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좋은 쥐덫의 오류]①혁신이 만사형통 아니다
[뉴스웍스=한동수기자] 지난 7일 청와대에서 열린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대통령이 인용한 ‘더 좋은 쥐덫(A better mouse trap)’이 새삼 관심을 끌었다. 이것은 고객 니즈를 반영하지 못하고 혁신에만 과욕을 부린 20세기 초반 제품개발의 실패 사례로 경영학 교과서에는 ‘더 좋은 쥐덫의 오류(better mousetrap fallacy)’로 소개된다.
‘더 좋은 쥐덫의 오류’의 교훈은 단순하고 명료하다. ‘고객의 눈높이에 맞춘 제품개발’, ‘소비자가 최종 결정권자’, ‘첨단제품이라도 사용이 편리하고 쉽게 배울수 있어야한다’.
제품 개발이나 신사업 연구를 위해 현장에서 수십년씩 일하고 있는 프로들에게 잔소리에 불과할 수 있는 사례다. 산업계 현장의 개발자나 경영자들은 이미 고객 니즈에 부합하고, 다양한 기능을 편리하게 쓸 수 있는 제품 개발을 위해 사활을 걸고 있다.
그런데 아직도 이 사례가 회자되는 이유는 업체간 경쟁이 심화되면서 ‘개발자들의 과욕’ 그리고 이를 지적하고 제대로 잡아줄 ‘집단사고(Group think)의 왜곡’현상이 산업계 현장 곳곳에서 나타났기 때문이다.
‘더 좋은 쥐덫의 오류’ 사례는 대통령의 발언으로 유명해진 것만은 아니다. 최근 자주 거론됐다. 지난해 5월 LG CNS 블로그에 소개된바 있고, 올 들어선 지난 5월 포스코경영연구원이 ‘신사업을 망치는 15가지 바이러스를 피하려면’이라는 주제의 보고서를 통해 소개하기도 했다.
왜 산업계에서는 이미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더 좋은 쥐덫의 오류’가 다시 거론되고 있을까.
산업계는 지금 4차산업혁명 시대를 향해 달리고 있다. 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AI), 가상현실(VR), 스마트카 등 고객들이 이것들을 다 사용할 수 있을지 의문이 생길 정도다.
또 이런 신사업들로 인해 발생할 생활의 변화와 양산될 직업, 없어질 직업에 대한 궁금증도 커지고 있다. 그런데 4차산업혁명을 주도할 최첨단 제품들을 소비자들이 받아들일지, 거부할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별로 없는게 현실이다. 세상에 없던 물건을 만들어 놓으면 고객은 따라 올 것이라는 발상은 잘못 됐다. 어얼리어댑터들만을 위한 제품은 백전백패다.
‘더 좋은 쥐덫의 오류’ 와 비슷한 사례는 최근 벌어진 실패한 제품들 중에서도 여럿 찾을 수 있다. 이 같은 사례들을 되짚어 봐야 할 때다. 지금은 4차산업혁명이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산업계가 이미 들어선 10년 후 사물인터넷이 바꿔놓을 세상으로 순항하기 위한 가장 좋은 항로는 첨단기술과 혁신만 있는 것이 아니다. 고객과 ‘눈 맞춤’ 이다.
◆대중은 ‘파리의 프레타포르테’에 환호한다, 구매하지 않을 뿐...
약 20여년전. 세계는 모토로라의 첨단제품에 놀랐다. 모토로라의 위성전화 ‘이리듐(Iridium)’
기껏해야 카폰이 보급됐고 가정용 수화기보다 컸던 모토로라 핸드폰이 부의 상징이던 시절, 이리듐은 신기한 물건이었고 첨단 기술혁신의 상징같은 제품이었다. 모토로라는 미래를 바꿔놓을 신사업으로 확신했다. 박용삼 포스코경영연구원 수석연구원은 “모토로라는 이리듐 상용화를 위해 1990년대 중반부터 지구전체를 커버하는 66개 위성 발사에 무려 50억달러를 투자했다”며 “이후 가입자 확보에 실패, 94억 달러의 손실을 입어 1999년 사업을 접었다”고 말했다. 당시 미국의 타임지는 ‘인류 최악의 실수’라고 이리듐 프로젝트를 혹평했다.
스마트폰 시대에 모토로라는 기업은 이제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당시 대중은 광케이블로 연결된 일반 전화로 국제전화를 거는 것만으로 만족했다. 또 이리듐이 아니어도 전화하는데 불편이 없는 휴대폰을 쉽게 구할 수 있었다. 다국적기업이었던 모토로라에 당시 세계 각국의 인재들은 많이 모여 있었다. 박 수석연구원은 “모토로라의 실패 사례는 ‘우리가 하면 된다’는 자신감에서 비롯된 더 좋은 쥐덫의 사례와 비견된다”며 “작은 성공을 맛본 기업일수록 명심해야 할 실패 사례”라고 말했다.
해마다 파리에서는 기성복 패션쇼인 프레타포르테(Prêt-à-porter)가 열린다. 현란하고 앞으로 미래를 선도할 여러작품이 출품되지만 대중에게는 동떨어진 디자인일 뿐이다. 제조업 분야에서는 특히 그렇다. 보기 좋고 쓸모가 많아도 사용하기 불편하면 사장된다.
◆모듈형 스마트폰을 개척한 ‘G5'의 비애
LG전자가 지난 8일 발표한 올해 2분기 실적 추정치를 보면 가전에서 웃고 스마트폰에서 울 것으로 전망된다. 야심작 G5가 고전 중이다. 이로인해 모바일커뮤니케이션(MC)사업 부문은 5분기 연속 적자가 예상되고, G5를 출시했던 올 2분기 예상 적자액은 1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측된다.
혁신이라고 평가받던 G5 프렌즈 ‘모듈’에 대해 고객들이 편리성과 필요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G5는 예상밖의 판매 부진을 겪고 있다.
LG전자는 지난 2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렸던 모바일월드콩크레스(MWC)에서 G5를 발표할 당시만해도 MWC 상을 휩쓸고 해외 유력 매체에서 인정받으며 데뷔했었다. 하지만 국내 소비자들에게 관심을 끌지 못했다. 모듈 사용이 불편했기 때문이다.
증권업계에선 G5의 2분기 판매량(공급기준)이 시장 예상치(300만~350만대) 보다 낮은 250만대 전후로 예측하고 있다.
고객들은 첨단제품을 원하지만 불편한 것은 원하지 않는다. 모듈형이란 배터리를 비롯한 일명 G5프렌즈 기기들을 착탈식으로 사용할 수있게 한 대단한 기술이다. 그러다보니 사용하려면 갖고 다녀야 할것이 많아진다. 익숙하지도 않고 편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외면했다.
결과는 이랬다. LG전자는 지난 1일 모바일 영업을 전담하던 MC한국영업FD를 가전 영업을 맡은 한국영업본부로 통합하는 것을 골자로 한 MC사업본부 조직을 대폭 개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