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 이재용의 과제①] 흔들리는 메모리 초격차

거센 후발주자 점유율 추격…삼성전자 "감산 No, 투자 Yes" 정공법 돌파 선언

2022-11-14     전다윗 기자
이재용 회장이 부회장 꼬리표를 뗐다. 삼성전자 부회장 자리에 오른 지난 2012년 이후 10년 만이다. 이전부터 명실상부한 그룹 총수로 경영 전반을 진두지휘하는 상황이었지만, 공식적으로 회장 타이틀을 달며 본격적인 '이재용 시대'가 시작된 셈이다. 다만 그의 회장 취임은 영광보다 책임이 늘어나는 쪽에 가깝다. 여느 때보다 불확실한 경제 상황 속에서 풀어야 할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공도, 과도 모두 이 회장의 평가로 직결된다. 한층 무거워진 자리의 무게가 짓누르는 상황이다. 이 회장 앞에 놓인 다섯 가지 과제를 5회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주]
삼성전자 연구원이 기흥 캠퍼스에서 메모리 반도체를 생산하고 있다. (사진제공=삼성전자)

[뉴스웍스=전다윗 기자] "안타깝게도 지난 몇 년간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새로운 분야를 선도하지 못했고, 기존 시장에서는 추격자들의 거센 도전을 받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취임 소회에는 절박함이 묻어났다. 고물가·고금리·고환율 등 '3고 위기'와 그에 따른 저성장·인플레이션 우려로 여느 때보다 불확실한 경영환경을 바라보는 이 회장의 고민이 엿보였다. 그는 회장 취임을 앞두고 글로벌 시장과 국내외 사업장을 두루 방문하며 엄중하고 냉혹한 시장을 직접 살피기도 했다. 

특히 삼성전자의 핵심 사업인 반도체, 그중에서도 '믿을 맨'인 메모리 반도체에 대한 우려가 눈에 띈다. 지난 30여 년간 메모리 반도체 분야를 선도해 온 삼성전자이지만, 이 회장 말대로 '추격자들의 거센 도전'을 받는 형국이다. 

◆서서히 좁혀지는 점유율·기술력…메모리 초격차 '흔들' 

무엇보다 압도적인 점유율이 야금야금 따라잡히고 있다. 유진투자증권과 시장조사업체 IDC에 따르면 올해 3분기 글로벌 D램 시장 규모는 179억7399만달러로 전 분기보다 29.3% 줄었다. 글로벌 경기 침체 여파로 메모리 반도체 업황이 악화되면서 시장 규모가 쪼그라든 것이다. 

메모리 반도체 1위인 삼성전자의 타격은 클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의 D램 매출은 2분기 110억2100만달러에서 3분기 73억7100만달러로 33.7% 급감했다. 매출 감소에 따라 점유율도 2분기 43.7%에서 3분기 41.0%로 2.7%포인트 하락했다. 이는 지난 2014년 3분기 이후 8년 만에 가장 낮은 점유율이다.

반면 D램 시장 2위 SK하이닉스의 점유율은 2분기 27.6%에서 3분기 29.5%로, 3위 미국 마이크론은 23.4%에서 24.2%로 각각 상승했다. 

낸드플래시 시장에서도 삼성전자는 세계 1위를 수성했지만, 점유율은 떨어졌다. 대만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올해 2분기 낸드 시장 점유율은 33.0%로 전 분기보다 2.3%포인트 떨어졌다. 

3위였던 SK하이닉스(자회사 솔리다임 포함)는 전 분기 대비 1.9%포인트 오른 점유율(19.0%)을 기록하며 2위로 뛰어올랐다. 4위와 5위를 차지한 미국 웨스턴디지털(WDC)과 마이크론도 각각 전 분기보다 0.7%포인트, 1.7%포인트 점유율이 상승했다. 

후발주자와의 기술력 차이도 크게 좁혀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낸드플래시 후발주자들의 추격이 거세다. 경쟁사들이 초고적층 기술 개발에 연달아 성공하며 1위 자리가 위태롭다는 말도 공공연하게 나온다.

낸드플래시는 데이터를 저장하는 셀을 몇 층으로 쌓을 수 있느냐(적층)에 따라 기술 수준이 결정된다. 셀의 층수는 단(段)이라 부른다. 가령 100단 낸드플래시는 셀을 100겹으로 쌓아 올렸다는 의미다. 이러한 적층 기술은 삼성전자가 지난 2013년 최초로 고안해 낸 원천 기술이다. 당시 24단 1세대 3차원 V 낸드를 발표해 업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이후 100단 이상 6세대까지 삼성전자는 항상 세계 최초 자리를 도맡았다. 

그러나 지난 2019년 SK하이닉스가 128단에 먼저 도달했고, 176단은 마이크론이 먼저 달성했다. 마이크론은 지난 7월 232단 제품 양산을 발표하며 가장 먼저 200단 고지를 밟기도 했다. SK하이닉스 역시 최근 238단 개발을 완료하고, 내년 양산을 준비 중이다. 물론 삼성전자가 지난 7일 양산 제품 중 최고층으로 추정되는 1Tb(테라비트) 8세대 V낸드를 출시하며 "경쟁사보다 기술력에서 밀린다"는 우려는 다소 씻었으나, 핵심 전략인 기술 초격차가 위협받고 있음은 부정하기 어려워 보인다. 

기흥 반도체 R&D단지 기공식에 참석한 이재용 부회장이 직원들과 반갑게 인사하고 있다. (사진제공=삼성전자)

◆"감산 없고, 투자 늘린다"…정공법 꺼내든 삼성전자

연일 들려오는 경고등 속 삼성전자가 꺼내든 전략은 '정공법'이다. 메모리 반도체 한파 속에서도 인위적 감산 없이 반도체 인프라 투자를 지속해 초격차를 확대해 나갈 방침이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3분기 실적발표 콘퍼런스콜에서 "인위적 감산을 고려하지 않는다"며 "시설투자 역시 역대 최대인 54조원 수준으로 진행할 예정"이라고 선언했다. 

경쟁사들이 메모리 업황 악화에 따라 줄줄이 감산을 선언하고, 투자 감축에 나선 것과 정반대되는 행보다. 삼성전자 발표에 앞서 SK하이닉스는 내년 설비투자액을 기존 계획의 절반으로 줄인다고 발표했고, 마이크론 역시 내년 투자액을 30% 축소한다고 밝혔다. 

삼성전자의 이런 '나 홀로 행보'는 남다른 원가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격 하락 폭이 원가 절감 폭을 추월하며 경쟁사들은 반도체를 생산할수록 손해인 상황에 접어들었지만, 삼성전자는 원가 경쟁력을 바탕으로 탄탄한 흑자 구조를 유지하며 버틸 수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D램과 낸드플래시 둘 다 업계에서 압도적인 원가 구조를 갖고 있다. 이것이 강력한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불황기에 경쟁사들과 점유율 격차를 벌려 향후 메모리 업황이 반등할 경우, 더 큰 수익을 내겠다는 계산도 깔려 있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의 이런 공격적 행보가 향후 시장 점유율 변화를 불러올 것이라 보고 있다. 

초격차의 핵심인 기술력 강화에도 힘쓴다. 삼성전자의 올해 시설투자 규모는 전년보다 약 12% 늘어난 54조원이다. 3년 전인 지난 2019년만 해도 20조원대에 머물던 시설투자 규모가 두 배 가량 늘었다. 이 중 반도체 사업에만 약 47조7000억원이 투입된다. 메모리 반도체 초격차 강화를 위한 평택 3·4기 인프라 구축과 중장기 시장경쟁력 강화를 위한 극자외선(EUV) 등 첨단 공정 중심의 투자가 예상된다.

이 회장 역시 회장 취임 전후 수차례 기술력을 강조해 왔다. 지난 8월 복권 후 첫 행보로 경기 기흥 반도체 연구개발(R&D)단지 기공식에 참석해 "차세대뿐 아니라 차차세대 제품에 대한 과감한 R&D 투자가 없었다면 오늘의 삼성 반도체는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기술 중시, 선행 투자의 전통을 이어 나가자. 세상에 없는 기술로 미래를 만들자"고 임직원을 독려했다. 

지난 6월 유럽 출장을 다녀온 후에는 "첫 번째도 기술, 두 번째도 기술, 세 번째도 기술"이라며 기술 중심의 경영철학을 강조했고, 최근 회장 취임 소회에서는 "미래 기술에 우리의 생존이 달려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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