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 뜯어고치자] ㉝학생 인권 존중

[4부 새로운 교육-1등 양산아닌 '낙오자'구제에 초점 맞춰야]

2017-03-10     이상호기자

[뉴스웍스=이상호기자] 20세기 말, <여고괴담>이라는 영화가 돌풍을 일으켰다. 여자고등학교에서 일어나는 초현실적인 상황을 스크린에 담아 당시에는 참신한 시도라는 평가를 받았다. 당시 대중은 왜 이 영화를 선택했을까. 영화 속 학생들이 통제와 억압의 대상으로 그려진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교사인 허은영(이미연 분)과 학생 박소영(박진희 분)이 나눈 대화로 <여고괴담>에 등장한 유명한 시퀀스 중 하나다. 학벌이 사회적 지위를 보장한다는 인식이 그대로 드러나는 장면이다.

영화는 여고에 내려진 저주라는 초현실적 상황과 학생들을 억압하는 교육현실을 교차하며 울림을 극대화한다. 그렇다면 당시 관객들은 과연 어떤 모습에 공포감을 느꼈던 것인가.

영화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이후 햇수로 20년이 흘렀다. 지금 우리 청소년들의 교육현장은 그때보다 얼마나 나아졌을까.

◆ 학생 인권조례부터 제대로 지켜야

지난 2011년, 서울시학생인권조례에 대한 논쟁이 뜨겁게 일어났다. 학생인권조례는 학생들이 능동적인 주체로 거듭나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학생인원조례는 학생이 자신의 역할과 행위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가지며 부당하다고 판단되는 요구를 거부하고 인권 침해로 인한 피해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권리’를 규정한다. 반면 정부와 학교 등 우리 사회에 대해선 청소년이 학생으로서 권리를 제대로 행사할 수 있도록 제반환경을 제공하는 책임을 부여하고 있다.

학생인권조례가 발표된 이후 학교와 교사의 직무 범위를 한정한다는 점이 일부 기성세대를 자극했다. 특히 자녀세대에 대한 통제가 어려워진다는 점에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교사나 학부모가 ‘정당한 교육 목적으로 어린이‧청소년의 일기장, 핸드폰을 검사하는 등 합당한 지도를 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 당시 반대이유 중 하나였다. 

이는 기성세대가 학생들이 가야 할 ‘올바른 길’을 이미 상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주는 한 단면이다. 물론 학생들에 대한 보호는 필요하다. 다만 그 보호의 범위 혹은 정도가 어디까지인지는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서울시학생인권조례 제8조 1항은 ‘학생은 자신의 소질과 적성 및 환경에 합당한 학습을 할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한다. 기성세대에 의해 ‘정해진 길’이 아니라 학생이 선택할 ‘권리’라는 것이다.

성년이 되지 않은 모든 사람의 권리를 규정한 유엔아동권리협약도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다. 제29조 1호는 ‘아동의 인격, 재능 및 정신적, 신체적 능력을 최대한 개발한다’고 명시하면서 이를 지향해야 한다고 명시한다. 또 제28조 2호는 ‘당사국은 학교 규율이 아동의 인간적 존엄성과 합치하고 이 협약에 부합하도록 운영되는 것을 보장하기 위한 모든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명시한다. 각 주체에게 적합한 길을 찾을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학력평가 세계1위' 핀란드의 비결은 

분명히 밝혀두는 것은 기성세대의 진심을 인정한다는 점이다. 기성세대가 학생과 자녀에 대해 고민하고 걱정한다는 점은 청소년들도 부인하기 힘들다. 쉬운 말로 ‘다 널 위해 그러는 거야’라는 말에는 진심이 담겨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새로운 세대를 위하는 방법이 어떤 것인지 고민해봐야 할 시점이다.

핀란드 헬싱키의 한 중학교 수업장면. <사진=유튜브캡쳐>

이런 우스갯소리가 있다. 국제기구가 주관한 학력평가에서 핀란드가 1위를 하고 그 뒤를 이어 한국이 2위를 했다. 한국 교육 관계자는 “저희가 근소한 차이로 졌습니다”라며 핀란드 교육 관계자에게 말을 걸었다. 그러자 핀란드 교육 관계자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저희가 큰 차이로 이겼습니다. 저희 학생은 웃으면서 공부하지만 그쪽 학생들은 울면서 공부하지 않습니까”. 공감이 되면서도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는 이야기다.

핀란드는 획일화된 교육이 아닌 학생 개개인에 맞춘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하나의 그릇에 학생들을 담기보다 직접 체험을 통해 책 속 지식 이상의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핀란드 교육이 중시하는 것은 낙오자를 만들지 않는다는 점이다. 핀란드의 교육 개혁이 ‘작은 나라 핀란드’의 미래가 교육에 달려있다는 사회 전반의 절박함에서 추진력을 얻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유엔아동권리협약 제12조 1호는 ‘당사국은 자신의 견해를 형성할 능력이 있는 아동에 대하여 본인에게 영향을 미치는 모든 문제에 있어서 자신의 견해를 자유스럽게 표시할 권리를 보장하며, 아동의 견해에 대하여는 아동의 연령과 성숙 정도에 따라 정당한 비중이 부여되어야 한다’고 명시한다. 우리의 현실과는 정반대라는 사실을 금방 눈치챌 수 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공부 압박에 시달리는 것이 우리 학생들의 현실이 아니던가.

어렵게 진학한 대학에서도 문제는 이어진다. 2015년 전국 153개 4년제 대학에 다니는 학생 중 자퇴나 전과를 선택한 학생이 총 5만702명이라는 통계가 나오기도 했다. 적지 않은 학생들이 대학에 진학한 이후 진로를 변경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래에 대한 고민 없는 대학 진학은 생존의 영역에 개인을 가두는 결과를 낳는다.

<여고괴담>에서 귀신이 된 진주(최강희 분)가 저주를 풀고 학교를 떠날 수 있었던 건 이해와 화해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진주가 떠난 교실은 피로 물든다. 기성세대가 학생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이해하려는 노력을 보일 때 비로소 우리 교육현실의 아픔을 보고 ‘학생들을 위한 길’을 찾는 실마리를 얻을 수 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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