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이 본 청년정책] ③ ‘일자리 창출’에 발 묶인 청년창업

일자리 등 떠밀어 '청년빚쟁이' 양산…"행정편의적 지원 멈춰야"

2018-08-22     박경보 기자

문재인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일자리'를 강조하며 청년들을 위한 각종 정책을 쏟아냈다. 그러나 많은 청년들이 일자리를 찾았다거나 삶이 나아졌다는 소식은 좀처럼 들리지 않는다. 정부 정책의 잘못인지는 모르겠지만 '효과'가 제대로 발휘되고 있지 않는 것만은 확실하다.

특히 정부는 지난 3월 청년창업을 지원해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며 청년 창업기업에 대한 법인세‧소득세 면제 등 다양한 정책을 발표했다. 신규 일자리의 상당수는 창업기업에서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청년 창업가들은 과도한 세금과 임대료 탓에 매일 폐업을 고민한다며 성토를 늘어놓고 있다. 현장의 목소리를 제대로 귀담아 듣지 않은 ‘표’만 의식한 표퓰리즘 정책에 희생당하고 있다는 게 이들의 생각이다. 뉴스웍스는 정부의 청년 정책에 대한 그들의 솔직한 목소리를 들어보는 5회 시리즈를 기획했다.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 3월 27일 오후 서울 흰물결아트센터에서 청년일자리대책 보고대회에서 발표했던 대책을 청년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사진제공=고용노동부>

[뉴스웍스=박경보 기자] 이좌진(37) 대표가 이끌고 있는 무역회사 '프랙'은 창업 5년 만에 연매출 120억원을 올린 모범적인 스타트업으로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이 대표는 정부로부터 상대적으로 많은 지원을 받은 편이지만 ‘청년’이라서 도움 받은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이 대표는 “창업 이후 지금까지 약 3억원의 정부 정책자금을 지원받았지만 꼭 청년이 아니더라도 창업기업이면 누구나 신청할 수 있었던 지원금”이라며 “정부 지원금을 바탕으로 회사가 성장한 것은 맞지만 ‘청년’을 위한 정책의 수혜를 입은 것은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부가 청년들에게 세제 혜택을 늘리겠다고 하지만 창업 후 지금까지 정부로부터 받는 세제지원은 아무것도 없었다”며 “어떻게 하면 받을 수 있을지는 알지만 조건이 매우 까다로워 대기업에서 분사한 스타트업이 아니라면 혜택을 받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성토했다.

또 그는 위험을 감수(리스크 테이킹)하지 않고 스타트업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는 정책기조도 꼬집었다.

자신의 금융 대출과정을 소개한 이 대표는 “신용보증기금으로부터 보증서를 받았지만 정작 주거래은행에서 반려당했다”며 “업력이 짧은 스타트업에게 매출 등 성적표만 앞세워 대출여부를 따지다보니 생기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청년 창업가들이 안정적으로 금융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제도적인 보호장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정부는 최근 자금력이 열악한 청년들의 창업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청년 창업기업의 법인세와 소득세를 5년간 100% 감면한다고 발표했다. 현행 감면율은 3년간 75%를 원칙으로 하고 이후 추가적으로 4년차와 5년차 때 50%의 세제 감면을 받을 수 있도록 했으나 이를 5년간 100% 무조건 감면으로 대폭 인상한 것이다. 또 기존 대상 연령층이 15세~29세로 한정되어 있던 것을 34세로 확대해 더 많은 청년창업자가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조정했다.

하지만 이 같은 지원책에도 청년 창업가들은 가장 큰 애로사항으로 세금 부담을 꼽고 있다. 세제 지원 대상 업종의 폭이 좁은 데다 조건도 까다로워 혜택범위에서 벗어나 있는 스타트업들이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청년 창업가들의 니즈를 수렴한 맞춤형 정책을 만들어 실질적인 도움을 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또 다른 청년 사업가인 박현우(가명‧29)씨도 “정부는 이미 완성단계에 있는 스타트업들에게만 안정적으로 자금을 투입하려는 경향이 강하다”며 “자금력이 부족한 청년들이 아이디어만 가지고 회사를 운영하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정부의 ‘리스크 테이킹’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성공여부가 확실하지 않더라도 좋은 아이디어를 가진 청년 창업가를 적극 지원해 새로운 성장동력을 발굴해야한다는 뜻이다.

그는 이어 “정권마다 육성하려는 업종이 다르다보니 정권이 교체되면 지원업종도 달라진다”며 “박근혜 정부 때는 ICT 관련 업종에 집중됐다면 문재인 정부에서는 사회적기업과 협동조합이 맞춰져 있다”고 꼬집었다. 정부가 집중 육성하는 업종이 아니면 아무리 아이디어가 좋아도 창업을 시도하기 쉽지 않다는 이야기다.

뿐만 아니라 ‘높은 임대료’도 청년 스타트업들의 폐업률을 높이는 주요 요인 중 하나다. 저렴한 임대료에 사무실을 사용할 수 있도록 ‘청년창업밸리’ 조성을 확대해야 한다는 게 청년 창업가들의 생각이다.

서울의 한 대학가에서 2년째 취업학원을 운영하고 있는 최은성(가명‧31)씨는 “보증금 3000만원에 한 달 130만원씩 꼬박꼬박 월세를 지출하고 있다”며 “가뜩이나 학생수가 줄고 있는 마당에 월세까지 내고 나면 적자가 아닌 달이 없다”고 호소했다.

그는 이어 “교육 위주의 멘토링 같은 프로그램은 많이 있지만 당장 살아남는 것을 걱정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정부에서 운영하는 월세 사무실이 많아진다면 청년 창업가들의 애로사항을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정작 수백억원을 들여 조성한 ‘창업밸리’는 접근성이 매우 떨어져 채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정부가 ‘일자리 창출’에만 연연하다보니 정작 고용에 역효과를 내고 있다는 지적이다.

서대문구청이 운영하고 있는 청년창업꿈터 <사진=서대문구 블로그>

대학교 3학년 시절인 2006년 첫 창업한 김광수(가명‧37)씨는 현재 판교창조경제밸리에 사무실을 마련하고 무역관련 사업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곳에 입주한 200여개의 청년기업들은 대부분 심각한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이다.

김씨는 “이곳은 에어컨도 시원하고 시설이 전체적으로 훌륭하지만 교통이 매우 불편해 대부분의 구직자들은 면접조차 보려고 하지 않는다”며 “셔틀버스는 고사하고 시내버스도 제대로 다니지 않기 때문에 인력을 구하기는 하늘의 별따기”라고 설명했다. 대표들은 자가용이나 이륜차를 쓰지만 갓 대학을 졸업한 취업준비생들은 마땅한 교통편이 없다는 것이다. ‘일자리 창출’이라는 경제밸리의 본연의 목적과 역할에 역행을 하고 있는 셈이다.

또 그는 “처음 창업한 12년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정부의 지원정책과 재정지원이 크게 늘어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정작 지원이 절실하게 필요한 스타트업들에게는 제대로 된 혜택이 주어지지 않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청년 창업 관련 국가예산은 계속 확대되고 있는데 행정 편의적으로 예산을 편성하다보니 실질적인 체감 혜택이 미미하다는 이야기다.

이와 관련해 김씨는 “정부는 창업프로그램과 관련된 많은 예산을 어떻게 써야할지 몰라 낭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며 “3개 업체만 참여해도 될 교육 프로그램에 10개 이상 업체를 참여시키다보면 지원이 절실한 업체에 대한 혜택은 자연히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 일자리 창출보다 스타트업 '경쟁력 확보'에 초점 맞춘 정책 나와야

일자리 창출에 얽매인 현재의 창업정책 방향이 큰 틀에서 전환돼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김씨는 “청년 창업 생태계가 정부주도로 확산됐지만 정작 청년 창업가들의 창업 열기는 그다지 크지 않은 것 같다”며 “살아남을 수 있는 확실한 경쟁력을 쌓기도 전에 정부지원만 믿고 등 떠밀려 창업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경우 조기 폐업의 지름길”이라고 경고했다.

이와 관련해 부동산중개업 2년차인 김민수(가명‧29)씨는 “너도나도 준비 없이 청년창업에 뛰어들다보면 폐업하는 사업체는 더 많아질 수밖에 없고 이로 인한 개인 부채는 물론 사회적 비용도 우려된다”며 “포퓰리즘 성격의 청년창업 정책을 남발하기보다 차라리 지금 있는 회사들을 좋은 일자리로 만드는데 주력하는 것이 더 낫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엉성한 지원책으로 ‘청년 빚쟁이’를 양산하는 것보다 기존 회사의 일자리를 질적으로 향상시켜야 한다는 뜻으로 읽힌다.

또 창업을 준비 중인 이지수(가명‧30)씨도 “미국과 유럽 같은 체계화된 교육 프로그램이 아닌 멘토링 등 이벤트성, 구호성 교육들만 늘어놓는다고 애플이나 삼성 같은 회사가 나올 수 없다”며 “국내 100대 부자들 가운데 자수성가한 사람들이 10%도 되지 않는 점은 시스템의 한계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사례”라고 일갈했다.

스타트업을 컨설팅하는 임창범 변호사는 “정보력과 자금력이 부족한 스타트업들은 단순 아이템만 가지고는 버티기 어려워 폐업률이 높은 편”이라며 “무작정 사업에 뛰어들기보다 전문가 컨설팅 및 시장조사, 자금운영 계획 등 사전에 철저히 준비해야 조기 폐업을 피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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