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드업코리아-금융②] IB 또는 전문화, 업계재편 흐름 타라
“대우증권 인수를 발판으로 일본의 노무라증권을 뛰어넘는 아시아 대표 IB를 지향하겠다”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이 지난 24일 대우증권 인수 우선협상대상자에 미래에셋컨소시엄이 선정된 후 던진 일성이다. 자산운용에 강점을 지닌 미래에셋과 대우증권의 IB역량을 결합해 아시아를 대표하는 글로벌 IB로 도약한다는 전략이다.
증권매매 중심의 천수답식 경영구조가 고착화된 국내 증권업계에 일대 변화가 시작되는 시점이다. 대우증권과 미래에셋증권이 합쳐지면 자기자본 7조9000억원에 달하는 국내 최대 증권사가 탄생한다. 미래에셋은 2020년까지 자기자본을 10조원으로 늘리겠다고 밝혔다.
금융당국은 지난 2013년 종합금융투자사업자(IB) 제도까지 도입하며 글로벌 IB육성에 사활을 걸어 왔다. 나아가 당국은 글로벌 IB와 중소기업 특화 증권사로 증권업계를 재편하는 한편 기업자금조달과 투자, 회수의 장으로써 국내 자본시장의 기능을 강화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번 미래에셋의 과감한 행보로 금융투자업계의 경쟁력 강화정책이 사실상 2년여만에 첫 단추를 채우는 셈이다.
■ 최대 난제, 글로벌 IB육성 ‘첫발’
금융위원회는 지난 2013년 자본시장법 개정을 통해 5개의 종합금융투자사업자 제도를 도입했다. 이에 따라 NH(당시 우리), 삼성, 현대, 대우, 한국 등 5개 증권사가 자기자본 3조원 이상 기준을 충족하며 기업신용공여, 프라임브로커 업무 등을 영위할 수 있는 종합금융투자사업자로 지정됐다. 프라임브로커 서비스는 증권사가 헤지펀드 운용에 필요한 신용공여, 증권대차, 컨설팅 등 종합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무로 세계적 IB들의 주요 영역이다.
그러나 은행과 경쟁할 만한 대형 IB로의 성장은 정책구호에 그쳤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신용공여 업무나 외환취급 업무 등에 규제가 잔존했고 업계에서도 확충한 자본을 채권투자와 차입금 상환 등에 대거 활용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5개 종합금융투자사업자들의 기업신용공여 규모는 제도 도입 첫해인 2013년말 1조1000억원으로 자기자본 대비 비중이 6.4%였다. 지난해말에는 2조4000억원(13.1%)에 그쳤고 올들어서는 6월말까지 불과 3000억원 늘어난 2조7000억원(14.9%)에 머물렀다.
한국형 헤지펀드의 시장규모는 3조1000억원 수준으로 성장했으나 프라임브로커 시장의 발전은 답보였다. 관련 신용공여 규모가 2013년말 187억원에서 올해 6월말 271억원에 그쳤다.
■ 기업금융기능 강화가 ‘지상명제’
금융위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중소기업들은 조달자금의 92%를 은행대출에 의존했다. 반면 자본시장 조달비중은 1%선에 그쳤다. 자본시장을 기업 자금조달의 장으로 만들기 위해 정부가 끊임없이 노력해왔지만 제 기능을 하기까지는 요원하다는 지적이다.
증권사들이 기업금융 등 고부가가치 영역의 업무보다는 증권매매 중심의 제살깎기식 경영을 계속해왔기 때문이다. 지난해 기준 국내 증권사 영업부문별 수익구조는 자기 및 위탁매매 수익이 62.2%를 차지하는 반면 자산관리(3.3%), IB업무(8.1%) 등 나름 특화분야는 한자리수에 그치고 있다.
이에 따라 글로벌 금융위기 전 17%에 이르렀던 증권사 자기자본이익률(ROE)은 지난해 4%로 떨어질 정도로 위탁매매에 의존한 출혈 경쟁은 만연해 있다. 56개사가 난립한 가운데 자율적 구조조정이나 인수합병, 차별화를 통한 업무영역의 전문화가 이뤄지지 않으면서 금융투자산업 자체가 레드오션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금융위는 지난 10월 ‘금융투자업자의 기업금융 기능강화 등 경쟁력 강화방안’을 내놓으며 업계의 구조조정과 전문화를 다그치고 있다.
이번 방안은 종합금융투자사업자의 기업금융 기능 강화와 중소∙벤처기업 전담의 ‘중소기업 특화 증권사’ 지정제도 도입, 사모시장을 통한 자금 조달 및 투자∙회수 활성화 등이 주된 골자이다.
또 대형 증권사의 주식거래시장 개설, 모든 증권사의 사모펀드 운용, 담보증권 재활용 등 기존 업무와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는 신규업무를 대거 허용했다.
■획일화, 정형화에서 대형화, 차별화로
전문가들은 내년이 증권업계에 있어 새로운 도약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사모펀드 규제 완화, 기업금융 활성화 등 외에도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와 인터넷은행, 로보어드바이저 등 새로운 시스템이 자리를 잡을 것이기 때문이다.
만능통장이라 불리는 ISA시행은 증권사들에게 새로운 틈새시장 수익원이 될 전망이다. 다양한 금융상품을 한 계좌로 관리하고 세제혜택도 제공되는 ISA의 도입으로 증시로의 자금유입이 늘어날 것으로 업계는 기대하고 있다.
핀테크를 기반으로 한 로보어드바이저는 로봇이 개인의 자산을 관리해주는 서비스이다. 증권사와 은행을 중심으로 자산관리에 대한 신개념이 적용되는 셈이다.
이같은 시장환경속에서 이번 미래에셋의 대우증권 인수는 증권업계 합종연횡을 재촉할 전망이다. 사실 새로 탄생할 통합미래에셋증권의 자본금 규모는 글로벌 IB 업체들에 비해 너무 처진다.
자기자본 91조원인 골드만삭스를 포함 글로벌IB의 평균 자기자본은 60조원대에 달하며 일본의 노무라(25조원), 다이와(14조원)에도 못 미친다.
당장 자본력에서 밀리는 종합금융투자사업자들을 포함한 다수 증권사들은 해외시장진출은 차치하고 국내시장 경쟁력을 위해서도 새로운 생존전략을 모색해야 할 처지다.
시장의 우선적 관심은 올해 매각이 무산된 현대증권으로 향하고 있다. 대우증권 인수전에서 고배를 마신 KB금융지주와 한국투자금융지주가 현대증권 인수전에 뛰어들 가능성이 커보인다. 대형사가 자기자본 3조2000억원인 현대증권을 사들이면 미래에셋+대우에 필적하는 규모가 될 수 있다.
M&A나 증자가 여의치 않은 중소형사들은 전문화에 속도를 더해야 한다. 시장에서는 이미 중소벤처기업 대상 기업금융에 특화한 증권사 자격을 놓고 10여개사가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금융지주 산하의 증권사들은 은행, 증권, 보험 등을 아우르는 종합금융서비스를 통해 생존과 도약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
현대증권 이상화 리서치센터장은 “기업신용공여한도를 자기자본 100% 한도까지 확대하고 전문투자형 사모펀드 운용 허용 등 증권업계의 상황이 크게 바뀌었다“며 ”증권사들은 전문화된 업무역량을 적극 확대하고 자본을 늘리거나 M&A 등을 통해 경쟁력을 키우지 않으면 자칫 도태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