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
  • 입력 2016.11.08 17:01
창덕궁 인정전 모습이다. 바른 변(邊)이 있어야 건물이 잘 올라간다. 그 '변'을 가리키는 건축 용어 중 하나가 廉(렴)이다. 청렴(淸廉)이라는 낱말은 여기서 비롯했다.

그 선은 반듯해야 마땅하다. 조금이라도 휘어짐이 생긴다면 건물 전체의 모습이 일그러지게 마련이다. 따라서 건물의 정각正角을 잡아주는 기준에 해당하는 부분 중 하나가 바로 이 廉(렴)이다. 그 변이 모아지는 ‘구석’ ‘모퉁이’를 한자로는 隅(우)라고 적는다. 이 隅(우) 또한 곧아야 한다. 변이 모여 이뤄지는 구석이니 그 각이 정확하지 않으면 건물은 틀어진다.

그래서 생겨난 단어가 廉隅(염우)다. 곧고 올바른 행실, 절조節操가 분명한 행동거지, 나아가 염치廉恥라는 뜻까지 얻었다. 이로써 우리의 의문은 조금 풀린다. 한자 廉(렴)은 당초의 건축 용어에서 옳고 바름, 곧음, 나아가 청렴의 뜻을 얻었다고 볼 수 있는 셈이다.

청렴이라는 품성의 중요성은 달리 부연할 필요가 없다. 높은 공직에 올라 있거나 올랐던 사람이 곧고 바름을 유지함이 廉(렴), 제 직위의 후광을 업고서 남의 재물을 엿보거나 받는다면 貪(탐)이다. 청렴淸廉에 이어 그런 관리를 뜻하는 염관廉官과 염리廉吏, 청렴하면서도 뚜렷이 살피는 청렴명찰淸廉明察의 염명廉明이라는 단어가 그래서 이어진다.

양속이라는 동한東漢 때 관리가 누군가 선물로 들고 온 생선을 건드리지도 않은 채 마루 앞에 걸어두고서 다른 누군가 또 선물을 들고 오면 그를 말없이 보여줬다는 양속현어羊續懸魚 또는 현어懸魚라는 성어가 있다. 또 뇌물이 성행했던 명明나라 조정에서 “상관에게 바칠 뇌물은 없고 두 소매에는 깨끗한 바람 뿐”이라고 했던 우겸于謙이라는 인물의 양수청풍兩袖淸風이라는 성어도 등장했다. 모두가 다 그런 청렴의 관리를 뜻하는 말들이다. 맹자孟子는 그런 대목에서 항상 멋진 충고를 던진다.

 

“가져도 좋고, 가지지 않아도 좋을 때, 가진다면 청렴함을 떨어뜨린다(可以取, 可以無取, 取傷廉). 줘도 좋고, 주지 않아도 좋을 때, 준다면 은혜의 깊이가 떨어진다(可以與, 可以無與, 與傷惠). 죽어도 좋고, 죽지 않아도 좋을 때, 죽는다면 용기의 진정성을 손상한다(可以死, 可以無死, 死傷勇).”

 

여운이 남는 말이다. 그 담긴 뜻은 곰곰이 살피시라. 그러나 분명한 점은 공인公人 등의 도리를 따질 때 따라야 할 ‘아주 높은 강도의 절제節制’를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정이 그러하니 우리는 이 청렴함을 품고 있는 邊(변)이라는 글자 자체를 깔 볼 수 없다. 변이 바르게 서야 건축물의 비틀어짐이 없는 셈이니 그렇다는 얘기다. 그저 가장자리와 끝의 새김일 지니고 있다는 이유로 이 글자를 우습게 볼 수가 없는 셈이다.

그럼에도 이 글자가 지니는 핵심적인 새김은 간과할 수 없다. 변경邊境이면 사회공동체가 지닌 가장 끝의 구역에 설정한 경계선을 말한다. 요즘은 변경이라는 말보다는 국가와 국가 사이를 긋는 국경國境이라는 단어가 훨씬 더 많이 쓰인다. 조선시대 관청 명칭인 비변사備邊司도 그와 같은 맥락이다. 변경(邊)에서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이나 사고에 대비(備)하는 곳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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