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 이재용 100일②] 1년도 채 안 남은 '빅딜' 약속…멈춘 '투자 시계' 다시 돌까
한종희 "M&A 잘 진행 중"…반도체 후공정·로봇 기업 후보 거론
[뉴스웍스=전다윗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앞에 놓인 과제는 수도 없이 많다. 그 중에서도 '빅딜' 성사는 가장 근시일 내에 해결해야 할 사안이다. 삼성전자는 지난 2021년 1월 4분기 실적 발표회에서 "3년 내 의미있는 인수합병(M&A)를 진행하겠다"고 이례적으로 밝혔지만, 지금까지 별다른 소식은 없었다. 남은 시간은 이제 1년도 채 안 된다.
대다수 경제 전문가들은 그간 이 회장의 '공백' 탓에 삼성전자의 대형 M&A가 위축돼 왔다고 진단했다. 다방면으로 M&A를 검토해 왔으나, 최종 결정권자인 이 회장의 사법 리스크 탓에 적극적 움직임을 취하지 못했다는 분석이다.
이 때문에 복권된 이 회장이 장기간 미뤄뒀던 회장 자리에 오른 것을 두고, 강력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대형 M&A 등 대규모 투자를 흔들림 없이 집행하겠다는 의지 표명이라는 해석이 재계에서 나왔다. 삼성전자 이사회 역시 이 회장의 승진을 의결하며 "글로벌 대외 환경이 악화되는 가운데 신속하고 과감한 의사결정이 절실하다고 판단했다"고 배경을 설명한 바 있다.
◆하만 인수 후 멈춘 '투자 시계'…'좋은 소식' 연내 나올까
M&A는 기업의 내적 성장 한계를 극복하고, 신규 사업에 빠르게 진입할 수 있도록 돕는 핵심 경영 방법이다.
산업 트렌드 변화가 빨라진 요즘에는 그 중요성이 더욱 커지는 추세다. M&A를 통해 특허·인재·기술 등을 흡수해 '퀀텀 점프'하는 것은 중요한 전략으로 자리잡았다. 처음부터 연구·개발과 상용화에 주력하다가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경우 시장 경쟁력을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삼성전자의 투자 시계는 2016년에 멈춰있다. 당시 삼성전자는 약 10조원을 들여 미국 자동차 전장업체 하만을 인수했다. 하지만 여전히 삼성전자와 하만의 시너지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물론 지난해 삼성전자에게 인수된 이래 최대 실적(매출 12조5000억원, 영업이익 7000억원)을 거뒀지만, 인수 당시의 기대치를 생각하면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올해 삼성전자가 '의미있는 빅딜'을 발표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삼성의 투자 시계를 멈추게 했던 이 회장의 부재는 지난해 8월 해소됐고, '실탄'도 두둑하다.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삼성전자가 보유한 현금성 자산만 120조원이 넘는다. 러·우 전쟁, 미·중 갈등, 글로벌 경기 침체 등 불안요소도 상당하지만 반대로 그 덕에 기업들의 몸값이 저렴해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 회장의 글로벌 광폭 행보 역시 미래 먹거리 물색을 위한 것이라는 게 업계의 공통된 시각이다. 한종희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은 미국에서 최근 열린 'CES 2023'에서 "지난해부터 좋은 소식을 들려드린다고 했는데 러·우 전쟁과 중국 봉쇄, 미·중 대결 이슈, 환리스크 등으로 지연됐다"며 "M&A는 잘 진행되고 있으니 좋은 소식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유력 인수 후보군은?…반도체 후공정·로봇 기업 대두
현재 가장 유력하게 거론되는 인수 후보는 반도체 후공정(패키징) 기업인 미국 앰코테크놀로지다. 후공정은 회로가 새겨진 웨이퍼에서 칩을 잘라내고, 단품화하는 공정을 뜻한다. 반도체 초미세공정이 한계에 다다르면서, 여러 반도체를 하나로 묶는 패키징 분야가 반도체의 성능과 효율성을 높여줄 수 있는 새로운 핵심 요소로 부상 중이다.
앰코는 세계 2위의 후공정 기업으로, 삼성전자 파운드리의 주요 파트너 중 한 곳이다. 나스닥에 상장된 미국 기업이지만 모태는 한국으로, 지난 1968년 설립된 아남반도체가 전신이다. 한국에도 인천, 광주, 송도 등에 패키징 공장을 두고 있다. 기업가치는 약 10조원 수준으로 평가받는다.
하만과 전장사업에서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차량용 반도체 기업들도 이전부터 주목받는 유력 후보군이다. 독일 인피니온, 네덜란드 NXP 등 차량용 반도체 시장 1, 2위를 다투는 기업들이 대표적이다.
이 회장도 지난해 6월 유럽 출장 직후 자동차 산업 변화를 언급하며 전장 관련 사업 투자 의지를 내비친 바 있다. 당시 이 회장은 "헝가리 삼성SDI 배터리 공장을 방문한 뒤 고객사인 BMW를 만났고, 부품 사업을 위해 인수한 하만도 찾았다"며 "자동차 업계의 급변하는 상황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고 언급했다.
반도체가 아닌 다른 사업 부문을 강화하기 위한 M&A가 진행될 것이란 관측도 적지 않다. 글로벌 경기 침체로 경영환경이 여느 때보다 불확실해지면서, 반도체에 버금가는 미래 성장동력을 발굴·육성해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제2의 반도체로 꼽히는 바이오 사업을 포함해 차세대 통신, 인공지능(AI), 로봇, 메타버스 등 미래 성장동력으로 꼽히는 분야의 핵심 기업이 인수 대상으로 검토될 것이란 전망이 힘을 받고 있다.
요즘에는 특히 로봇과 인공지능(AI) 분야가 후보로 자주 거론된다. 삼성전자가 최근 로봇 사업을 신성장동력으로 점찍은 듯한 행보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연초 로봇 개발업체 레인보우로보틱스의 3자 배정 유상증자에 참여해 총 590억원을 신규 투자한 데 이어, CES 2023에서 연내 'EX1'이란 이름의 로봇을 출시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업계에서는 EX1은 노약자들의 운동을 돕는 기능을 갖춘 '시니어 케어' 특화 로봇일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