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드업코리아-산업④]철강, R&D·고부가가치로 불황 넘어야

공급과잉·수요부진·중국發물량공세 등 삼중고 해결 시급

2015-12-28     윤주진기자

세계 투자업계의 큰 손 워렌 버핏은 지난 2011년 우리나라를 방문한 후 포스코를 두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놀라운 회사”라고 극찬한 바 있다. 실제 버핏은 2007년부터 포스코 주식을 사들이기 시작해 총 395만주까지 보유하는 등 포스코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그런데 버핏은 지난해 보유한 포스코 주식을 몽땅 팔았다. 6000억원에 가까운 수익을 벌어들인 것으로 추정되는 성공한 투자였다. 그러나 최고의 회사라며 추켜세우던 회사의 주식을 전량 매도한 것은 의아한 부분이었다. 버핏의 결정에 대한 궁금증은 곧 풀렸다. ‘투자 귀재’의 감각을 입증하는 데 충분했다. 실제 지난해 9월 주당 36만1000원까지 오른 포스코 주식은 최근 반토막 이상(17만원대)떨어졌다. 

버핏이 내다봤던 것은 최근 각계에서 쏟아져 나오는 산업전망과 궤를 같이한다. 연말을 맞아 각종 경제전망 보고서를 보면, 내년 철강 산업은 낙관적이지 않다. 국내 철강업계역시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다”며 내년 실적에 대해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다. 

그렇다면 문제의 원인과 그 해결 방안은 무엇일까? 

◆ 고부가가치 제품 확대와 R&D로 돌파구 열어야

어려운 현실에 직면해 있는 국내 철강업계가 결국은 고부가가치 제품시장을 공략하고 기술 혁신을 위한 R&D에 보다 과감한 투자만이 중국과 일본 사이의 넛크래킹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포스코경영연구원은 " 위기 극복을 위해 국내 철강업체들간 협력체제 구축이 필요하다"며 "기술은 물론 마케팅, 경영전략, 시장정보 등을 공유, 커다란 연대체를 구성해 글로벌 경쟁력을 확대하는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또 변종만 NH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설비 합리화, 생산 효율화를 위한 선제적 M&A에 나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와 함께 전 세계를 대상으로 안정적 수요처의 확보도 중요하다. 고객사의 니즈에 기반한 차별화된 제품을 개발해 수요처별로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판로를 개척해야 한다는 얘기다. 오스트리아의 ‘보에스트알파인’이 자동차용 강판·강관으로, 핀란드의 ‘루끼’가 건축 및 토목용 철강재로 안정적 수요처를 확보하면서 위기를 타개한 것은 좋은 예이다.  

수요 업체와 함께 기술개발을 하고 신규 투자 시 지분율을 나누는 등의 협력방안도 모색할 수 있다. 독일의 ‘티센쿠르프’와 일본이 ‘JFE’ 등은 각각 자동차용 철강업체와 유정관·조선 관련 철강업체를 부분인수하거나 지분 투자를 한 바 있어 우리 업계에 좋은 사례가 될 수 있다. 

변 애널리스트는 "산업트렌트에 맞춘 과감한 R&D 투자가 필요한 시점"이라며 "최근 전기자동차 시장이 성장하고 있어 철강집약도가 낮은 경량 소재,  고층빌딩 건설수요가 증가하는 건설업계의 경우 구조용 강재 등의 수요전망은 밝은 편"이라고 말했다. 

◆ 정부의 정책적 리더십도 중요...구조조정·R&D투자 적극 유도해야

최근 포스코경영연구원은 국내 철강업계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정부의 정책적 대응 방안으로 크게 세 가지를 꼽았다. 

경쟁력 제고와 기술개발을 위한 정부차원의 R&D자금에 대한 조세 지원 확대를 통해 기업의 과감한 투자를 유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신제품, 신기술 개발 외에도 기존 설비의 생산성 제고 등 설비투자에 대해서도 정부 지원을 늘리고 공급업체와 수요업체가 공동 R&D 투자시 조세감면 제도를 확대 시행하는 등의 지원책이 필요하다. 

통상 대응도 요구되고 있다. ‘Trade Risk Management’ 즉, 무역위험관리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재외공관, 코트라, 무역협회, 철강협회 등이 공조해 체계적인 감시 시스템을 실시하는 한편, AD(반 덤핑) 피소를 당할 경우 업계와 정부가 함께 대응해나가야 한다는 내용이다.

이와함께 포스코경영연구원은 환경이나 안전 등 기술규정을 강화하고 반덤핑 제소 조치 등을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 저가재의 국내시장 잠식을 막기 위한 보호 조치도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사업재편을 위한 구조조정을 보다 원활하게 해주는 것 역시 국가 차원에서 풀어야 할 문제다. 한국철강협회는 지난 24일 성명서를 통해 기업활력제고를위한특별법(원샷법)에 철강 대기업도 반드시 포함시켜달라는 주장을 내놓은 바 있다.

◆ 세계시장은 ‘불황...공급과잉·수요부족에 따른 가격하락이 원인

현재 세계 철강시장은 한마디로 ‘공급과잉, 수요부진’ 상태다. 이에 따른 가격 하락이 국내 업계의 이윤 감소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 2001년 조강(철강생산)능력은 105억톤이었으며 실제 생산량인 조강수요는 84억톤에 불과했다. 한편 지난해 조강능력은 235억톤, 조강수요는 169억톤까지 늘어났다. 약 14년간 두 배넘게 수요와 공급 규모가 증가했으나 공급과 수요 갭(차이)은 더욱 확대했다.   

자료 : 포스코경영연구소

이처럼 2000년대 이후에 공급 과잉이 심화된 것은 중국과 신흥국 등 철강수요가 증가한 국가들이 철강산업에 앞다퉈 투자했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은 지난 14년간 연평균 14.2%의 생산증가율을 보였으며 지난해에 전세계 생산량의 50%를 차지할만큼 철강산업 몸집을 키웠다. 

반면 최근들어 철강 수요 성장 폭은 점차 줄어들고 있다. 올해 세계 철강수요는 153억톤, 지난해보다 0.5% 늘어나는데 그쳤다. 지난해에도 전년(2013년)에 비해 불과 0.6% 증가했다. 전세계 철강수요의 46%를 차지하는 중국의 경기둔화가 가장 큰 원인이다. 

이처럼 공급이 늘어나는 속도를 수요 증가 폭이 쫒아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가격 하락은 불가피하다. 올해 7월 기준으로 열연강판 가격은 톤당 398달러로 이는 10여년전(2004년)수준으로 뒷걸음질친 가격이다. 

 

 

◆ 중국의 ‘물량공세’와 일본의 ‘고급화 전략’에 끼인 국내 철강업계

그런 가운데 세계 철강 수출시장의 36.7%를 차지하는 한·중·일 3국간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국내 철강업계는 중국의 물량공세와 일본의 고급화 전략에 끼여 수출에 애로를 겪고 있는 상황이다. 

자료 : KDB산업은행경제연구소

산업은행이 발간한 ‘2016년 경제·금융·산업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은 저가재를 앞세운 수출 확대 전략으로 2010년부터 철강 무역특화지수가 한국을 추월했으며, 일본은 고급 철강재를 바탕으로 안정적 해외수요를 이어가고 있어 높은 무역특화지수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즉, 우리 철강업계의 경쟁력이 중국(저가 철강)과 일본(고급 철강) 모두에 비해 열세라는 것이다. 

특히 중국의 저가 철강재는 국내 시장을 잠식할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열연강판, 중후판 등 판재류의 중국산 수입물양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가운데 최근에는 철근이나 봉, 형강류 수입까지 급증하고 있는 추세다. 이처럼 밀고 들어오는 중국산 제품으로 국내 수입재 가격이 40% 하락했으며, 평균 유통가 대비 중국산 철강재의 가격이 80%까지 떨어져 높은 가격경쟁력을 보이고 있다. 

철강협회는 “중국산 철강재의 과잉공급 및 글로벌 수요 둔화로 인해 철강 업계는 제강설비를 폐쇄하거나 생산을 중단하고 있으나, 여전히 불황 극복은 요원한 상황”이라며 “주력산업 내 과잉공급을 해소하고 신산업 진출을 촉진하기 위해 주력산업의 사업재편이 절실한 시점”이라고 밝혔다.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