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널속한국경제]②ICT·문화등 미래성장산업 '표류'
[뉴스웍스=이재아기자] 세계 경제가 4차 산업혁명 시대로 급속히 진입하면서 하드웨어격인 정보통신기술(ICT)과 소프트웨어격인 문화산업이 어느때보다 중요해지고 있다. 미래 먹거리를 창출하기 위한 정부의 산업 육성책과 기업의 경영계획이 발빠르게 추진돼야 할 시점이다.
박근혜 정부도 이같은 세계적인 패러다임 변화에 맞춰 창조경제를 핵심 정책기조로 내세웠다. 그러나 ‘창조경제=국정농단’이라는 부정적인 인식이 확산되면서 창조경제와 문화산업 관련 예산이 최순실 예산으로 분류돼 일제 삭감돼 사업 추진 동력을 잃게 됐다.
전문가들은 “ICT산업이나 문화산업은 미래 먹거리 산업으로 시장 선점이 중요하지만 우리나라의 미래성장사업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연속성이 흔들려왔다”며 “미래성장 사업은 정치적인 이해관계에 벗어나 추진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문화융성산업 예산 대폭 삭감...좌초 위기
김대중정부의 IT벤처산업, 노무현정부의 미래동력산업, 이명박정부의 녹색산업 등 대부분의 정부는 신산업육성에 나섰다. 박근혜정부도 문화융성산업을 전면에 내세웠으나 박 대통령 탄핵과 함께 문화융성산업까지 탄핵될 운명에 처했다.
박근혜정부가 내세운 핵심 국정과제 중 하나가 문화창조융합벨트의 건설이었다. 부가가치가 큰 문화콘텐츠 산업이 스스로 증식하는 생태계를 조성해 문화산업을 새로운 미래성장의 동력이자 일자리 창출의 발판으로 삼는다는 것이 골자였다.
문화창조융합센터, 문화창조벤처단지, 문화창조아카데미, K-컬처밸리, K-팝 아레나, K-익스피리언스 등 6개 시설을 조성하는 것으로 구체화됐고 당초 2019년까지 총 7000억원대의 예산이 책정됐다.
그러나 이 역시 최순실 예산으로 치부되면서 2017년도 예산안에서 관련 예산이 대폭 삭감됐다.
내년도 문화창조융합벨트 예산은 당초의 1278억원 중 780억원이 잘려나가 498억원으로 반도 남지 않게 됐다. 문화융성 정책의 몸통 격인 문화창조융합벨트 산업에 브레이크가 걸리면서 사실상 문화산업 전체가 좌초 위기에 처한 것이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한류’로 대표되는 한류문화융성 산업도 한반도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 결정 이후 중국이 ‘한한령’을 내리며 보복조치를 현실화해 큰 타격을 입고 있어 문화산업 전반에 먹구름이 낀 상황이다.
◆국정농단 파문 불똥 튄 VR산업
국정 농단 파문의 불똥은 미래 먹거리로 가장 주목받아온 가상현실(VR) 콘텐츠산업으로 튀었다.
이달초 가결된 정부 예산안에 따르면 문화체육관광부는 국정농단 파문의 핵심 인물인 최순실·차은택 씨의 개입 의혹을 받은 '문제사업' 예산 21개 항목 3057억원 중 17개 항목 1637억원(53.5%)이 최종 삭감됐다.
VR 콘텐츠 산업은 세계적으로 경쟁이 치열해지고 날로 시장 규모가 커지고 있기에 이 분야에 대한 지원과 육성이 절실한 상황이다. 그러나 문체부가 애초 짠 전체 예산안 192억원 중 42.2%에 해당하는 81억원이 삭감돼 문체부는 해당 사업 추진에 큰 차질을 빚게 됐다.
더욱이 국내 VR 업계의 선두주자로 떠오른 업체 대표들이 잇달아 최순실과 연루됐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VR 업계 전체에 대한 투자가 위축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ICT산업 장기 정책 줄줄이 차질 우려
산업에 제동이 걸린 것은 정보통신기술(ICT) 융합산업도 마찬가지다.
FANG(페이스북, 아마존, 넷플릭스, 구글)과 BAT(바이두, 알리바바, 텐센트)로 요약되는 글로벌 ICT 기업을 비롯해 우버, 화웨이 등 해외 신흥강자들은 하루가 멀다하고 적극적인 투자계획을 발표하고 인수합병(M&A)을 통해 몸집을 불리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ICT 분야 수출은 최근 1년 내내 전년 동기 대비 감소세가 이어지며 경고음이 울리고 있다.
컨트롤타워 격인 미래창조과학부 등은 '최순실 블랙홀'에 휩싸여 스타트업(창업초기기업) 육성과 관련한 정책 중심을 잡지 못하고 있는 처지다.
또 스타트업 정책의 핵심이었던 창조경제혁신센터는 국비 예산의 경우 정부안이 대부분 수용됐지만 각 지방자치단체나 전담 대기업들이 센터 운영에 주춤하고 있다. 결국 국내 ICT산업이 미국, 중국의 대형기업을 쫓아가기에도 한시가 급한 판국에 정치 이슈까지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정권이 바뀌면 사라질 부처 1순위로 미래부가 거론되면서 인공지능(AI)과 ICBM(사물인터넷, 클라우드컴퓨팅, 빅데이터, 모바일) 등 장기 사업정책이 줄줄이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인터넷전문은행 출범도 엇박자
ICT 산업 소관 상임위인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를 비롯해 인터넷전문은행 이슈를 다루는 정무위원회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여야 간 인터넷전문은행 출범의 필요성에 대해 합의를 도출했지만 탄핵 정국과 맞물린 바람에 정무위는 더이상 인터넷전문은행 관련 법 개정 논의를 이어가지 못하고 있다.이 때문에 어쩌면 국내 최초 인터넷전문은행인 'K뱅크'가 KT가 아닌 은행권 주도로 출범하게 될 상황에 놓였다.
이에 ICT 산업 한 전문가는 "ICT 산업의 하루는 다른 산업의 1년과 맞먹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변화속도가 빠르고 적절한 타이밍이 중요한 산업"이라며 "그런데 국내 ICT 산업은 '최순실 파문'에 발목이 잡혀 앞이 깜깜한 상황"이라고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