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드업코리아-산업③] 한국반도체, 시장위축·중국추격 악재 넘는다

2015-12-09     차상근기자

지난 7월 중국의 한 IT 업체가 글로벌 빅5 반도체 회사인 미국 마이크론을 230억달러(약 26조원)에 인수하겠다고 제안서를 낸 소식이 전해졌다. 한국을 포함, 전세계 시장이 술렁인 것은 당연했다. 당사자인 칭화유니그룹은 세계 반도체 시장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회사여서 더욱 그랬다. 그러나 미국이 산업보안을 이유로 매각을 반대하면서 해프닝으로 끝났다.

그러나 몇 달 지나지도 않은 지난달 26일, 이번에는 이 회사가 SK하이닉스에 지분 15~20%를 투자하고 전략적 합작을 하겠다고 제안했다는 보도가 다시 나왔다. SK하이닉스가 곧바로 그 제안을 거절했다고 밝힘에 따라 그 통 큰 회사에 대한 호기심이 더해졌다. 뿐만 아니라 중국의 반도체 산업과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의 현실에 대한 관심도 증폭됐다.

◆ 완제품, 다음은 소재부품, 중국의 전략

칭화유니그룹(즈광집단)은 1988년 설립된 칭화대와의 산학기업을 모태로 한다. 2013년 중국의 반도체 업체 스프레드트럼과 RDA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를 인수해 중국 최대 반도체 설계기업이 됐다.

중국 베이징시 칭화유니집단 본사

이 회사의 공격적인 글로벌기업 사냥의 뒷 배경에는 중국의 ‘반도체굴기’ 정책이 있다. 중국은 지난해 향후 5년간 6000억위안(110조원)을 투자해 반도체산업을 전략산업으로 육성하겠다고 선언했다.

그 선봉대로 국유기업인 칭화유니그룹을 앞세웠다. 이 회사는 지난달 세계 최대 반도체 칩 패키징 회사중 하나인 대만 파워텍 지분 25%를 6억달러에 인수하며 최대주주가 됐다. 또 자회사인 미국 웨스턴디지털을 통해 샌디스크를 인수했다.

중국은 전세계 전자산업의 최대 생산기지이자 전자제품의 핵심부품인 반도체의 최대 소비국이다. 2013년 기준 핸드폰은 전세계 생산량의 80.6%, PC는 62.8%, TV 56.7%가 중국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전세계 반도체 생산량 중 중국이 소비하는 비중은 55.6%로 압도적이다.

2015년에 이런 상황은 더 심화됐다. 한국반도체산업협회에 따르면 전세계 반도체 시장규모는 3470억달러에 달하며 이중 중국의 소비규모는 2070억달러를 넘어 60%선인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중 중국이 자국내에서 조달가능한 규모는 17억달러, 8% 수준에 불과하다. 결국 반도체 수입으로 2000억달러에 가까운 거액을 외국업체에 갖다 바친다고 생각하고 있다. 중국의 연간 원유수입액 1350억달러보다 50% 이상 많은 금액이다.

가전과 PC, 휴대폰 등 각종 IT기기 완성품 시장을 장악해온 중국 입장에서는 핵심부품의 국산화에 눈을 돌릴 시기가 도래한 것이다.

지난해 6월 약 1200억위안(21조원) 규모로 조성한 ‘반도체산업 지원펀드’는 글로벌기업 사냥에 적극적으로 돈을 풀 계획이다. 대상도 팹리스, 파운드리와 비메모리 분야였으나 최근에는 마이크론과 SK하이닉스 해프닝에서 보듯이 한국이 주도하는 메모리 영역으로 확대하고 있다.

◆ 꺾이는 반도체경기, 불안한 한국

올해 전세계 반도체 시장규모는 2014년 3358억달러 대비 3.4% 증가한 약 3470억달러로 예상된다. 전년도 9.9%보다 크게 증가폭이 줄었다. 그중 한국이 주도권을 쥔 메모리반도체 시장은 2013년 28.0%, 2014년 18.2%(792억달러)의 고속성장을 멈추고 올해는 2.8%로 주저앉은 814억달러를 예상하고 있다.

한국은 지난해 주력인 메모리에서 27.7% 성장한 덕에 반도체산업 규모를 15.7% 늘려 584억달러까지 확대했다. 그러나 시스템반도체쪽은 지난해 15.9% 오히려 성장이 후퇴했고 세계 반도체산업에서의 비중도 2013년 5.4%에서 4.3%로 주저앉았다.

전세계 반도체 시장이 위축기에 접어들고 그중에서도 메모리분야의 다운턴이 두드러지면서 한국반도체업계의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는 올해 글로벌 반도체시장의 분기별 성장률에서 확인되고 있다.1분기 6.0%에서 3.5%, 2.5%를 거쳐 4분기에는 1.8% 증가에 그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2016년, 2017년 전망은 각각 3.4%, 3.0%로 보고 있다.

특히 메모리분야는 올 2분기에 5.2% 성장에서 3분기에는 -0.9%로, 4분기에는 -2.3%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내년과 2017년에도 각각 연 0.9%, 1.6% 성장하는 데 그칠 것으로 보인다.

반면 시스템반도체쪽은 올해 3.2%까지 성장세가 위축됐다가 2016, 2017년에는 4.3%, 3.4% 정도로 전망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반도체 시장이 위축기에 들어섰지만 메모리쪽 상황이 더 좋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면서 한국 기업의 위기감은 더 커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승우 IBK투자증권 상무는 “올해 D램 경기가 32개월만에 매출액 대비로 마이너스 성장기에 진입했다”며 “PC나 스마트폰업계의 수요는 줄고 있지만 메모리 업체들은 오히려 캐팩스를 늘리고 있어 D램 등의 가격은 적어도 내년까지 약세흐름을 보일 것 같다”고 전망했다.

한국, 계속 성장할 수 있을까

우리 기업이 절대 강세를 보이는 메모리반도체 시장규모는 약 792억달러로 세계 반도체시장의 23%에 그치고 있다. 이 시장에서 삼성은 D램과 플래시메모리 두 분야에서 세계 1위(각 36%, 35%)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고 삼성과 SK하이닉스를 합하면 각각 63%, 48% 정도이다.

반면 시스템반도체의 시장규모는 2580억달러에 달하지만 삼성이 디지털 IC에서 88억달러를 차지할 뿐 인텔과 텍사스인스트루먼트, 퀄컴, 소니 등이 각 분야별 선두그룹을 형성하고 있다. 한국기업의 비중은 지난해 기준 4.3%에 그쳤다.

문제는 시스템반도체사업에서 한국기업의 시장점유율이 2013년 5.4%를 고점으로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비중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나마 시장상황이 나을 것으로 보이는 시스템분야는 미국과 일본, 유럽 업체에 밀리고, 중국에 추격당하면서 사면초가에 몰리고 있다. 주도권을 쥔 메모리 분야는 시장정체 상황에 서 글로벌 강자들이 또 한차례 치킨게임을 벌여야 하는 형국인 것이다.

여기에 중국이 정부주도 아래 칭화유니그룹, SMIC 등을 내세워 대형 딜을 마쳤거나 추가로 진행 중이다. 중국의 메모리시장 공습이 코앞에 닥친 것이다.

인텔마저 메모리시장에 가세한다면 삼성과 SK하이닉스로서는 설상가상의 형국이 될 것으로 업계는 우려하고 있다.

전문가들의 반응은 엇갈리고 있다.

미래창조과학부 관계자는 “중국의 메모리 시장 진출이 현실이 됐지만 공정과정이 복잡하기 때문에 본격적인 경쟁까지는 시간이 다소 걸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반면 중국이 메모리업체들을 M&A하고 인재를 적극적으로 확보한다면 안심할 수 없다는 분석도 있다.

이승우 상무는 “당장 1~2년 사이 큰 변화는 없겠지만 중장기적으로 중국업체의 시장진출과 인텔 등의 메모리시장 가세는 우리기업의 시장 리스크를 키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같은 상황에서 우리 기업들은 중국의 물량공세에 대비해 신기술 확보에 주력하는 한편 공정미세화 한계를 극복하는 고성능화로 시장주도권을 강화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세계 최초로 20나노 미세공정기술을 적용해 성능과 전력효율을 개선한 D램제품을 양산하며 고성능스마트폰과 서버용 D램 수요에 대응하고 있다. 3D낸드 플래시 분야에서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반도체소자를 3차원으로 쌓는 공정기술을 적용해 칩의 대용량화 및 원가절감을 동시에 실현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기존의 낸드플래시 생산시설을 3D 전용으로 바꾸는 등 내년에 시설투자를 3D 낸드 분야에 집중한다.

삼성전자는 적층구조를 사용한 3D낸드플래시 기술력으로 양산체계를 구축하는 한편 시스템반도체 기술발전에 집중하고 있다. 모바일프로세스(AP)와 이미지센서 기술력을 강화하고 바이오센서분야까지 새로 진출한다는 전략이다.

삼성전자는 특히 일본 소니와 대등한 기술력을 갖췄다고 자평하는 이미지센서 제품을 스마트폰 뿐만 아니라 자동차와 로봇 등으로 적용처를 넓혀나갈 계획이다.

아울러 사용자의 생체정보를 하나의 통합칩으로 묶어내는 반도체 부품인 바이오센서는 웨어러블기기 분야에서 활용도가 높을 것으로 보고 사업역량을 쏟아붓고 있다. 삼성전자는 업계 최고수준의 집약도를 갖춘 바이오센서를 최근 개발 완료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내년 1분기에는 외부납품에 들어갈 것으로 보고 있다. 매년 200% 이상 고성장중인 세계 웨어러블기기 시장에서 삼성전자의 바이오센서가 시장을 주도할 수 있을 것으로 삼성전자는 기대하고 있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상무는 “우리 반도체 기업들은 메모리분야에서 수익성이 악화되는 만큼 제품 고성능화와 소량 다품종 포트폴리오 구축이 필요하며 이미지센서나 바이오센서 등 시스템반도체의 신사업분야를 강화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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