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어야산다] ⑧수도권규제 풀어 '메가시티' 성장동력 삼아야
일본·영국·프랑스 등 모두 사실상 '폐기'...메가시티전략 필요
지난 2006년 영국의 세계적인 기업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은 백신공장을 새롭게 지을 부지 찾기에 나섰다. 한국 경기도 화성시 장안산업 1단지가 안성맞춤이라고 판단했다. 당시 GSK가 투자할 예정이었던 자본은 최대 2000억 원이었고 예상 공장부지는 2만여 평이었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경기도 대신 전남 지역에 공장을 지으라고 권유했다. 그러나 중앙정부, 지방자치단체, 정부 인허가 기관 등이 엇박자를 내는 바람에 결국 GSK는 싱가포르 쪽으로 눈을 돌렸다.
비슷한 시기 또 다른 관광 산업 유치가 중도에 좌절했다. 서울 인근에 공원을 설립하려고 했던 미국의 디즈니랜드 측이 중국 상하이로 부지를 이전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인천, 과천 등 부지 선정에 혼란을 겪던 디즈니랜드는 결국 그린벨트라는 수도권 규제에 막혀 투자를 포기했다. 600만~1000만 명의 외국인 관광객 유치효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기대 역시 함께 날아간 셈이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최근 6년간 수도권 규제 때문에 기업이 공장 신·증설 투자시기를 놓쳐 발생한 경제적 손실은 3조3329억 원에 달하며, 투자계획을 철회하거나 해외로 공장을 이전한 기업이 28곳으로 그 경제적 손실은 9603억 원에 달한다고 밝힌 바 있다.
수도권 규제에 따른 경제적 손실과 국가경쟁력 약화, 기업의 투자 유치 무산 등은 이미 오래된 사회적 문제로 거론 돼 왔다. 하지만 번번이 지방 균형 발전 논리와 수도권 과밀 억제 논리 등에 막혀 수도권 규제 완화는 이렇다 할 성과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 세계 주요 선진국들이 수도권 규제를 풀기 시작해 새로운 경제 성장 동력으로 삼는 것과는 상반된 모습이다.
◆ 성장엔진, ‘공장’을 못 짓게 하는 수도권 규제
우리 정부가 수도권 규제를 본격적으로 도입하기 시작한 시기는 1980년대다. 1960~70년대 급속한 경제발전에 따른 도시화의 가속화·과밀화를 억제하기 위해 1982년 12월 31일 ‘수도정비계획법’을 마련했고 이에 따라 제1차 수도권 정비계획이 수립되면서 본격적으로 수도권 규제가 ‘급증’하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인구의 분산과 도농간 생활수준 격차 해소에 방점을 뒀다면 1990년대 중반부터는 산업의 분산에도 초점을 맞췄다. 공공기관의 이전과 기존 공업지역의 제약 등을 통해 수도권의 발전 속도를 더디게 만드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그렇게 도입한 수도권규제는 크게 ‘과밀억제권역’, ‘성장관리권역’, ‘자연보전권역’ 등 세 구역에 따라 적용하기 시작했다.
그 중에서도 수도권 규제의 핵심은 ‘공장설립’의 제한이다. 건축 면적 500㎡ 이상의 공장의 신·증설, 이전, 업종 변경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으며 수도권 내 공장 총면적을 제한하는 공장총량제를 실시하고 있다. 특히 대기업의 공장입지 규제는 매우 까다로운 절차에 따라서만 허용하고 있다.
산업뿐만 아니라 교육 측면에서도 수도권 규제는 아주 촘촘하게 짜여 있다. 일단 수도권 내에서는 4년제 대학의 신설이 불가능하며 소규모 전문대학 등만 설립할 수 있다. 1994년에 도입한 대학생 총수제로 정원 역시 제한하고 있다.
그러다 참여정부와 이명박 정부는 수도권 규제 완화조치를 실시했지만 이렇다 할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못했다. 최근 박근혜 정부가 2016년도 경제정책의 윤곽을 발표하면서 경기 동북부 지역의 낙후한 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개발 제한을 완화하겠다고 밝혔지만 여전히 “지역균형개발의 가치를 무겁게 받아들여 추진한다”며 신중론을 보이고 있다.
◆ 기업의 투자 막는 수도권 규제...결국 고용창출도 막는 것
한국경제연구원이 지난해 6월 발표한 보고서 ‘10.30 수도권규제 완화조치 이후 공장입지 투자계획 변동분석’에는 수도권 규제로 인한 기업의 투자 애로 사례가 자세히 드러난다.
예를 들어 핸드폰 백라이트 필름 가공기계를 제조하는 K사는 2008년부터 공장증설계획을 갖고 있었으나 수도권 규제, 환경 규제 등에 막혀 7년간 투자를 미루고 있다. 기존 공장 바로 옆 부지가 그린벨트로 묶여 있어 50억원 가량의 신규 투자가 막혀 있는 것이다. 결국 회사는 아예 동남아지역으로 기업을 옮기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는 실정이다.
2014년도 공장 신·증설 계획을 갖고 있던 W사는 오폐수를 방출하는 공장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단지 한강 유역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품목’에 대해 공장등록허가를 받지 못했다. 결국 W사는 8억5000만원 규모의 손해를 감수해야 했다.
식품첨가물과 원료의약품을 제조하는 B사는 건물이 노후해 새롭게 제조시설을 건설하려고 했으나 화학업종이라는 이유만으로 확장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D사 역시 주변경관을 해치고 녹지 훼손의 가능성이 있다며 공장 증축에 실패했다.
반도체 부품제조업체 S사는 자연보전권역 대기업 공장 신·증설 금지와 폐수 비(非)배출 시설에 한정된 증설만 허용한다는 원칙에 막혀 150명을 추가로 고용할 수 있는 사업을 철회해야 했다. 경기도 이천시에서 100여명을 추가로 고용할 수 있는 공장 증설이 막힌 N사 역시 수도권 ‘덩어리’ 규제에 막혀야 했다.
이처럼 수도권 규제에 막혀 투자를 철회하거나 혹은 시기를 미뤄야 했던 기업은 총 62곳에 달한다. 이 기업들이 입은 경제적 손실은 총 3조3329억 원으로 약 1만2000여명에 달하는 고용창출 효과까지 모두 포기해야 했다.
◆ 수도권 경제 위축, 국가경쟁력 약화로 이어져
수도권 규제가 문제되는 이유는 비단 수도권의 경제 침체와 발전 저해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수도권 규제는 수도권의 문제를 넘어 국가 전반의 경쟁력 문제로 볼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경기발전연구원에서 발간한 ‘21C 메가시티 경쟁 시대 수도권 규제의 진단과 해법’에 따르면 수도권을 규제한다고 해서 지방이 발전한다는 주장에는 근거가 없는 것으로 나타난다. 수도권의 제조업 발전을 제약한다고 해서 그 기업이 지방으로 이전을 하거나 지방에서 일자리를 창출한다고 볼 수 없으며, 오히려 수도권 제조업이 성장하면 그 효과가 지방에 연쇄적으로 번져 전반적인 성장을 이끈다고 분석하고 있다.
실제 2003년부터 2007년까지 경기도 내 기업 중 지방으로 이전한 기업은 141개에 불과했으며, 같은 기간 총 1만6738개 기업이 해외로 빠져나갔다. 중앙대 산업경영연구소가 조사한 결과에서도 수도권 기업의 93.6%가 공장총량제를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해외 이전’을 선호한다고 밝혔다.
수도권 규제의 취지인 지방 균형 발전이 아무런 효과가 없다면, 결국 수도권 규제로 인한 경기 침체는 국가 전반의 경기 침체로 규정할 수 있고 수도권에서 상실되는 일자리와 투자는 곧 경제 전체의 손실로 볼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 일본의 ‘도쿄(東京)권’ 메가시티 전략, 경제 부흥의 발판으로 작용
우리와 비슷한 수도권 규제를 도입했던 이웃나라 일본은 최근 수도권 경제의 부활을 직접 경험하고 있다. 우리보다 20년가량 앞서 수도권 규제를 도입한 일본은 1990년대 말 경기 불황과 거품 붕괴 등으로 고전을 면치 못하면서 수도권 지역 기업의 ‘엑소더스(Exodus)’를 겪었다.
그러자 일본은 한국의 공장총량제와 유사한 공장제한법을 2002년 폐지했고, 2009년부터 수도권 정책의 패러다임을 ‘규제’에서 ‘발전’으로 완전히 바꿨다. 그리고 2010년 전국의 대도심권 7개 지역을 ‘국제전략총합특구’로 지정해 대도시권 중심의 경제발전 계획을 수립했다. 아울러 도쿄 중심에 ‘아시아 헤드쿼터 특구’, 요코하마·가와사키 지역의 ‘케이힝 임해부 라이프 이노베이션(Life innovation) 국제전략총합특구’, 츠쿠바시 및 주변지
역의 ‘츠쿠바 국제전략총합특구’등을 지정했다.
2000년대부터 본격화한 수도권 규제 폐지는 곧 바로 경제적 효과로 이어졌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도쿄 권역의 공장설립 건수가 2002년 78건에서 2006년 166건으로 늘어났고, 해외공장설립은 2002년 434건에서 2006년 182건으로 줄어들었다. 외국인 직접투자도 급격히 증가하는 등 규제 효과를 누렸다는 것이 공통된 분석이다.
◆ 영국과 프랑스도 수도권 규제 사실상 포기
대표적인 유럽의 선진국 영국과 프랑스도 수도권 규제 개혁으로 그 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1945년 산업분산법을 시작으로 수도권 규제를 도입한 영국 정부는 1960년대까지 인구 분산과 기업의 지방 분산을 목표로 계속해서 규제를 지속했다.
그러다 영국은 1970년대 IMF 사태와 더불어 제조업 쇠퇴, 산업 공동화 현상을 겪으면서 수도권 규제의 폐해를 직시한다. 결국 1980년대 들어 마거릿 대처 수상은 공장개발허가제, 사무실개발허가제 등 대표적인 수도권 규제를 폐지하고 1990년대부터는 ‘도시재생정책’이라는 이름으로 대도심권의 부활을 이끌었다. 그 결과 1997년부터 2007년까지 200만개의 일자리 창출, 경제활동 참여율 10% 증가라는 놀라운 성과를 올렸다.
2010년 들어선 데이비드 캐머런 정부는 이 같은 기조를 더욱 확대했다. 런던 동부 지역을 ‘테크시티’로 만들자는 전략에 따라 각종 기술관련 규제를 대폭 축소시켰고, 그 결과 마이크로소프트, 시스코 등 1300여개 업체가 테크시티에 참여했다.
프랑스 역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파리의 인구 급증을 우려해 ‘도시계획법’이라는 수도권 규제 정책을 도입했다. 특히 ‘아그레망’이라고 불리는 공장설립허가제는 강력하고도 종합적인 규제 정책으로 꼽힌다.
그러다 1970년대 수도권 정책에 대한 실망이 확산하기 시작했고, EU 통합이 가속화하면서 메가시티를 중심으로 한 경쟁력 강화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오기 시작했다. 프랑스는 2000년대 들어 ‘세계도시화’ 전략을 짠다. 지금도 파리의 대표적인 번화가이자 관광 명소인 ‘라데팡스’ 지역이 바로 이 같은 도시전략 전환에 따른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 이미 해답 나와 있는 수도권규제 개혁...장기적으로는 ‘폐기’가 정답
정부는 지난해 12월 지역경제 발전 방안으로 시도별로 ‘지역전략산업’을 선정하고 일부 지역에 대해 ‘규제 프리존’을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수도권은 제외됐다. 여전히 공장총량제의 기본 근간은 유지하겠다고 밝혔으며 지역균형발전의 원칙을 훼손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그렇다면 올바른 수도권 규제 개혁 방안은 무엇일까? 사실 정부는 오래 전부터 해답을 내놓았다. 참여정부, 이명박 정부에 이르기까지 정부가 검토한 수도권 규제 개혁방안만 제대로 이행해도 충분히 그 효과를 누릴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단기적 과제와 중장기적 과제로 나눠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낙후한 자연보전권역에 대한 규제를 완화해서 신규 투자가 가능할 수 있도록 하고 과밀 억제 권역의 공장총량제 완화 등으로 단기적인 효과를 볼 수 있으며, 장기적으로는 영국·프랑스·일본과 같이 총괄규제법인 ‘수도권정비계획법’을 폐지하고 발전 전략에 기초를 둔 수도권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비(非) 수도권 지역의 지방자치단체장이나 해당 지역구 의원들의 대승적 결단도 필요하다. 수도권 규제 개혁을 논의할 때마다 정치권은 상당한 갈등과 대립에 시달려야 했다. 수도권 규제가 지방 발전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여러 분석에도 불구하고 비수도권 지역의 ‘소외감’이 그 원인으로 작용한 것이다.
국민의 인신 전환도 따라야 한다. 조성호 경기발전연구원 연구위원은 “수도권 규제 개혁이 성공하려면 국민들의 인식전환이 필요하다”며 “도시와 농촌, 빈부의 계층 간 격차 등 정치적이며 이념적인 대립의 시각에서 벗어나 현실적인 대안 마련에 국민들도 나서야 한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