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기자
  • 입력 2016.10.17 14:22
잠실 종합운동장 역 인근에서 바라본 잠실 아파트 단지. 무수했던 뽕나무는 이제 다 없어지고 콘크리트와 철근으로 지은 아파트 건물이 그곳을 대신 차지했다.

이 말이 궁형을 가리키는 단어로서 사람들의 입에 본격 오르는 데 기여한 사람은 바로 ‘중국 역사의 아버지’라고 일컬어지는 사마천司馬遷이다. 그는 아주 유명한 인물이다. 중국의 역사 토대를 세운 사람에 해당한다. 그는 저서 <사기史記>를 통해서 중국 역사의 계보系譜를 세웠다. 황제黃帝로부터 자신이 섬겼던 황제 한나라 무제武帝까지 이어지는 족보를 만들어 중국역사의 계통을 확립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불행하게도 황제인 무제에게 괘씸죄를 얻어 생식기가 잘리는 궁형을 당한다. 그가 스스로 남긴 한 문장에서 “나는 (강제로) 잠실에 들어가 앉았다”는 표현을 사용한다. 궁형을 당했다는 고백이다. 왜 궁형과 잠실은 동의어에 해당할까. 궁형을 당한 사람은 생식기가 잘려나간 까닭에 세균 등에 의한 감염에 매우 민감하다고 한다.

따라서 궁형을 당한 죄인이기는 하지만 목숨만은 살리기 위해 세균 등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밀폐형 잠실에 들어갈 수 있도록 궁형 집행자들이 배려했다는 설명이다. 그로부터 일정 기간을 지내면서 몸을 추스르고 나서야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 잠실이라는 밀폐형 건물에서 사마천은 몸만 추슬렀던 것은 아닐 테다. 그의 찬란한 저작 <사기>를 어떻게 집필할 것이냐에 관한 구상을 그곳 잠실에서 마쳤을지 모른다.

그는 이후에 피와 땀을 쏟는 맹렬함과 치밀함으로 역사를 추적하기 시작해 아주 이채로우며 빼어난 문장으로 <사기>를 엮는 데 몰입했다. 그가 이룬 성과는 찬연함 그 자체다. 이후 등장한 중국의 모든 역사가는 그가 세운 역사의 토대 위에 그대로 섰고, 그가 고안해 낸 중국의 ‘족보’는 중원의 사람들과 주변의 사람들을 뒤섞는 대일통大一統의 틀로 작용했다.

어쨌거나 사마천은 황제에게 괘씸죄를 얻어 궁형을 당했고, 그가 몸을 가까스로 추스른 곳이 누에를 키우는 잠실이었다. 따라서 중국에서 ‘잠실’이라는 단어는 누에를 키우는 양잠의 장소라는 새김과 함께 남성의 생식기를 자르는 궁형, 나아가 궁형을 당한 사람들이 몸을 추스르는 곳이라는 뜻을 얻었다.

이제는 우리 곁에서 제법 멀어진 일이 양잠이다. 그래서 이에 관한 여러 용어들이 우리에게는 낯설지만, 양잠이 성행할 수밖에 없었던 과거에는 그와 관련이 있는 용어가 아주 많았다. 일일이 다 익힐 필요는 없지만 대표적인 몇 용어는 알아둘 필요가 있겠다.

누에는 우선 누에나방의 유충幼蟲이다. 한자로 표기할 때는 蠶(잠), 天蟲(천충), 馬頭娘(마두랑)이라고도 한다. 天蟲(천충)과 馬頭娘(마두랑)은 신화와 전설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그 내용을 설명하는 일은 다음으로 미루자.

알에서 막 깨어난 유충을 蟻子(의자)라고 적는데, 개미(蟻)처럼 새카맣고 작은 모습이어서 붙은 이름이다. 번데기는 흔히 蛹(용)으로 적는다. 한자보다는 순우리말 ‘번데기’가 훨씬 더 친근하다. 먹는 게 변변찮았던 시절, 3000만 한국인들의 단백질 공급원이었던 그 번데기 말이다. 누에가 커서 성체를 이뤘을 때가 나방을 가리키는 蛾(아), 실을 뽑는 누에의 고치를 繭(견)이라고 한다.

특히 繭(견)이라는 글자는 벌레를 가리키는 虫(훼)와 실을 가리키는 糸(사 또는 멱)가 어딘가에 갇혀 있는 모습을 표현했다. 바로 ‘고치’가 아닐 수 없다. 누에가 뽕잎을 먹고 배출한 똥은 蠶砂(잠사)라고 해서 가축의 사료 등으로 쓰는 유용한 부산물이다. 비단을 짜는 명주실을 뽑고, 단백질을 제공하는 번데기로 사람에게 보시까지 하며, 그 똥으로는 유용한 재료로까지 작용하니 과거에는 누에치기의 양잠이 보통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었을 게다.

그런 누에의 이름은 제법 많다. 우선 잠누에라고 하는 면잠眠蠶이다. 뽕잎을 먹지 않고 자리에서 가만히 있는 누에가 마치 잠을 자는 것과 같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잠에서 깬 뒤 고치를 짓고, 번데기의 과정을 거친 뒤 다시 성체인 나방을 이룬다. 고치를 지은 누에를 견잠繭蠶, 집에서 키우는 누에를 가잠家蠶, 세 번 잠자는 누에를 삼면잠三眠蠶, 네 번 잠자는 누에를 사면잠四眠蠶, 다섯 번 잠자는 것은 오면잠五眠蠶이라고 불렀다.

누에가 자는 횟수를 나눠 부르는 이유는 그 품종이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의 경우에서는 네 번 잠을 자는 四眠蠶(사면잠)이 ‘보급형’이었다고 한다. 집에서 키우는 누에 외에 들이나 산에서 자라는 것을 野蠶(야잠)이라고 하는데, 실의 품질이 꽤 좋다는 설명이 있다. 山蠶(산잠)으로도 부른다. 누에를 키우고, 실을 뽑으며, 누에 품종까지 개량하는 등 종합적인 양잠의 사업을 蠶絲業(잠사업)이라고 했다.

사람을 위해 죽도록 실을 엮었던 누에의 희생이 배어 있는 곳이 잠실이겠다. 그 보잘 것 없는 곤충의 공이 쌓고 또 쌓여 사람들을 따뜻하게 감싸주는 일로 이어졌으니 고맙기 그지없을 따름이다. 번데기로는 사람들 영양까지 채워주고, 배설물로도 인류의 생활을 윤택케 했으니 다시 고맙고 고마울 뿐이다.

우리의 삶은 반드시 누군가의 수고로움에 닿고 있다. 벌레든, 짐승이든, 아니면 사람이든…. 잊지 않고 사는 게 중요하다. 감사하는 마음 말이다. 세상은 그렇게 숱한 인연因緣으로 얽힌다. 따라서 나 혼자만 사는 세상이 아니다. 잠실을 지날 때 그런 누에를 한 번 떠올리자. 한 마리가 1500m의 실을 뽑는다는 누에고치, 그처럼 우리는 많은 인연의 실타래 속에 산다는 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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