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원성훈 기자
  • 입력 2022.06.24 18:42

국회 정상화 논의 '급물살'…권성동, 입지 강화에 '원칙주의자' 반사이익 누릴 판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가 24일 충남 예산에 위치한 덕산리솜리조트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워크숍(2일차)에 연단에 서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민주당 홈페이지 캡처)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가 24일 충남 예산에 위치한 덕산리솜리조트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워크숍(2일차)에 연단에 서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민주당 홈페이지 캡처)

[뉴스웍스=원성훈 기자]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24일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을 국민의힘에서 맡는 데 동의한다"고 말했다. 여야 간 원 구성 협상의 최대 쟁점인 법사위원장 자리를 양보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이다.  

이에 따라 그동안 교착상태에 빠졌던 국회 정상화 논의가 급물살을 타게될 것으로 전망된다. 

박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대한민국이 닥친 경제 위기가 언제 끝날지, 충격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예상할 수 없는 초비상 상황에서 (정부·여당의) 무대책과 무능한 상황을 지켜볼 수만은 없다. 원내 1당으로서 중요한 시기라는 데 공감한다"며 "민주당은 작년 양당 원내대표 간 합의를 존중하고 이행하겠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국민의힘도 약속을 이행해 달라"며 '조건부 양보'임을 분명히 했다. 그러면서 "27일 오전까지 (국민의힘의 답변을) 기다리겠다"고 밝혔다. 박 원내대표의 이 같은 언급은 법사위의 권한 축소에 국민의힘이 동의해주는 것을 전제로 해서 법사위원장을 국민의힘에 넘기겠다는 얘기다. 

양당 원내지도부는 지난해 7월 당시 민주당이 맡고 있던 법사위원장 자리를 국민의힘에 넘기는 것에 합의했다. 하지만 민주당은 그동안 법사위의 과도한 권한을 바로잡는다는 합의 부대 조건이 이행되지 않았다는 이유와 함께 지난 3월 9일 대선에서 국민의힘이 승리함으로써 여야가 바뀌었다는 것을 명분 삼아 법사위원장 양보를 거부해 왔다. 

지난해 7월 23일 당시 윤호중 민주당  원내대표와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3개항으로 구성된  합의문에 서명했다. 핵심 합의는 2가지다. 제2항의 '21대  국회 후반기 상임위원장 배분은 교섭단체 의석 수에 따라 하되, 법제사법위원장은 국민의힘에서 맡는다'는 것과 제3항의 '국회법 제86조(체계·자구의 심사) 제3항 중 '120일'을 '60일'로 단축한다. 또한, 다음의 내용으로 하는 국회법 제86조 제5항을 신설한다. '법제사법위원회는 국회법 제86조 제1항에 따라 회부된 법률안에 대해 체계와 자구의 심사범위를 벗어나 심사해서는 아니된다'는 것이다.

체계·자구 심사란 상임위를 통과한 법안이 다른 법과 충돌하지 않는지, 문구가 적절한지 등을 따지고 보완하는 것을 말한다. 혹시 졸속으로 올라온 법안의 완성도를 높여 최소한의 '품질'을 보증한다는 취지를 갖고 있다. 이 과정에서 법사위가 특정 법안을 본회의 테이블에 올라가지 못하게 뭉갤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돼 왔다.

박 원내대표의 주장을 요약하자면 법사위원장 자리를 합의문에 의거해 국민의힘에 넘길테니 국민의힘도 제3항의 '국회법 제86조(체계·자구의 심사) 제3항 중 '120일'을 '60일'로 단축한다는 것을 지키라는 요구다. 특히, '법제사법위원회는 국회법 제86조 제1항에 따라 회부된 법률안에 대해 체계와 자구의 심사범위를 벗어나 심사해서는 아니된다'는 단서조항을 국민의힘에게 지키라는 얘기다.

바로 이 3항이 불씨로 남은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이를 법사위의 체계·자구 심사권 '폐지'로 주장하는 반면, 국민의힘에선 이를 두고 지난해 합의는 체계·자구심사권의 '폐지'가 아닌 '제한'으로 해석하며 맞서고 있기 때문이다. 

양당의 주장이 엇갈리지만 이는 양당의 합의에 따라 법률로 제정된 국회법 86조 3항을 보면 사리분별이 명확해진다. 국회법 86조 3항에선 심사 기간을 60일로 하되, 이의 제기 시 상임위 재적 위원 5분의 3 이상의 찬성을 거쳐 본회의에 부의하도록 하는 내용이 삽입됐다. 당연히 같은 조 5항에는 법사위는 '체계·자구 심사 범위를 넘어서면 안 된다'는 내용도 적시됐다. 즉 당시 여야 합의는 체계·자구 심사권을 폐지하자는 것이 아니라, 체계·자구 심사를 넘는 권한을 '제한하자는 취지'로 읽혀진다. 

향후 박 원내대표가 체계·자구심사권의 '폐지' 이행을 들고 나올 경우 국민의힘은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고 국회 원 구성은 한없이 연기될 수 있다. 이리 되면 박 원내대표가 법사위원장을 국민의힘으로 넘기겠다는 언급 자체가 부메랑으로 다가올 수 있다. 박 원내대표가 제시한 '부대조건'은 '제 1원칙'에 가려지거나 묻혀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정치권은 현실적으로 법사위원장 자리를 둘러싼 여야의 힘겨루기는 '국민의힘의 승리, 더불어민주당의 패배'로 결론이 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그동안 이 문제로 버텨왔던 박 원내대표의 입지가 당내에서 축소될 수밖에 없을 것이고 우상호 민주당 비대위원장 역시 정치적 타격은 불가피할 것으로 관측된다.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연이어 패배했던 민주당 지도부로서 아무리 조건을 붙였다고는 하지만 일단 입밖으로 법사위원장 자리를 국민의힘에게 넘긴다고 약속한 만큼 이를 이행하지 않는다면 후폭풍에 휩싸일 수 있다. 더구나 지난 23~24일 간 워크숍을 통해 당을 새롭게 리모델링 하겠다고 결의하고 온 마당에 당 지도부가 공언한 것을 다시 뒤집는다면 당 지지율이 현재보다도 더 내리막길을 걷게될 것이 자명하다. 

반면에, '법사위원장 자리'를 회수해 온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의 입지는 한층 강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권 원내대표는 지난해 양당 간의 합의문대로 하자고 줄곧 주장해왔다. 원칙대로 대응해 승리를 거뒀다는 평가를 받게될 전망이다. 이에 더해 양당 간 합의문을 깨지 않고 끝까지 지켜낸 '원칙주의자'라는 반사이익까지 얻을 판이다.

그동안 대여 강경 자세를 고수하던 박 원내대표의 태도가 이처럼 극적으로 변화된 요인은 무엇일까. 

박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소통관 기자회견 직후, 기자들이 '민주당은 국회의장 단독 선출까지 고려한 것으로 아는데 입장을 다소 바꾼 이유가 뭐냐'는 질문에 "지금은 무엇보다 인사청문회와 관련해 국회가 반드시 해야 할 과정이 있고, 민생위기와 관련해 시급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그런 점에서 조속히 국회를 정상화하는 게 원내 1당의 책임이라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국민의힘이 지금까지도 원 구성 협상을 하지 않는 이유는 결국 차기 총선까지 민주당의 발목잡기 프레임을 짜려는 것"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은 먼저 약속을 지키는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이것이 정치권이 해야할 도리"라고 강조했다.

박 원내대표가 민생위기 상황에서 민주당이 국회정상화에 앞장서는 모습을 국민들에게 보여주는 편이 정치적으로 유리하다고 본 것으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아울러, 국회 원 구성 협상을 더 이상 지연할 경우 집권여당에 대한 발목잡기로 인식될 것을 우려한 행보로 보인다.

하지만, 정치권에선 이런 표면적인 이유보다는 좀더 현실적인 이유 때문일 것으로 보는 분위기다. 즉, 민주당이 국민의힘에 비해 상대적으로 국회 의석수에서 압도적이므로 이제는 그만 국회 원 구성을 마치고 원내로 국민의힘을 끌어들여서 싸우는 게 유리하다는 지적이 많았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이와 함께, 민주당이 여당이 아닌 야당인 상황에서는 상대적으로 국민의힘에 비해 정치 측면에서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다는 현실론도 작용했을 것으로 관측된다. 국회 원 구성이 안되면 윤석열 대통령은 이것을 명분으로 인사청문회를 거치지 않고 장관을 임명할 수도 있고 국민의힘도 별로 답답할 것이 없다. 반면, 거의 모든 정치적 행위가 국회를 통해 이뤄질 수밖에 없는 구조를 안고있는 민주당으로서는 결국 법사위원장을 국민의힘에 내어주고 원내에서 싸우겠다는 결단을 할 수밖에 없었을 것으로 관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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