명을 특정해 거론하기가 힘든 곳이 바로 베이징이다. 그럼에도 베이징이 낳은 인물을 이야기하려면 이들을 거론해야 하는데, 결국은 베이징에 뚜렷하게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축선과 그 의미 등으로 베이징의 인문을 소개하고 말았다.

베이징은 그 자체보다, 앞 회에서 소개한 상하이와 비견할 때 특징이 두드러진다. 중국에서 흔히 남북의 문화적 차이를 이야기할 때 즐겨 등장하는 대표선수가 바로 베이징과 상하이다. 베이징은 북녘의 인문을 대표한다고 해서 京派(경파)라고 적고, 상하이는 남녘의 인문 전체를 대표한다고 해서 海派(해파)라고 적는다.

이 경파와 해파의 구분은 사실 문학에서 비롯했다. 1930년대 중국 문단의 유파(流派)적 논쟁에서 시작해 한 때 중국의 문학 독자들에게 많이 회자됐던 용어다. 그러나 나중에는 인문적 차이에 관한 논설들이 쏟아지면서 각자 남북을 대표하는 상징으로 떠올랐던 용어다.

상하이는 앞에서 소개한대로 전통 주택인 석고문(石庫門)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혼융의 개념을 문화 바탕에 깔고 있다. 베이징은 그에 비해 전통 주택 사합원이 말해 주듯이 질서와 위계의 관념이 매우 두드러진다. 아울러 남들과 섞이고 뭉치는 혼융의 개념보다는 사방을 가리는 벽에 갇혀 내밀함과 은밀함을 추구하는 쪽에 가깝다.

전통주택인 사합원이 남북의 축선에 따라 위계의 관념을 발전시켰듯이, 베이징의 일반인들도 그 위계에 따른 처신이 매우 발달해 있다. 아울러 지고지존(至高至尊)의 황제를 정점으로 해서 그 밑에 수를 헤아리기조차 힘든 수도 벼슬아치들이 살고 있었다. 황제 아래 사는 신민(臣民)이라는 자부심이 매우 강했고, 매일 부딪치는 사람들이 동료 벼슬아치들이다. 따라서 정치적 또는 사회적 서열에 민감하며, 관본(官本)의 사고 취향도 뚜렷하다.

사람의 성향으로는 대개 충후(忠厚)함을 꼽는다. 상하이 사람들이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취향이 강한 것과는 달리, 변화에 둔감하며 행동 등에서 명분 찾기를 즐긴다. 좀 더 정치적인 계산을 하는 까닭에 행동이 그렇게 재빠르지 않은 편이라는 평가도 있다. 혼자 즐기기를 좋아하며, 한적한 공원에서 홀로 산보를 하는 취향도 강하다고 한다. 세련된 정치의식으로 남과의 말싸움을 즐기는 편이라는 말도 듣는다.

그런 인상에 관한 평은 아주 많다. 2000만 명이 넘는 베이징 인구의 문화적 바탕을 그렇게 인상에 관한 소개로 다 정리할 수는 없다. 그보다는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 과거에도, 그리고 지금에도 여전히 살아 있는 그 축선을 연구하는 게 더 마땅하다는 생각이 든다. 세계를 향하는 중국의 전략적 바탕은 베이징에서 나온다. 그럼에도 중국 전역을 통치하는 공산당은 워낙 은밀해 그 속내를 잡아내기 참 힘들다. 중국을 통치하는 그룹의 구체적인 사고를 읽어내기가 쉽지 않은 이유다.

그러나 과거의 중국 통치자, 그리고 현재의 중국 통치자들이 그 사고의 여러 요소를 바깥으로 표출해 만들어 낸 축선에서는 중국을 크게 읽는 일이 가능할 것이다. 이 번 글에서는 그런 베이징의 축선이 지니는 인문적 요소를 먼저 소개했다. 이제 그 베이징이 대표하는 중국 북부지역의 문화와 인물들을 찾아 다시 길을 나서보자.

<중국이 두렵지 않은가>, 유광종 저, 도서출판 책밭, 2014년 중에서-

저작권자 © 뉴스웍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